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 KOSPI가 50% 가까이 폭락하는 장 속에서도 KOSPI 대비 10~16%의 초과수익률을 기록한 펀드(설정액 1천억원 이상)들이 있다.(표 참조) 절대수익률을 기준으로 하면 원금을 까먹은 펀드들이지만 주식편입비율을 50% 이상 유지하면서 이같은 수익률이 나왔다는 것은 ‘칭찬’해줄 만하다. 약관에 따라 주식을 일정 비율이상 보유하면서 폭락장세 속에서 ‘사투’를 벌여 방어한 수익률이기 때문이다.폭락장에서 선방한 펀드들의 운용 특징을 요약하면 “성장주보다 가치주 투자에 주력했다”고 정리할 수 있다. 코스닥 등록 종목이나 IT분야 기업의 주식에 투자하지 않고 내재가치가 좋은 실적 우량주에 투자했다는 얘기. 또 하나의 특징은 위험한 투자는 피하며 이익실현은 적정한 규모로 가져간 이른바 ‘Low Risk, Middle Return’의 전략이다. 남들 못할 때 덜 못하고, 남들 잘 할 때 덜 잘하는 운용철학이 약세장에서 위력을 발휘했다.실적 우량주 투자, 약세장에서 위력 발휘이 전략에 가장 충실했던 곳은 동원BNP투신운용. 이영석(38) 주식운용1팀장과 이준희 2팀장은 신탁재산의 2%가량만 코스닥에 투자하고 나머지는 거래소의 우량종목만 공략했다. 내재가치가 우수하면서 업종별 1등주만을 투자종목에 편입했다. 이 결과 KOSPI 대비 16.72%의 초과수익률을 기록했다.지수방어에 성공하는데 기여한 종목들로는 롯데칠성과 유한양행, 삼성SDI 등을 들 수 있다. 롯데칠성에선 1백%의 수익률을, 유한양행에선 70%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은행종목 중에서도 국민은행, 주택은행 등에만 투자했다.이영석 팀장은 “저평가된 주식을 발굴하기 위해 매일 아침 동원경제연구소 애널리스트들과 모닝 컨퍼런스를 갖고, 각 증권사 유명 애널리스트들과 매주 1~2차례 세미나를 열었다”고 말했다. 동원BNP의 포트폴리오 종목은 삼성SDI, 한국통신, 삼성전기, SK텔레콤, 담배인삼공사, 가스공사, 유한양행, 신도리코, 삼성화재 등이다.동원BNP 다음으로 시장수익률을 성공적으로 방어한 미래에셋자산운용은 KOSPI 대비 12.37%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주식형펀드 전체 수익률에서는 2위를 기록했지만, 개별 뮤추얼 펀드의 수익률(6개월 누적수익률 기준) 상위에선 미래에셋의 코리아벤처펀드1, 박현주성장형3호, 6호가 1, 2, 4위를 차지하는 등 약진했다.이봉현 팀장과 선경래(34) 팀장이 이끈 미래에셋 주식형 펀드는 IT 주식의 편입 비율을 줄이고 음식료, 제약, 도시가스 등 이른바 경기방어주 투자에 주력했다. 올초만 해도 IT 주식의 투자비율이 70%가량 됐지만, 2/4분기 들어 농심, 유한양행, 도시가스, 삼천리 등 내수관련 주의 투자비율을 40%로 끌어올리고 IT 주식은 30%대로 낮췄다.지난 6월 종합주가지수가 630에서 800까지 반등할 때 이 장을 주도한 증권주를 싼 값에 매입, 800선에서 모두 처분해 이익을 많이 남긴 것도 수익률 방어에 기여했다. 다시 500선까지 하락할 때는 주식편입비율을 줄이고 선물 옵션 등 파생상품을 통해 위험을 회피, 지수방어에 좋은 성과를 거뒀다.미래에셋의 운용철학은 한마디로 ‘밸류 인베스트먼트(Value Investment)’. 기업수익이 확실한 곳에 장기투자하고, 내재가치가 우량한 주식에 투자하는 등 기본에 충실하자는 것. 선팀장은 이를 위해 적어도 3번 이상 기업을 방문해 투자여부를 결정한다. 기업탐방을 갈 때는 경영자가 주주가치를 중시하는 투자를 하는지, 현금여력이 풍부한지를 꼼꼼히 따진다. 예컨대 농심은 현금여력이 풍부해 주가가 떨어졌을 때 무상증자를 단행, 주주들을 안심시켰다. 이같은 사실을 기업탐방을 통해 확인한 후 선팀장은 농심 주식 30만주를 매입, 1백20%의 수익률을 거뒀다.투자 종목수 적절히 조절, 지수방어에 성공올해 지수방어에 성공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요인은 종목수를 적절히 조절했다는 점이다. 