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시장 60% 차지, 업계 최대기업 부상 … 자체 브랜드 ‘TNP’로 해외시장 공략 활발

산자락을 끼고 완만한 언덕길을 오르면 노란 옷으로 곱게 갈아입은 은행나무가 반갑게 손님을 맞는다. 반월공단 입구에 있는 야산. 그 기슭에 동남정밀이 자리잡고 있다.이 회사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기업이다. 볼트용 공구를 제조하고 있는 중소기업. 최종소비재도 아니고, 그렇다고 부품도 아닌, 부품을 만드는 공구를 만드니 유명할리 없다. 하지만 이 회사는 어느 기업 못지않게 중요한 일을 수행하고 있다. 만일 이 회사가 가동을 중단한다면 국내 산업을 거의 멈추게 된다. 까닭을 살펴보자.몇년전 철강파동이 있었다. 원재료가 달리자 포항제철은 볼트 너트용 자재 생산을 줄였다. 볼트 너트 업계에 비상이 걸린 것은 물론이다. 외국에서 주문받아 놓은 것은 많은데 원자재가 없어서 생산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 몇차례 포철에 간청하던 업계대표들은 극약처방을 내렸다. 만일 제대로 공급해주지 않으면 공장을 모두 닫겠다고 기자회견을 통해 선언했다. 난리가 난 것은 기계 자동차 전자 조선업체들. 볼트 너트가 없으면 이들 산업이 서게 된다. 선반 밀링을 비롯한 공작기계와 자동화기계 등 모든 기계에는 볼트 너트가 들어간다. 승용차건 상용차건 모든 자동차 역시 마찬가지. TV 냉장고 비디오 컴퓨터 등 전자제품에도 볼트가 들어간다. 이들 제품에 쓰이는 스크류가 바로 소형 볼트다.◆ 가동 중단한다면 국내업계 거의 멈추게 되는 꼴이들 볼트는 작은 쇠를 힘차게 눌러 뭉툭하게 머리를 만든 뒤 각지게 다듬고 홈을 내 만든다. 각을 만들고 홈을 파는 공구를 바로 동남정밀이 만든다. 쇠를 가공하는 공구인 만큼 강도와 경도가 아주 높은 소재로 만든다. 이른바 합금을 소재로 한 초경공구다. 볼트용 공구의 국내 시장을 약 60% 차지하고 있다고 회사측은 밝힌다.이를 만들기 위해 공장안에는 각종 공작기계와 진공로를 비롯한 담금질시설이 있다. 이 회사의 이재우(58)사장은 볼트 인생을 살아온 기업인이다. 그러다보니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지난 30여년간 볼트와 스크류 생산에 필요한 공구를 국산화해왔다. 한양대 공대를 다니다 가정형편 때문에 그만둔 이씨는 스크류 제조업체에서 볼트와 너트를 만들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여기서 일을 하면서 그는 서러움을 느꼈다. 스크류 제조에 필요한 공구를 일본을 비롯한 몇몇 외국업체가 독점하고 있어 값이 아주 비쌌고 구하기도 어려웠다. 사다쓰는 입장인데도 마치 구걸하다시피해야 겨우 구할 수 있었다. 직접 생산에 나서기로 했다. 무모하다며 말리는 사람이 많았다. 국내 기반이 전혀 없는데 어떻게 국산화하겠느냐며.서울 개봉동 전철역 부근에 영화공구제작소 간판이 걸린게 지난 74년. 직원 5명으로 시작했다. 이 회사가 지금의 동남정밀이다. 국산화한 것은 20여종에 이른다. 나사 전조용 평다이스를 비롯해 태핑나사 전조용 평다이스, 스크류 십자머리 성형용 펀치 등. 육각 볼트머리 트리머용 트리밍 다이도 국산화했다. 이 제품을 국산화하기 전에는 국내 볼트업체들은 작업자가 선반과 줄을 이용해 하루에 한두개 정도 볼트머리를 가공했었다. 이를 독자기술로 냉간압입 성형방식의 트리밍다이를 만들어 대량 생산할 수 있게 했다. 또 자동차 항공기 선박용에 이르는 다양한 종류의 볼트를 만들 수 있게 됐다.◆ 밤 새며 신제품 연구, 20여 제품 국산화 성공이밖에 가공공구의 품질을 좌우하는 금형제작용 ‘매스터 핀’ 등을 속속 국산화했다. ‘화학증착법(CVD) 코팅로’를 설치해 이를 통해 CVD코팅 트리밍다이도 개발했다. 볼트 너트 생산량을 5배나 늘릴 수 있는 획기적인 제품이다. 최근 우수자본재(EM) 제품으로 선정되기도 했다.제품개발 과정은 고독한 싸움의 연속이었다. 처음으로 국산화를 시도하다보니 배울 곳이 없고 문헌도 제대로 없었다. 특히 이 분야의 선진국인 일본은 기술을 절대로 이전해주지 않았다. 부메랑효과를 우려한 것. 고심끝에 일본제품 바이어인 볼트 너트업계 일본방문단에 끼여 공장을 견학하고 어깨너머로 기술이나 노하우를 배우기도 했다. 이사장 자신이 공장에서 밤을 새며 신제품을 연구하고 실험도 했다.이제는 국내 1천여개 볼트 너트업체에 제품을 파는 최대의 볼트·너트용 공구업체로 떠올랐다. 이재우 사장은 “많은 업체들과 거래를 하다보니 외환위기도 오히려 부드럽게 넘길 수 있었다”고 말한다.그는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속속 국산화해 싼 값에 국내업체에 공급한 것을 가장 큰 보람으로 생각한다”고 말한다. 초창기에는 수입대체에 초점을 맞췄으나 이제는 해외시장 개척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에 따라 수출도 매년 꾸준히 늘고 있다. 자사 브랜드 ‘TNP’로 미국 일본 유럽 동남아 등 10여개국으로 내보내고 있다. 지난해 87억원의 매출을 올린 이 회사는 올 매출을 1백억원으로 잡고 있으며 이중 수출비중은 30%로 예상하고 있다.동남정밀의 목표는 볼트공구 분야에서 세계 최고 기업이 되는 것. 비록 규모는 크지 않아도 품질면에서 정상에 오른다는 포부다. 이를 위해선 임직원의 단합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보고 경영실적을 공개하는 투명경영과 성과를 골고루 분배하는 ‘더불어경영’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볼트처럼 다부진 기업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외부 컨설팅기관으로부터 1년6개월째 자문을 받고 있는 중이다. (031)491-03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