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경기불안이 심화되면서 엔화 환율이 급류를 타고있다. 도쿄증권시세판.일본이 추가적으로 금리를 인상하거나 원/엔 환율이 국내기업들에 불리하게 움직일 경우 고리대금업을 통한 엔화 자금이 갑작스럽게 회수당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정책당국에서는 기업들의 자금난이 완화될 수 있도록 국내 금융시장을 시급히 안정시켜야 한다.11월20일, 일본 모리 내각에 대한 불신임 투표 이후 엔화 환율이 급류를 타고 있다. 금년 들어 1백10엔 이하 수준에서 움직였던 엔화 환율이 24일에는 6개월만의 최고치인 1백11엔대로 상승했다.최근 들어 엔화 환율이 오르는 것은 미국경제보다는 일본경제가 원인을 제공해 주는 측면이 강하다. 지난 10년간 호황을 누려온 미국경제는 3/4분기 성장률이 2.3%를 기록할 정도로 연착륙 조짐이 뚜렷하다.반면 일본경제는 지난 8월 제로금리정책을 포기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으나 최근 들어서는 경기재둔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주요 예측기관들은 금년 상반기에 2%대의 성장세를 보인 일본경제가 최근 들어서는 1%대로 주저앉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특히 일본경제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있는 것이 문제다. 모리 내각 불신임 투표 이후 정치권이 표류하고 있는데다, 계속된 주가하락으로 일본내 외국인 자금들이 이탈되고 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일본 국민들의 재산까지 유출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점이다.엔화 환율 상승세 반전시킬 요인 없는 상태그렇다면 앞으로 엔화 환율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한마디로 일본경제 자체적으로는 최근 엔화 환율의 상승세를 반전시킬 만한 요인이 없는 상태다. 무엇보다 일본경제를 부양시킬 수 있는 정책수단이 제한돼 있다. 이미 국가채무가 국민소득의 1백32%에 달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추가 재정지출을 통해 경기회복을 모색하는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일본은행도 많은 논란속에 제로금리정책을 포기한 이상 금리를 다시 내리면 정치적인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경제 내부적으로도 경기회복의 관건인 민간소비가 회복될 기미가 안보인다. 현재 일본국민들은 미래가 불확실함에 따라 금리수준과 관계없이 저축해 놓고 보자는 심리가 강하다. 금융기관들도 부실채권과 구조조정에 대한 부담으로 기업들에 자금을 제때에 공급해 주지 못하고 있다.이 상황에서 국제금융시장이 불안한 조짐을 보임에 따라 국제투자자들은 안전통화로서 달러화를 보유하고자 하는 심리가 강해지고 있다. 더욱이 차기 미국정부가 ‘강한 달러화 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시점이다.만약 이런 요인들이 그대로 반영된다면 엔화 환율은 내년말에 1백30엔을 넘어설 것으로 환율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물론 이 경우 엔화 환율에 크게 의존하는 우리를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은 97년 외환위기 당시와 마찬가지로 커다란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다행인 것은 미국의 경상수지적자가 갈수록 확대되고 있는 점이다. 미국의 경상수지적자는 올해에만 4천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확실시되고 있다. 이에 따라 차기 미국정부는 경상수지적자를 줄이는 문제가 최대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엔화 환율이 크게 상승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문제는 98년8월 러시아 채무상환 불이행(모라토리엄) 사건 이후 우리 경제에 커다란 도움을 줬던 엔화 환율이 상승국면으로 돌아섰다는 점이다. 그동안 많은 지적이 있었으나 우리 수출상품은 여전히 엔화 환율에 크게 의존하는 천수답(天水畓)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특히 최근처럼 원화 환율이 불안한 상황에서 엔화 환율마저 상승될 경우 다시 원화 환율이 급등하는 악순환 국면에 빠질 우려가 있다. 