올해처럼 약세장이면서 주도주가 없는 경우엔 종목수를 40~50개 가량으로 늘려 투자한다. 투자 종목수를 늘리는게 위험 회피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다. 지난해처럼 강세장이면서 주도주가 확실할 때는 20~30개 종목으로 좁히고 주도주를 따라가는 것이 좋다. 선팀장은 “내년엔 지난해와 올해의 중간 정도로 예상, 30~40개 정도로 투자종목수를 조절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최저 400포인트에서 700포인트까지 박스권을 형성하면서 주가가 움직이리란 예상에서다. 그는 “지금처럼 종합주가지수가 500선이라면 펀드에 투자해도 괜찮다”고 전했다. 미래에셋에서 보유한 종목은 삼성전자, 삼성전기, 제일모직, LG건설, 도시가스, 유한양행, 엔씨소프트 등이다.신영투신운용은 수익률 성적표에서 3위를 기록했지만 업계에선 “상당히 안정적으로 펀드를 운용하는 곳”으로 정평이 나있다. 경쟁사보다 크게 수익을 내지는 않지만 약세장이나 폭락장에서 신영투신의 방어능력은 돋보인다. 상대적으로 방어를 잘 하기 때문이다. 허남권(38) 주식운용팀장은 “펀드 매니저 개인의 능력에 의지하지 않도록 회사의 시스템이 잘 구축돼 있어 안정적으로 펀드를 운영할 수 있다”고 말했다.예컨대 주식편입비율중 30%는 시황과 관계없이 내재가치가 좋다고 판단한 종목들로 구성한다. 시가총액 3천억원 미만의 중소형 가치주들로 예를 들면 유한양행, 롯데제과, 농심, 한국단자, 삼립, 삼화전자 등이다. 나머지 70%도 블루칩, 업종대표주에 투자한다.투자 종목을 선정할 때는 허팀장이 최종 결정하지만 그전에 투자전략팀과 주식운용위원회의 철저한 검증을 거친다.현재 신영투신의 주식형펀드 운용역은 허팀장을 포함해 4명. 이들이 커버하는 종목은 거래소와 코스닥 등록종목 중 1백여개. 이들은 매주 2~4개 기업의 탐방을 나간다. 현장에서 직접 보고 듣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는 판단에서다. 허팀장은 “시장지배력이 있는 상품을 생산하는지, 주주 배당정책은 있는지, 불황의 시기를 헤쳐 나온 경험이 있는지 살펴보면 대략 우량기업을 판별해낼 수 있다”고 전했다.상승장이었던 지난해, 그리고 폭락장이었던 올해엔 펀드매니저들의 실적이 다같이 잘하거나 못하거나 둘 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개별 종목별로 주가가 차별화를 보일 내년엔 펀드 매니저들의 실력이 고스란히 드러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개별 펀드 수익률 상위펀드주식성장형 펀드의 개별 수익률 상위(지난 1월4일 기준)를 보면 신영투신의 신영크레디트주식1-2의 수익률이 0.43%(벤치마크 대비 46.55%)를 기록, 1위에 올랐다. 벤치마크는 KOSPI수익률과 MMF유형지수수익률을 감안한 것. 이 펀드의 경우 주식편입비 30% 이내에서 운용한 것으로 선물과 현물의 가격차이를 이용해 차익거래를 한 펀드다.주식성장형 수익률 2위는 대한투신의 윈윈원더풀주식S-29로 마이너스 9.47%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지난해 9월 설정된 이 펀드는 이재현 매니저가 운용하는 것으로 주식편입비 40% 내에서 운용된다. 수익률 3위는 한국투신운용의 PK맞춤주식자신탁1로 수익률은 마이너스 11.61%였다. 이 펀드는 지난 7월부터 주식을 전혀 편입하지 않았다.주식성장형 뮤추얼펀드에서는 미래에셋 코리아벤처펀드1, 미래에셋 박현주성장형3호가 1위와 2위를, 유리자산운용의 유리앙상블시스템이 3위를 기록했다. 코리아벤처펀드1의 6개월 누적수익률은 0.51%로 벤치마크 대비 30.93%를 기록했다. 이 펀드는 프리코스닥 기업과 코스닥 기업에 투자하는 펀드로 팀제로 운용한다. 수익률 2위와 4위를 차지한 박현주성장형3호와 6호는 미래에셋 선경래 펀드매니저가 운용하는 것으로 6개월 누적수익률은 각각 마이너스 2.8%, 마이너스 4.4%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