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회사 속속들이 꿰고 M&A임해야 기업개선작업 성공 … 일부는 핫머니로 오해하기도

벌처펀드(Vulture Fund)는 파산한 기업이나 자금난에 부딪쳐 경영 위기에 처한 기업을 싼값에 인수하여 경영을 정상화시킨 후 비싼 값으로 되팔아 고수익을 올리는 자금을 말한다. 벌처란 ‘대머리 독수리’를 뜻하는 말로 썩은 고기를 먹는 독수리의 습성을 빗대 부실기업을 투자대상으로 삼는 펀드를 벌처펀드로 부른다.벌처펀드는 대개 고수익을 노리는 헤지펀드나 투자신탁회사 또는 투자은행이 설립·운용한다. 이들은 직접 경영권을 인수하여 회생시킨 후에 되팔거나 부실기업의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해 주주로서 권리행사를 통해 간접 참여하기도 한다. 또 부동산 등 자산만을 인수하여 단기간에 되팔기도 한다.국내 CRC 50개 업체 활동IMF 이후 국내에 설립되기 시작한 벌처펀드는 기업 구조조정 전문회사(CRC, Corporate Restructuring Company)로 불린다. 올초만 해도 코미트창업투자, 코리아벌처투자 등 15개 업체가 활동했으나, 올 하반기 들어 아주인베스트먼트, 보스턴벌처펀드 등이 참여하면서 50여개가 넘는 CRC 회사들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 분야가 문전성시를 이루면서 자연히 이곳에서 일하는 애널리스트의 역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국내 대표적인 업체로는 KTB네트워크의 구조조정사업팀이 있다. 이 팀은 지난해부터 부엌용가구 제조업체인 동양토탈, 소방기구 제조업체 세진, 산업용 계측기 제조업체인 와이즈콘트롤 등 3개 화의기업의 부실채권을 매입하면서 대주주의 자격으로 1년에 걸쳐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그 결과 최근 세 기업 모두 화의기업에서 벗어났다.이 팀의 이귀진 과장은 “청산단계에 있는 기업이나 부채가 많아 사업이 부진한 기업에 자금과 경영 노하우를 투입, 회사가 다시 정상화되는 것을 보는 게 보람”이라고 말했다.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세진의 경우, 소방기기 제조분야에서 국내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우량업체였지만 지난 98년 과도한 부채를 견디지 못하고 화의기업으로 전락했다. 자금흐름이 좋지 않았지만 사업내용이 좋다는 것을 눈여겨 본 이과장은 지난해 자산관리공사에서 세진의 채권을 매입했다. 이후 채권을 출자전환하고 추가 자금을 투입한 결과 다시 자금흐름이 양호해져 결국 1년여 만에 세진은 화의기업의 오명을 벗었다. 회사의 경영상태가 호전되자 시장에서 주가가 많이 올랐고, 세진의 주식을 보유한 KTB네트워크는 적지 않은 이익을 남길 것으로 예상한다.이과장은 “벌처펀드 애널리스트는 인수대상 회사가 생산하는 주력 생산품의 특징, 기술 동향 등을 꼼꼼히 분석해야 한다. 자금흐름의 왜곡은 단기적인 위험일 수 있지만, 주력 생산품의 시장성이 없다면 재정상태가 정상으로 돌아와도 다시 쓰러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업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면서 구조조정 역시 끝없이 일어나기 때문에 이 분야의 애널리스트는 꼭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 분야에서 일하기 위해선 “기업의 재무분석, M&A기법, 인수합병에 관련된 법규 정도는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반면 이과장은 이 분야에서 일하면서 겪는 고충으로 “아직 국내에선 M&A 전문가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 때문에 때론 이 시선이 부담스럽다”고 말했다.이처럼 시선이 곱지 않은 이유는 벌처펀드가 기업회생보다는 단기차익을 노리는 핫머니의 성격을 띠었던 사례가 많았기 때문. 코미트창업투자 최현 부장은 “벌처펀드는 부실한 기업을 M&A하고 구조조정을 통해 기업가치를 높이는 역할을 해야 함에도 단기 차익을 노리는 펀드들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적어도 2년 정도는 꾸준히 기업개선작업을 해야 기업이 정상화되는 것이 순리인데, 펀드 투자자들이 단기간에 수익을 내기 원하기 때문에 주가 올리기에만 급급한 벌처펀드가 적지 않다”고 전했다.장부보다 재정상태·문제점 직접 챙겨야그러나 국내 경영환경에선 M&A와 구조조정을 통한 기업 개선작업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이 많다는 것도 사실이다. 