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ㆍ동원증권 앞장... 은행들도 기존 프라이빗뱅킹서비스 대폭 강화

이달 초 동원증권은 강남 르네상스호텔 별관에 ‘머제스티클럽(Majesty Club)’이라는 새로운 지점을 냈다. 이 지점은 일반 증권사 지점과는 다르다. 명칭에서 풍기는 뉘앙스처럼 VIP고객을 대상으로 프라이빗뱅킹(PB·Private Banking)서비스를 제공하는 특별한 지점이다. 지점개설과 함께 소수의 고객을 초청, 명품 브랜드인 ‘쇼메’보석 전시회도 열었다. 자산가를 위한 금융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이 지점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부티’나는 행사였다.미국계 증권사인 메릴린치 한국지점도 최근 국내 거액자산가를 겨냥한 PB 서비스를 시작했다. 메릴린치는 CMA(증권종합계좌서비스)를 처음 만들어내는 등 자산관리서비스 분야에서 선구적인 역할을 해온 투자은행. 이 때문에 이 회사의 행보는 국내증권사는 물론, 소매금융 진출을 구상중인 다른 외국계 금융기관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기존 은행이나 증권사보다 대상고객의 예탁자산규모가 5억원으로 상대적으로 높아 큰 손들이 과연 얼마나 관심을 보일지도 주목거리다.최근 증권업계와 은행들에서 소매금융, 그 가운데 프라이빗뱅킹을 강화하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특히 약정증대와 수수료 수입증대에만 열을 올려온 증권사들의 변화가 더욱 눈에 뜨인다. 즉 증권중개(brokerage)로부터 발생하는 수수료 수입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예탁자산에 대한 금융컨설팅 제공 대가로 수수료를 받는 자산관리 서비스의 확대움직임이다.프라이빗뱅킹이란 용어는 일반 고객과 차별화된 서비스를 받고 그 대가로 별도의 수수료를 지불할 의사가 있는 자산가에게 금융기관이 개별적으로 제공하는 금융관련 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시티뱅크가 70년대에 처음 사용했다고 한다. 굳이 기원을 따진다면 유럽귀족의 세습재산을 맡아 관리해주던 재산관리인이 그 시초라고 할 수 있다. 본질적으로 ‘귀족’지향적인 금융서비스인 셈이다.◆ 중개업무 대신 자산관리에 치중제공하는 서비스형태에 따라 △부가서비스형 △자산관리형 △자산운용형으로 나눌 수 있다. 부가서비스형은 PB의 초기단계로서 고액의 예치고객에게 수수료 없이 일반고객과 차별화된 부가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자산 관리형은 스위스형이라고도 불리며 보수적이고 비밀보호에 관심이 많은 부유층 고객으로부터 위탁받은 자산의 장기적 일임매매에 중점을 둔 서비스형태다. 자산 운용형은 미국형이라고 불리는데 수익성에 민감한 부유층을 주고객으로 최적의 수익증대를 추구하는 형태로 볼 수 있다.현재 국내금융기관이 추구하는 프라이빗뱅킹은 일단 VIP를 대상으로 한 자산관리서비스와 자산운용형의 중간형태로 보인다. 외형적으로는 VIP마케팅 전략이지만 영업전략의 기조를 본질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마케팅전략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증권사들이 PB확대에 나서는 것은 수수료에 의존해온 기존의 수익구조가 큰 위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온라인주식거래가 확산되면서 수수료인하가 대세가 되고 있다. 미국에서처럼 저렴한 수수료로 브로커업무만 전담하는 온라인증권사까지 등장, 수수료인하 압박요인이 되고 있다. 데이트레이딩 비중이 높은 한국시장의 특성상 거래량이 많아서 수수료수입으로 버티고는 있으나 안정적인 영업수익원은 되지 못하는 것이다.여기에 본질적으로 고객의 이해관계와 증권사의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수수료의 함수관계가 있다. 증권사가 수수료 수입을 늘리려면 고객들에게 잦은 매매와 데이트레이딩을 유도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고객은 매매횟수를 늘릴수록 증권사에 내는 수수료와 정부에 내는 거래세 지출이 커진다. 증권사와 고객의 이해관계가 역의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다.그러나 자산관리에서 발생하는 수익은 중개수수료와는 다르다. 고객이 장기적으로 맡겨놓은 자산에 대한 금융서비스를 제공해주고 예치자산의 일정비율을 수수료로 받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고객의 이해관계와 증권사의 이해관계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또 다양한 포트폴리오로 자금을 운영토록 하기 때문에 예탁자산이 크게 줄지않는 한 자금시장의 변화에 따라 수입이 들쭉날쭉할 가능성이 적다. 수수료에 비해 훨씬 안정적인 영업수익원인 셈이다.이 때문에 미국 등 선진국의 증권사들은 중개업무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자산관리 및 금융컨설팅을 영업의 주력으로 삼는 투자은행으로 변신해왔다. 국내증권사는 뒤늦게 시작한 셈이다.현재 국내 증권사 가운데 자산관리 서비스를 가장 본격적으로 시작한 곳은 현대증권과 동원증권.현대증권은 올 상반기에 여의도 63빌딩과 강남 KOEX빌딩 두 곳에 ‘리치그룹(Ritchie Group)’이라는 자산관리서비스전용지점을 개설했다. 