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서니 기든스외 편저/박찬욱외 옮김/생각의 나무/434쪽/2000년/1만2천원

요즘 직장인들은 둘만 모이면 세칭 ‘비디오 스캔들’ (보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표현으로는, ‘김시원의 성 기록물 유출 사건’) 얘기를 한다. 반면 한국 지식인들은 둘만 모이면 ‘세계화(globalization)’와 ‘전지구적 자본주의(global capitalism)’에 대해 얘기하는 분위기다.비단 한국 지식인 사회에서만은 아니다. 다양한 각도에서 전지구적 자본주의가 조명되고, 다양한 입장의 화자들이 이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세계화에 맞서 싸워라”고 말한다. 다만 “어떻게?”에 대해서는 명확한 대답이 없다. 영국 블레어 총리의 고문이자 사회학자인 앤서니 기든스는 평등·유대·사회정의와 같이 사회주의가 지향했던 가치들을 물타기해,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폐혜의 농도를 살짝 낮춰보자고 주장한다. 보다 전통적 우파인 미국 언론인 밀턴 프리드먼 같은 경우에는 이를 찬양하고 약간의 단점들을 보완해 좀더 완벽한 모습으로 길이 계속되기를 기원한다. 좌파 진영에서도 <누구를 위한 세계화인가 designtimesp=20448> 책을 낸 다니엘 싱어, <허울뿐인 세계화 designtimesp=20449>의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어떻게 자유주의를 극복할 것인가 designtimesp=20450>의 알렝 뚜렌 등이 ‘달려오는 트럭에 조약돌을 던지듯’ 세계화의 실상을 파헤치거나,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들을 모색하고 있다.세계화에 대해 한 마디씩 하는 이 다양한 사람들의 유일한 공통점은, 전지구적 자본주의가 승승장구하고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21세기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자본주의의 명확한 대안이 없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자가 말하는 것처럼 ‘한국인들은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왕좌왕 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위기가 낳은 혼란의 끝이 어디인지 모르고 마냥 헤매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백전 백승, 처해있는 현실이 무엇인가를 정확히 아는 작업이 우선 필요하지 않을까.<기로에 선 자본주의 designtimesp=20455>는 세계화에 대한 뚜렷한 입장표명이나 주장을 전면에 내세우는 책은 아니다. 이는 <전지구적 자본주의와 더불어 살아가기(Living with Global Capitalism) designtimesp=20456>라는 책의 원래 제목에서나, 기든스부터 미 연방준비은행 총재를 지낸 볼커, 금융가 조지 소로스, 저널리스트 토인비, 사회학자 울리히 벡 등 한데 묶기 어려워 뵈는 각양각색의 저자들의 글을 한 권에 아우른 데서도 알 수 있다. 자본주의의 서로 다른 두 얼굴을 현장감있으면서도 깊게 묘사하는 것이 편저자들의 의도로 보인다. 경제, 사회, 언론 등 다양한 학문과 직접 관련을 맺는 글들이 어우러져 있고 일상의 면면을 포착하는 글부터 거시 구조적 분석에 관심을 집중하는 글까지 망라되어 있다.전체를 아우르는 시각에 대한 요구가 세계화시대의 중요한 특성 중 하나다. 특정 관심사에 따라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어느 한 단면만을 보면서 전부를 보는 양 착각하는 우를 범하기 쉽다. 이 책은 전지구적 변화의 성격과 방향을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착실한 교양서다.편저자 중 하나인 허튼이 21세기의 전지구적 자본주의가 그 이전 자본주의와 갖는 연속성을 강조하는 반면, 기든스는 불연속적 변화를 부각시킨다. 그러나 두 편자는 모두 전지구적 자본주의가 창조적 혁신 능력으로 새로운 기회를 연다는 긍정적인 관점에서, 사회의 가치를 구현하려는 노력도 병행되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