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환율이 다시 불안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필리핀의 페소화 환율이 연일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태국 바트화 환율도 98년 중순 이래 최고치를 보이는 중이다. 인도네시아 루피아화도 가치가 연초대비 20% 이상 하락한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동남아 환율이 상승기조를 보인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동남아 국가들의 환율은 99년 중반까지 안정세를 보이다가 같은해 말부터 상승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최근의 움직임은 환율상승세가 좀 더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동남아의 환율불안 원인은 각국의 경제가 아시아 금융위기의 여파에서 충분히 회복되지 못한 데다가 정치적인 불안이 고조되면서 해외로 유출되는 자본이 많아졌기 때문이다.올해 동남아 국가들의 환율동향을 살펴보면 이 지역의 정치불안이 높아질 때 환율이 동반상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난 7∼8월에는 인도네시아의 정치불안으로 환율이 높아졌고 최근에는 필리핀 대통령의 뇌물수수 스캔들이 환율 상승을 야기하고 있다.필리핀에서는 대통령에 대한 사임 요구가 거세지고 의회에 대통령 탄핵안이 상정되면서 정국이 매우 혼란한 상태이다. 총선을 앞둔 태국의 상황도 불안정하다.동남아 각국 경제는 언뜻 보기에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99년 하반기부터 수출이 상승세를 타고 민간소비와 투자도 회복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00년 상반기의 동남아 각국 성장률은 예상보다 높게 나타나기도 했다.그러나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금융기관 부실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고 기업의 재무구조도 취약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산적자가 늘어나면서 각국 정부의 재정상황도 악화되고 있다.동남아 경제가 겉으로 보기에는 성장궤도에 재진입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매우 취약한 기반 위에 서있는 셈이다. 여기에 유가인상, 미국 주가하락 등 국제환경도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다.◆ 경제문제 예측위해 정치상황 주시지금의 동남아는 경제문제가 정치상황과 얼마나 밀접한 연관이 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각국 정권이 정치불안을 해소하고 경제개혁을 충실히 이행한다면 자본유출이 감소하면서 환율이 안정될 수 있겠지만 지금 상황으로서는 이를 기대하기 어렵다. 동남아 경제를 예측하려면 각국의 정치상황을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외환위기 이후 동남아 국가들은 단기외채 비중을 크게 줄이고 외환보유고 확충에 힘썼다. 그 결과 현재 동남아에서 국가부도 위기가 재발할 가능성은 크게 낮아졌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환율 상승은 외채를 지고 있는 기업과 금융기관의 수익성을 악화시키고 금리와 물가에 상승압력을 준다. 이는 경기를 둔화시키고 경기둔화는 다시 추가 투자감소와 자본유출을 야기하게 된다.동남아의 실물경기가 지금은 괜찮은 듯 보이지만 환율이 계속 높아지면 경기가 둔화되고 이것이 다시 환율을 압박하는 악순환이 형성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