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홍보 앞장, PPP로 신작 지원 등 성과 푸짐 … 안정적 재원 확보, 성공 열쇠

모처럼의 술자리에 어린 시절의 친구들이 모였다. 연락이 뜸해서 그 무리에서 잊혀졌던 동창 한명이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했다는 소식이 그날의 화제가 됐다. 이제는 어른이 된 친구들이 제각각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 ‘야, 공부도 못하고 별볼일 없던 녀석이었는데. 사람 일 정말 알 수 없어.’ ‘난 걔가 크게 될 줄 알았다니까. 어렸을 때부터 범상치 않았다구.’부산국제영화제도 비슷한 길을 걸어 왔다. 1회때 ‘에이,설마∼’가 2회때는 ‘어 제법?’으로 바뀌었고 3회 넘어서부터는 말많은 영화계 호사가들도 그냥 입을 다물어 버렸다. 열정 하나로 덤벼든 당사자들은 물론, 누구도 영화제의 미래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했는데 5년만에 부산 국제영화제는 흔들림없는 아시아의 국제 영화 축제로 자리잡은 것이다.한국영화 국내외서 승승장구무엇을 두고 부산영화제가 성공했다고 말하는 것일까. 영화제 사무국측은 이를 크게 세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한국 영화를 해외에 널리 알리는데 큰 기여를 했다. 모든 국제영화제는 1차적으로 자국 영화산업의 진흥과 발전을 목적으로 한다. 요즘 한국 영화는 안팎으로 호시절을 맞이하고 있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우리나라는 미국을 제외하고 자국 영화가 시장점유율 30%를 넘는 ‘희귀국’ 중 하나다. 게다가 외국에서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요즘 한국 영화는 단기간에, 나라밖에서 너무 잘 팔리는 바람에 오히려 ‘현실이 (영화 관계자들의)의식을 앞서갈 정도’다. (132p <쉬리 designtimesp=20443> 참조)둘째, 아시아 영상 산업의 중심지로서 자리매김 할 수 있었다. 아시아의 신인 감독들을 발굴해 세계에 내보냈고 네트워크도 만들었다. 이와 관련, 빼놓을 수 없는 것이 PPP(Pusan Promotion Plan)다. 일종의 프로젝트 파이낸싱 마켓을 여는 것으로, 영화 감독과 제작자, 투자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투자와 합작을 논할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주는 역할을 한다. 2회 영화제때 시범 운영을 시작해 3회부터 본격 가동, 3회때 15편, 4회에는 17편, 올해 열렸던 5회 영화제에서는 22편의 신작 프로젝트를 선정해 감독 제작자와 투자자들을 짝짓기했다.정태성 PPP 수석운영위원은 “미국에서 흥행에 성공한 일부 일본영화들을 제외하고는 그간 아시아 영화인들은 각자 자기 나라에서만 소화되는 영화를 만들어 왔다. 그런 차에 아시아 감독, 프로듀서 수백명이 한자리에 모여 투자와 합작을 논하고 만나면서 얼굴을 익힐 기회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PPP는 벌써 가시적인 성과를 냈다. <순환 designtimesp=20448> <플랫폼 designtimesp=20449><얼굴 designtimesp=20452> <시인 designtimesp=20453> 등 올해 베니스영화제 등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수상했거나 경쟁부문에 초청돼 화제를 모은 아시아 영화들이 PPP를 통해 태동한 작품들이다.셋째, 지역적으로 부산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고 우리나라에 유례없는 세계 축제를 부산에 자리잡게 했다. 3회 영화제 후 부산시가 영화제의 경제적 효과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투자개념으로 계산할 때 부산영화제는 25억원으로 2백5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영화제 기간의 극장수입, 음식 숙박 유흥 교통 등 직접 지출비용에 고용창출 효과 등을 합한 것이다.계량이 불가능한 눈에 보이지 않는 문화적 파급효과는 이보다 훨씬 크다. 4회 영화제를 전후해 부산영상위원회가 발족, 활동을 시작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부산영상위원회는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생긴 ‘필름커미션’이다. 이는 비상업 공공기관으로 영화 촬영 유치와 지원, 촬영장소 관련정보 제공, 제작관련 시설과 인력제공, 후반작업시설과 영상산업 유치 등을 주업무로 한다. 