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박사는 고등학교 시절 장래에 대해 뾰족이 원하는 것이 없었다. 다만 취업하기에는 공대가 좋다는 부모님의 권유로 이과를 선택했고 서울 공대에 들어갔다. 남들하는 만큼 공부를 했고 졸업 후 주위의 친구들 따라 미국으로 가 박사학위를 마쳤다. 공부를 하면서 특별히 학문에 대한 호기심이나 열정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그저 생활의 한 방편으로 그 길을 택한 만큼 학위를 따는데 꽤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었다. 학위를 따고 늦은 나이에 처음으로 기업에 들어간 그는 무능한 상사, 어리석은 각종 제도와 시스템, 무기력한 부하직원들을 보면서 그곳의 직장생활이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별다른 대안이 없었고 그는 불평하면서 세월을 보냈다. 지금도 그는 끊임없이 직장생활의 지겨움에 대해 얘기하면서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단다. 그의 얘기를 듣고 있으면 힘이 쪽 빠지면서 “저렇게 지겨우면 다른 방법을 모색하지 왜 저러면서 몇년째 그 회사를 다니고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또 한 친구가 있다. 그도 역시 적성과는 상관없이 비슷한 이유로 공대에 들어갔고 얼마 후 공대와 자신의 적성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당연히 전공 공부보다는 자신이 매력을 느끼고 있던 사회학에 매료됐지만 생활이 급했기 때문에 졸업 후에는 전공과 관련된 화학회사의 연구소에 취직을 했다. 늘 회사 업무가 지겨웠던 그는 일과 후에 틈틈이 사회학을 공부하는 것으로 자신의 갈증을 달랬다. 더 전문적인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결혼해 처자식이 딸리고 노부모까지 부양해야 하는 그로서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발견하고도 여러 이유로 그것을 포기하면 평생 한이 될 것이다”란 충고를 듣고 과감하게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그는 몇년 후 사회학 박사가 됐고 지금은 지방대에서 사회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물론 그는 지금 행복하다. 만약 그가 하고 싶은 일을 미루고 하기 싫은 연구 업무를 계속하면서 지금까지 지냈다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사람에게 있어 일과 직업만큼 소중한 것은 별로 없다. 하지만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서 만족하는 사람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본인 생각과는 상관없이 아버지가 의사라는 이유로 의대 가기를 강요당해 의사가 된 사람도 있다. 조그만 병원에서 하루종일 아픈 사람만 상대하는 일이 자기는 너무 싫다고 한숨을 쉬는 사람, 공부를 잘 한다는 한가지 이유로 서울법대를 나와 검사까지 하고 있지만 나하고는 안맞는다는 한탄을 하는 사람, 적성에는 안 맞지만 그동안 한 공부가 아깝다며 못 가본 길을 그리워하면서 살고 있는 사람도 있다. 직업의 중요도에 비해서 직업이 결정되는 과정은 의외로 원시적이라 할 수 있다. 일류대학은 가야겠는데 원하는 과의 커트라인이 높아 다른 과를 찾다보니, 취직하기가 쉬워서, 부모님의 못 다한 꿈을 이루기 위해….사람에게 대학이나 첫 직장은 정말 중요하다. 그 사람의 전체 인생을 결정지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처음 전공이나 직장이 자신과 딱 맞을 확률은 복권의 당첨확률처럼 희박하다. 인생이란 죽을 때까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가는 과정일 수도 있다. 또 일에서 만족을 못 한다면 다른 것에서 아무리 만족해도 그 인생이 공허하게 느껴질 것이다. 인생에서 늦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하루를 살더라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 평생을 불평하면서 사는 것보다 나을 수 있다.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이는 모든 사람이 평생을 살면서 생각해야 할 화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