현시점에서 정책당국과 기업들이 미국의 통상압력과 함께 엔화 환율의 상승세에도 대비책을 강구해 놓아야 하는 것도 이런 연유다.한편 엔화 환율이 불안해지면 국내기업 입장에서는 유념해야 할 점이 있다. 바로 99년 2월 일본이 제로금리 정책 추진 이후 국내기업들이 이용해 왔던 국제고리대금업을 통한 엔화 자금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최근 들어 국내기업들은 잇단 신용금고 사건, 금융기관의 구조조정, 주식 및 채권시장 침체로 국내에서 자금조달 길이 막히면서 심한 자금난에 몸살을 앓고 있다. 상대적으로 대부분 국내기업들은 국제기채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만큼 대외신용이 뒤받쳐 주지 못함에 따라 국제고리대금업을 통한 엔화 자금에 대한 선호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국제고리대금업을 통해 엔화 자금이 표적이 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일본 금융기관(혹은 일본인 개인자금)과 국내기업간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요인이다. 일본 금융기관들은 제로금리정책 추진 이후 일본내에서 금융수익을 낼 수 있는 수단이 제한돼 있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지난해 이후 주식, 채권, 부동산 시장이 모두 침체되고 있기 때문이다.반면 우리 기업들은 국내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길이 막혀 있다. 국내 금융기관들은 구조조정과 BIS(국제결제은행) 비율을 맞추기 위해 대출을 극도로 자제하고 있다. 주식과 채권시장도 침체국면이 지속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사채시장을 이용할 경우 15% 이상의 높은 금리를 부담해야 한다. 이에 따라 일본 금융기관들은 한국내 유령회사(혹은 캐피털 회사)를 통해 연 5∼6%의 보장금리로 엔화 자금을 공급해 주면 국내기업들은 중개수수료를 부담하더라도 7∼8%의 싼 금리로 자금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고리대자금의 성격상 국내기업들이 밝히기를 꺼려서 현재 국내에 유입된 엔화 자금이 정확히 얼마가 되는지 알 수 없는 실정이다. 그러나 최근에 국내기업들은 대기업뿐만 아니라 코스닥 시장침체로 심한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는 벤처기업까지도 이 자금을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A그룹의 자금담당 한 임원은 “지금까지 국내기업들이 고리대금업을 통해 들여온 엔화 자금은 현재 환율로 환산해서 2천~3천억원 정도로 파악되고 있다. 우리 기업만 하더라도 60억원에 달하고 있다”고 밝혔다. B벤처기업의 사장도 “최근의 자금난을 극복하기 위해 고리대금업을 통한 엔화 자금에 마지막 승부수를 띄우고 있다”고 말했다.엔화자금 수요증대 가능성 커최근 들어 연말 자금수요까지 겹치면서 일부 기업들의 경우 고리대금업을 통한 엔화 자금을 구하기 위해 금리를 덧붙여 주는 이상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특히 대내외 환경이 불투명함에 따라 대부분 기업들이 내년 경영계획을 원활한 현금흐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일부 대기업의 경우 벌써부터 자금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현재 일본경제가 다시 재둔화 조짐을 보임에 따라 일본금리가 추가적으로 인상될 여지는 적은 상태다. 따라서 환율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고리대금업을 통한 엔화 자금수요는 증대될 것으로 예상된다.문제는 일본이 추가적으로 금리를 인상하거나 최근처럼 엔화 환율이 불안해 원/엔 환율이 국내기업들에 불리하게 움직일 경우 고리대금업을 통한 엔화 자금이 갑작스럽게 회수당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97년 외환위기 당시에도 일본 금융기관들이 국내 금융기관과 기업들에 대출해준 자금을 회수한 것을 계기로 미국, 유럽 금융기관들의 대출회수까지 이어지면서 우리나라가 외화유동성 부족에 몰리는 사태가 발생한 바 있다. 따라서 정책당국에서는 기업들의 자금난이 완화될 수 있도록 국내 금융시장을 시급히 안정시켜야 한다. 국내기업들도 고리대금업을 통해 이용한 엔화 자금의 회수가능성에 대비해 놓아야 갑작스럽게 곤경에 빠지는 일은 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