지금은 아주 흔한 것이 됐지만 불과 10년 전만 해도 귀중품으로 분류됐던 대표적인 것이 손목시계다. 기능성을 중시하던 시계가 90년대 들어 디자인이 가미된 패션 시계로 생산 전략을 바꾸자 수요가 늘기 시작했다. 한 사람이 몇개의 시계를 갖고 있는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에코시계는 이같은 흐름을 잘 이용해 성공한 대표적인 업체다.“90년대는 집안 경제권이 부모에서 자녀에게로 넘어가는 시기였어요. 소비세대가 젊어진거죠. 자연히 시계도 값싸고 감각적인 쪽으로 수요가 늘기 시작했습니다.”에코시계 고영곤(38) 사장은 지난 90년 영업부에 입사, 98년 대표이사까지 오른 샐러리맨 출신 사장이다. 고사장은 90년 초반부터 불기 시작한 패션시계의 붐을 예측, 싸고 세련된 시계를 생산하도록 회사 기획부에 틈만 나면 건의했다. 다행히 그의 건의가 회사에 받아들여졌고, 시계 부품을 생산하던 에코시계는 본격적으로 완성품을 제조하는 회사로 탈바꿈했다. 이후 에코시계는 93년 연 매출 50억원을 올리는 중견업체로 성장했고 오리엔트 삼성 등 대기업들에 이어 매출 7위를 기록하는 등 성장가도를 달렸다. 93년부터는 수출에 주력, 2년 뒤인 95년 백만달러 수출탑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당시 중국 심천에 설립됐던 현지공장은 매월 10억원어치의 시계를 생산하는 기지로 톡톡히 제몫을 담당했다. 중국에서도 고가의 시계 수요가 늘기 시작했고 이 시장을 공략한 전략이 맞아떨어졌기 때문.◆ 선택·집중 모토로 아이디어 발굴 주력그러나 IMF체제로 돌입한 97년, 고환율에 내수부진까지 겹쳐 에코시계는 창사이래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다. 여느 회사와 마찬가지로 98년 초부터 고통스런 구조조정이 진행됐다. 50명 직원이 13명으로 줄었고, 백화점 매장도 전부 철수했다. 이와중에 사장은 경영포기를 선언했고, 고사장은 백척간두에 놓인 에코시계를 인수했다.“우리가 잘 할 수 있는 분야가 무엇인지 따져봤어요. 백화점, 통신판매보다 OEM(주문자생산방식)에 주력한다면 회사를 다시 살릴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에코시계는 10여년간 국내 2천여개 업체에 OEM으로 시계를 공급한 전력이 있었다. 매출비중도 이 부분에서 차지하는 것이 컸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경영전략으로 에코시계는 올해 매출 50억원을 바라보는 업체로 다시 살아났다.“내년부터 중국 현지법인에 대한 투자를 다시 시작해 수출비중을 늘려나갈 계획입니다. 또 OEM과 병행해 자체 브랜드 시계 판매도 가속화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