부산영상위는 영화촬영시 한 장면을 찍기 위해 소방서, 경찰서 등을 일일이 쫓아다니지 않아도 되는 ‘원스톱 서비스’ 체계를 마련하고 있다. 올해부터 조금씩 성과가 나타나 최근 개봉한 <리베라 메 designtimesp=20458> 등 올해 부산영상위에 부산로케이션 지원을 신청한 영화가 모두 23편이나 된다.부산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이같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어려운 문제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도무지 색깔이 불분명하다는 상영작들, 해마다 지적되는 진행 방식 등 부산영화제가 칭찬만 받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가장 큰 어려움은 역시 안정적인 재원 마련이다. 5회 27억원, 4회 26억5천만원, 3회 25억원, 2회 24억5천만원 등 영화제 예산은 보통 25억원대다. 5회의 경우 부산시 5억원, 국고지원 10억원, 기업 스폰서와 관객 입장 수입 등으로 나머지를 충당했다. 약간의 빚과 함께 아직까지는 그럭저럭 수입과 지출을 맞춰 가는 편이다. 하지만 국고 보조금이 언제 끊길지 모른다는 것. 일단 내년까지는 지원을 약속받았다. ‘하루 하루 넘기는’ 시스템에서 벗어나야 프로그램 개발 등 영화제의 질을 높이기 위한 체계적인 지원이 이뤄질 수 있다고 영화제 스태프들은 말했다. ‘부산영화제를 사랑하는 모임’이라는 NGO가 생기고, 재단 설립 움직임이 있는 등 안정적인 재원 확보를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워낙 대규모 일을 벌이다 보니 설왕설래도, 잡음도 많다. 하지만 김동호 위원장은 “영화제가 자리를 잡으면서 해마다 외국 언론의 관심도 늘어 프랑스 르몽드, 미국 버라이어티 뉴욕타임즈 등 주요언론의 외신기자들이 부산국제영화제를 열심히 취재했다. 정부가 몇십억원의 해외홍보 예산을 쓴들 이런 효과를 거둘 수 있을까”라는, 문화산업의 ‘괴력’을 함축하는 한마디로 ‘가치있는 노력’임을 상기시켰다.★ 인터뷰 /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 위원장동고동락 5년 “영화에 살고 영화에 죽고”김동호(63)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 위원장. 그야말로 부산영화제와 동고동락을 함께 한 인물이다. 그는 문화부(현 문화관광부)와 산하기관을 두루 거친 문화행정 전문관료 출신. 오늘도 ‘그저 즐거워서’ 매일 새벽 4시면 일어나고 일년의 반을 해외에서 보내는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그간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했던 1회 영화제때,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고 공감을 얻는 것이 가장 힘든 문제였다. ‘국제 영화제’자체에 대한 개념도 없었다. 이제는 이런 태도가 아주 많이 바뀌었다. 무엇보다 부산 시민들이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리고 모든 문화 사업이 그렇듯이,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은 ‘돈’이다.▶ 5회까지 마친 지금 부산영화제는 어디쯤 와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명실상부한 아시아 영화의 중심지로 자리잡는 것이 목표였다. 지금 이런 목표를 80% 이상 성취했다고 본다. 현재의 위치를 더욱 확고히 다지면서 영화제의 아시아 프로그램 개발에 더욱 투자를 해야 할 것 같다.▶ 영화제 기간이 아닌 때는 무슨 일을 하는가. 평소 일과는.모든 스태프들이 영화제 기간이 아니라도 항상 바쁘다. 지난 영화제를 정리해야 하고, 또 다음 영화제를 준비해야 하니까. 각종 해외 영화제에 참가해서 세계 영화계 인사들과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것도 일이다. 이틀전에는 영화인들과 함께 북한에 다녀왔다. 그쪽 인사들 술만 먹이고 왔지 뭐.(웃음. 김위원장은 ‘말술’로 유명하다.)▶ 가장 큰 성공 요인을 꼽는다면.여러 가지가 있지만 우수한 인력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다른 무엇보다 우선한다. 영화제의 성공을 이젠 무슨 역사적 사명이나 종교교리처럼 생각하는 스태프와 자원봉사자들이 없었다면 영화제의 오늘도 없었다. 영화란게 원래 마력이 약간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