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희재지음/새움/288쪽/2000년/8천5백원

인터넷이 몰고 오는 변화가 의미심장한 이유는 그것이 삶의 방식을 직접 바꾸어 놓기 때문이다. 아침에 출근하면 자판기 커피 한 잔을 들고 동료들과 잡담을 나누던 샐러리맨은 이제 제일 먼저 메일박스를 열어본다. 여태까지 백화점에서 물건을 사는데 불편을 못 느꼈는데도 사람들은 어느날부터인가 인터넷 쇼핑몰을 누비는 자신을 발견한다. 개개인에게는 이런 하찮은 일들이 어떤 역사적 사건보다도 중요한 것이다.그래서 이 책은 예전과는 다른 생활 방식을 창조하고, 이끌어가는 기업에 관한 이야기를 모았다. 여기에 소개된 16개 기업은 가장 돈을 많이 버는 곳이 아니라 삶에 밀착해있는 인터넷 회사다. 이들은 잊었던 초등학교 동창을 만나게 하고(아이러브 스쿨), 온국민을 기자로 만들며(오마이 뉴스), 천생 배필을 찾아주고(피어리), 제3의 공간을 통해 공동체를 꿈꾸게 하는(진보네트워크) 것이다.서술 방식은 다음과 같다. 우선, 해당 분야의 사업에 대한 개괄적·이론적 이해를 돕기 위해 저자가 습득한 지식을 정리한다. 그리고는 그 기업이 어떤 회사인지를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회사의 미래, 인터넷과 벤처기업에 대한 철학, 해당 회사가 안고 있는 핵심 쟁점들에 대한 경영자의 인터뷰와 저자의 의견이 뒤섞여 있다. 이같은 저자의 태도는 책의 기획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호하게 하고 있다. 독자는 여기서 무엇을 읽어야 하는가. 인문학적 교양을 쌓는 것인가, 인터넷 혁명을 바라보는 관점을 습득해야 하는가, 성공한 인터넷 기업의 사례를 통해 돈버는 비법에 대한 힌트를 얻어야 하는 것일까.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업종, 다양한 관심사, 다양한 경력의 경영자들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것은 이 책이 제공하는 즐거움 중 하나다. 난잡하게 흩어져 있는 그들의 이야기 중에서 보석같은 생각의 단초들을 건져내는 것은 독자의 몫일 터. 예컨대 ‘언어과학’ 정회선 사장의 인터넷과 언어 사이 역학관계에 대한 발언은 인문학자이자 엔지니어인 그가 세상을 보는 방식을 독자로 하여금 엿볼 수 있게 한다.“언어에도 시장원리가 있다. 아프리카에서 천명 정도가 쓰는 언어는 도태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어 사용자는 남북한 합쳐 7천만명이고, 만일 중국과 교류한다고 쳤을 때, 중국인들이 한국어를 배워야 유리하다면 그들도 한국어를 배우게 될 것이고 그러면 한국어 사용자가 늘어나게 된다. 번역기 등 언어처리 기술 영역을 확보하지 않고 영어공용화론이나 부추긴다면 솔직히 말해 한국어가 사라질 수도 있다.”이윤을 위한 기업경영이라는 비즈니스 마인드로부터의 접근과, 삶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는 사회학적 접근 중 어느 한쪽만으로는 인터넷 기업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고 본 저자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 했다. 전반적으로 진행이 혼란스러운 이유도 여기 있는 듯하다. 그렇지만 서문에 저자가 말한대로 ‘사이트 10개가 무너져도 내 삶은 다시 예전처럼 돌아가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흥미롭게 이 책을 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