현대증권은 이를 위해 미국 메릴린치에서 오랫동안 근무해온 이재형이사를 스카웃했다. 이재형이사는 현재 리치그룹본부장으로 국내증권업계의 문화를 바꾸는 역할을 하고 있다.‘리치그룹’은 명칭에서 풍기는 고액자산가 대상 서비스의 이미지와는 달리 공식적으로 예탁자산의 제한은 두지 않고 있다. 그러나 “평균적으로는 일반 지점에 비해 예탁액이 크고 기업내에 별도의 자산관리부서가 없는 소규모법인의 자산관리 서비스 등도 제공한다”고 이본부장은 밝혔다.국내에서는 주로 은행중심으로 시작된 PB서비스를 증권사 가운데 가장 먼저 시작한 곳은 동원증권. 동원증권이 개설한 머제스티클럽은 이 회사의 PB팀장 출신인 이상화지점장이 맡고 있다. 이곳에서는 예탁자산 3억원 이상의 고객을 상대로 투자상담뿐 아니라 각종 법률상담과 세무 상속 증여 해외투자까지 토털 금융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삼성증권도 S&I클럽이라는 명칭으로 VIP고객을 겨냥한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회사의 경우 대외적 홍보를 하지 않은 채 각 지점별로 관리해온 거액예탁고객을 중심으로 S&I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스위스은행처럼 비밀보장을 중요시하는 일부 큰손고객을 겨냥하는 것 같다는 것이 금융권 관계자들의 평이다.◆ 거액예탁고객 대상 비밀보장 ‘클럽’ 운영이들이 제공하는 PB 서비스는 어떤 것일까.우선 고객이 일정자산을 예탁하면 재무상담사(FC·Financial Consultant)가 고객의 나이와 재산상태 투자목적 위험선호도 등 투자성향에 따라 최적의 자산배분 모델을 제시해준다. 그 다음 이 모델에 따른 포트폴리오 상담에서부터 절세방안 등 자산운용에 관련된 각종 컨설팅을 제공한다. 주식 채권 현금성자산은 물론 보험상품과 해외뮤추얼펀드 까지 거의 모든 금융상품의 거래도 가능하다. 상담인력이 일반 객장의 영업사원대신 재무상담사라는 전문인력이라는 것도 큰 차이점이다.보수적 성향이면 현금유동성자산과 국공채 등 안정적인 자산비중을 높이도록 조언하고 장기운용이 가능하면서 고위험고수익을 원한다면 주식이나 주식형수익증권 등의 포트폴리오를 늘리는 등 성향에 따른 자산배분컨설팅을 해준다. 이것도 FC가 자의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나이와 재산상태 투자성향 등을 토대로 산출한 자산분할모델에 따라 가장 이상적인 형태를 추천해준다”고 이재형 리치그룹본부장은 설명했다.이렇게 해서 보통 한 달 단위로 고객자산의 운용성과를 고객에게 알려준다.큰손고객을 상대로 한 VIP 대상 프라이빗뱅킹서비스는 국내에서는 하나은행 등 일부은행이 먼저 시작했다. 그러나 하나은행을 제외한 대다수 은행의 PB는 종합적인 자산관리 서비스보다는 은행에서 파는 금융상품을 중심으로 한 자산배분 상담 및 부가서비스 제공형태에 가까웠다. 고액예금 고객에 대해 지점장방에서 상담해준다거나 VIP고객에 대한 골프접대 등의 수준이었다.그러나 최근 은행들이 시도하는 PB서비스는 금융상품 이외에 종합적인 자산배분 등 자산관리를 강화하고 제공서비스 역시 세금이나 법률관련 서비스 등으로 확대되는 추세이다. 이것은 올들어 지속된 증시의 침체로 시중의 부동자금이 대개 은행의 단기성 자금으로 머물고 있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고액자산가들은 “부동산은 살아날 기미가 안보이고 주식은 불안하고 은행금리는 낮은데 도대체 돈을 어떻게 굴리느냐”고 나름대로 고민하는 재테크 수요자들이기 때문이다.뿐만 아니라 금융구조조정을 앞두고 기업금융에 비해 안전한 소매금융부문을 강화하려는 은행의 이해관계도 맞아떨어지고 있다.95년부터 PB제도를 시행해온 하나은행은 현재 전국 66개 점포에서 VIP클럽이라는 명칭으로 한 두명의 프라이빗뱅커가 VIP고객에게 PB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현재 이 은행이 관리하는 VIP고객만 해도 무려 3만6천명 정도. 내년부터 외환자유화를 앞두고 고소득층의 관심이 높은 외국뮤추얼펀드와 외환관련상품을 망라한 포트폴리오 확대 등 세계적 기준에 맞는 자산의 보전과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을 내세우고 있다.이 은행 김희철 PB팀장은 “앞으로 PB고객 가운데서도 평균잔고 10억원 이상의 최고소득층 고객을 PB센터에서 별도로 관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김희철 팀장은 “VIP고객의 유지에는 체계적인 자산관리 프로그램과 함께 오랜 관계구축이 중요하다”고 지적하면서 이런 점에서 “국내외 증권사의 PB시장진출에 큰 위협을 느끼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2백30조원대 부동자금 모시기 골몰국내영업초기부터 상대적으로 부유층 고객을 타깃으로 삼았던 시티은행도 시티골드클럽이라는 PB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부가서비스 제공 수준이었으나 최근 월평균잔고 1억원 이상의 고객을 대상으로 자산관리 서비스 제공 등을 내세우며 PB프로그램을 강화하는 움직임이다.금융시장 환경이 불안해지면서 거액자산가는 자산가대로 자신의 수요에 맞는 자산배분과 포트폴리오 구성이 어려워지고 있다. 이들의 고민이 바로 2백30조원으로 추정되는 은행 단기성예금으로 표현되고 있다. 고민하는 큰손을 잡기 위한 금융기관의 경쟁은 앞으로도 조용히 그러나 치열하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