우선 기존 주주, 채권자, 직원 등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것이 쉽지 않다. 기존 주주는 기업의 부실화를 초래한 책임을 지고 일부 주권을 소각해야 하며, 채권자는 채권액의 탕감을, 직원들은 퇴출이라는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누구도 좋아할 리 없는 구조조정인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벌처펀드 투자자들은 “지루한 구조조정 보다는 단숨에 이익을 내고 빠지자”며 펀드 매니저들에게 무리한 요구를 한다는 것이 실무자들이 털어놓는 고충이다.익명을 요구한 A투자개발 B사장은 “부실회사를 인수한 뒤 4개월 동안 직원들의 농성에 시달렸다”며 “우리를 마치 점령군으로 대하는 직원들의 태도를 보고 이 사업을 계속해야 하는지 회의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낡은 건축물을 리모델링(Remodeling)하는 것으로 벌처투자를 이해하지 않는다면 항상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B사장은 이 회사뿐 아니라 가구회사, 무역회사 그리고 건축자재 회사 등 3개 회사를 인수해 구조조정을 진행중이다.올해 들어 공격적으로 부실기업을 M&A했던 B사장은 현장에서 진행되는 M&A의 과정을 잘 보여준다. 우선 그는 신문 등 언론을 통해 거래소나 코스닥에 등록된 부실기업, 부도기업 등의 정보를 얻는다. 굴뚝기업이면서 인수대금이 수백억원대 내외의 중견기업이라면 일단 그가 투자할 수 있는 테두리에 들어온 셈이다.이후 회사의 부실 원인이 무엇인지 인수대금은 얼마 정도 되는지 해당 업체에 전화를 해 물어본다. 이와 더불어 그는 인수하려는 회사 근처로 찾아가 직원들이 자주 가는 음식점 등을 둘러보면서 직원들이 하는 얘기를 주워듣는다. 좀더 정확한 회사 사정을 듣기 위해서다. 대략 상황이 파악되면 사무실로 돌아와 나름대로 자구 계획안을 그림으로 그려본다. 채권자와 기존 경영자는 누구이며, 어떤 이유로 부도가 났는지, 자금은 얼마나 필요한지, 일종의 도표를 그리면서 흐름을 파악한다. 이 작업이 끝나면 2주 정도 회사가 돌아가는 사정을 지켜본 뒤 혹 그가 파악하지 못했던 부실이나 위험요인을 체크해낸다. 이쯤 되면 본인이 언제 얼마의 자금을 투입하면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그는 “벌처펀드의 애널리스트는 단순히 인수대상기업에서 제시한 장부를 보고 재정상태와 문제점을 파악해서는 실패한다. 현장에 가보고, 직원들의 움직임을 살펴보는 등 다각도로 살펴야 정확한 해결점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IMF를 전후로 부실화된 기업을 회생시켜 되파는 것이 벌처펀드의 역할이다.★ 인터뷰 / 변은창 라호야인베스트먼트 이사“벌처펀드는 투자자 길잡이입니다”벤처M&A 전문업체인 라호야 인베스트먼트 변은창 이사는 대기업 대리쯤 되는 30세의 젊은 나이지만 M&A분야에선 전문가로 통한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마치고 공인회계사로 일하면서 여러 기업의 재무상태를 현장에서 파악했으며 삼정컨설팅에서 일할 때는 관계사인 삼정훌리안로키(구조조정 전문회사)에서 M&A 기법과 다양한 실무를 익혔다.“벌처펀드는 투자자들에게 길잡이 역할을 해줘야 합니다. 기업 가치평가를 제대로 해줘 적정가격으로 부실기업이 매각될 수 있도록 돕는 겁니다.”변이사는 “벌처펀드의 애널리스트가 되려는 대학생이 있다면 경제 경영에 관련된 지식 습득뿐 아니라 직접 실무현장에서 배우는 기회를 가질 것”을 주문한다. 학교 지식과 실무의 괴리감이 크기 때문에 해당 업체에 직접 찾아가 아르바이트라도 해야 한다는 것.그는 또 “상황을 다각적으로 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입체적인 시각이 해결의 단서를 찾아내기 때문이다. 프로젝트를 끝까지 밀고 나가는 추진력(Get it done)도 필요한 자질”이라고 전했다.변이사가 지적한 국내 벌처펀드 애널리스트들의 약점은 “기업가치를 평가할 때 결론을 다분히 추정하려는 습성”이다. 결론을 내기 위해 증거를 수집하기 보다 ‘그럴 것이다’라는 추측으로 결론을 도출하는 것 때문에 기업가치 평가를 그르친다는 것. 변이사는 “외국 애널리스트는 없다는 증거가 없으면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 증거를 찾기 위해 끝까지 노력하는 점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