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력 인정, 세계적 열처리업체 아이헬렌 거액 출자... 반도체장비사업 진출 모색

“이 시험성적서 가짜로 만든 것 아냐. 처음부터 다시 철저하게 검사해.”경남 창원의 한국중공업. 10개월 동안 공사끝에 대형 공업로가 지난 9월말 우람한 모습을 드러냈다. 길이 15m, 가로와 높이가 각각 7m. 발전기용 대형 샤프트를 열처리할 수 있는 설비다. 한꺼번에 2백t짜리를 담금질할 수 있다. 이를 설치한 업체는 천안에 있는 에스에이씨(SAC·대표 한형기). 이 회사는 몇주 동안 시험가동한 성적서를 한국중공업측에 제출했다. ‘평균 온도 섭씨 1천1백도. 플러스 마이너스 4도 이내에서 온도를 유지하고 있음’.이런 성적서를 받아본 한국중공업측은 설마 그렇게 정교하게 온도가 제어될까 의심하며 처음부터 다시 시험을 하기로 결정한 것. 하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규모 작아도 거래처는 굵직굵직공업로는 금속을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장비. 기계부품이건 자동차부품이건 쇠로 된 것은 모두 담금질을 해줘야 한다. 그래야 경도와 강도가 높아지고 오래쓸 수 있게 된다. 기계나 자동차 관련업체들은 일반적인 설비는 국산을 쓰지만 중요부품을 담금질해야 하는 정밀 공업로는 주로 독일과 일본에서 수입해 사용한다.천안시 성환읍 율금리에 있는 에스에이씨는 공업로 생산업체다. 대지 2천1백평에 건평 7백평, 인원은 불과 25명. 전형적인 중소기업이다. 하지만 작지만 강한 회사다. 국내보다 외국에서 더 유명하다.세계적인 열처리업체인 아이헬렌이 이 회사와 합작하겠다고 나선 것도 에스에이씨의 뛰어난 기술을 인정한데 따른 것이다. ‘사운드 오브 뮤직’으로 유명한 오스트리아에 본사를 둔 아이헬렌은 1백30년의 역사를 지닌 업체. 자동차부품 열처리에 특히 강하다. 세계 최초로 침탄분위기 열처리로를 개발했고 이 분야에서 세계 시장의 70%를 장악하고 있다. 중국 독일 브라질 미국 프랑스에 계열사를 두고 있기도 하다. 아이헬렌은 에스에이씨에 최대 25%까지 단계적으로 출자키로 하고 우선 5만달러를 투자했고 곧 55만달러를 더 내놓을 계획이다. 이를 통해 양사가 기술과 마케팅분야에서 공동으로 협력키로 했다.에스에이씨의 주력제품인공업로들에스에이씨가 생산하는 제품은 공업로. 용도별로는 철강용와 자동차부품용 그리고 비철금속용이다. 1백% 주문제작이며 생산제품은 포철 한국중공업 인천제철 동부제강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등에 납품된다. 중소기업이지만 거래처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셈이다.이 회사는 우여곡절이 많은 업체다. 처음 출발은 도시가스 사업 등을 하는 삼천리그룹의 일개 사업부. 98년 삼천리그룹이 구조조정 차원에서 기계사업을 떼어내려 하자 상무로 일하던 한형기(47)씨가 맡아 분사했다. 엉겁결에 기업을 떠안게 된 것이다. 한 사장은 이 분야에서 16년 동안 일해왔고 모교인 인하대 대학원에서 금속공학 박사과정을 밟을 정도로 이 분야에서는 이론과 실무를 겸하고 있었다. 다만 기업을 경영하겠다는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 그렇다고 애착을 갖고 임원으로 몸담아온 이 사업부가 남에게 매각되는 것을 보고 있을 수 없어 경영 일선에 나서게 된 것.에스에이씨가 창립된 것은 98년7월이다. 독립후 임직원은 더욱 열심히 일했다. 스스로 먹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한마음으로 뭉쳐 뛰기 시작했다.국내 굴지의 폴리에틸렌 발포성형업체인 영보화학으로부터 수직발포로 1기를 수주했고 대우모터공업으로부터도 주문을 받았다. 일본의 특수강업체인 다이도스틸과 기술협력제휴를 맺었다. 올 4월에는 공업로 업체로는 드물게 벤처기업으로 등록했다. 아울러 같은 달에 천안공장을 준공했다.“엉겁결에 맡은 회사지만 이왕 기업경영을 하게 된 만큼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업체로 키워보겠다”는게 한사장의 꿈. 그는 열처리가 엄청나게 중요한 분야지만 국내에 있는 70여개 업체들은 대부분 종업원 10명 미만의 영세기업이라고 아쉬워한다. 오죽하면 에스에이씨가 국내 3대 메이커냐고 반문한다.“열처리장비인 공업로는 금속 기계 전기 전자 화학 요업 등이 결합된 첨단산업”이라고 설명한다. 게다가 온도를 정교하게 제어하려면 컴퓨터장비까지 다룰 줄 알아야 한다. 열처리가 제대로 돼야 다른 산업의 경쟁력도 높아진다. 그야말로 기반기술이요 산업의 뿌리인 셈이다.하지만 열처리하면 도금 염색 피혁 주물 단조와 더불어 대표적인 3D업종으로 꼽기 일쑤다. 대졸자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개발해야 할 것은 많은데 고급인력이 없어 발전이 더딘 산업이라는 것.자신이 이 분야에 투신할 때도 대졸자를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는 희망을 잃지 않는다. 아이헬렌과의 제휴는 이런 측면에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말한다.◆ 공업로 업체로는 드물게 벤처기업 등록그는 이번 제휴를 계기로 수출에 적극 나설 계획이다. 우선 중국 동남아 중동을 1차 목표로 잡고 있다. 매출목표도 의욕적으로 늘려잡고 있다. 지난해 27억원에서 올해는 75억원, 내년에는 1백50억원으로 잡고 있다. 또 앞으로 이 기술을 활용해 다양한 사업을 벌일 계획이다. 대표적인게 표면처리와 반도체장비사업. 표면처리는 진공열처리나 플라즈마열처리 등이다. 내년 상반기부터 시작할 예정이다. 반도체장비는 2~3년 뒤에 진출할 계획이다.배와 거봉포도로 유명한 지역에 본거지를 둔 에스에이씨가 열처리와 반도체장비분야에서 어떤 탐스런 열매를 거둘지 기대해보자. (041)582-6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