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향력 무시못해 펀드매니저·투자자 불평속 정보 의존 … 실적 평가따라 연봉 고무줄

미국이 경기과열을 걱정하며 금리를 올려도 증시가 꺾이지 않던 지난 3월말. 미국 증시는 “골드만삭스의 투자중 주식 비중을 70%에서 65%로 5%포인트 줄인다”라는 말 한마디로 방향을 거꾸로 돌기 시작했다. 발언의 진원지였던 애비 조셉 코언. 그녀는 연봉 1천5백만달러(한화 약 1백70억원)를 자랑하는 골드만삭스의 간판 애널리스트이다.그녀의 말 한마디는 결국 4월14일 ‘피의 금요일(Bloody Friday)’로 발전했다.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매도 추천은 잘 안하며 적정가격이나 매수추천은 믿을 수 없다는 불신은 미국에도 있다. 인터넷 확산으로 정보의 비대칭성이 해소됐다며 애널리스트의 위치를 폄하하는 의견도 많다. 기술적 분석의 대가로 불리는 그랜빌조차 애널리스트의 매수추천이 빗발치면 상투의 징후라며 비아냥거렸다.국내에서는 온라인트레이딩과 주식투자인구 급증으로 인터넷 사설증권정보사이트가 늘면서 이른바 ‘사이버애널리스트’까지 등장했다. 이들은 제도권인 증권사 애널리스트에 대한 불신을 토대로 많은 고정팬들을 거느리면서 증권사 애널리스트를 능가하는 인기를 누린다. 심지어 증권사(애널리스트)의 매수추천과 적정가격을 믿고 주식을 샀다가 낭패를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애널리스트 매수추천이 나오면 팔아라”고 외친다.불신 토대로 사이버애널리스트도 활약그럼에도 증권 애널리스트의 시장에 대한 영향력은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펀드매니저나 투자자들이 불평을 하면서도 여전히 힐끔거리는 것이 이들의 의견이다. 올해 반도체 주식이 그렇다. 지난 7월 미국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와 삼성전자의 주가가 꺼꾸러지기 시작한 것이 반도체 재고가 늘 것이라는 미국 반도체담당 애널리스트의 경고 때문이었다. 당시만 해도 D램 현물가격은 계속 오르고 있었고 산업계는 아직도 핑크빛 전망을 갖고 있었다.평상시 잊고 있다가도 가끔은 시장에 무지막지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잠재력을 가진 집단이 이들이다.일반적으로 증권사의 리서치센터에서 리서치자료를 제공하는 사람들을 모두 애널리스트라고 부르지만 정확히 분류하면 애널리스트(기업분석가)는 기업가치를 주로 분석한다. 전체 장세를 분석하고 투자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말 그대로 스트래티지스트(투자전략가)이다.애널리스트가 기업의 기본적 가치분석을 주로 하는데 비해 각종 차트와 기술적 분석을 주로 하는 애널리스트는 테크니컬 애널리스트(기술적 분석가)로 굳이 분류하기도 한다. 주로 증시 주변 환경을 분석하는 것은 이코노미스트의 몫이다. 메릴린치의 그 유명한 브루스 스타인버그 같은 사람은 애널리스트가 아닌 수석이코노미스트다.증권사 애널리스트가 되는데 자격증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재무적 지식이 요구되기 때문에 아무래도 경영 혹은 경제학 관련 전공자가 많다. MBA학위 혹은 CFA(미재무분석사)자격증이라도 갖고 있으면 환영받는다.재무적 지식만이 애널리스트가 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은 아니다. 부지런히 기업방문을 다니고 펀드매니저나 일선 영업점의 브로커들도 만나기 때문에 마케팅감각도 있어야 한다. 기술 발전 속도가 빨라지다보니 기술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최근 리서치분야에서 이공계출신이면서 재무지식을 갖췄거나 경영대학원을 나온 사람이 상한가인 이유이다.이들의 연봉은 곧 능력의 그림자이다. 자신의 연봉을 밝히는 사람은 거의 없다.대다수 회사들이 능력과 보상을 연계시키는 시스템을 기초로 증권사 결산기인 3월 전후에 연봉을 결정한다. 얼마나 양질의 리포트를 냈느냐는 물론 이 리포트가 영업점에서의 거래유발(매수매도)로 이어지는지까지 수십가지 항목으로 점수를 매긴다.지난해 국내 최고 수준의 대우를 내세우며 리서처들을 대거 스카우트한 현대증권 리서치센터에 소속된 애널리스트들은 0%에서 2백% 사이의 보너스를 받는다. 기본급이 5천만원이라면 보너스를 2백% 받는 경우와 전혀 못받는 경우 1억원의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노동강도 높은 만큼 금전적 보상 많아삼성증권도 같은 수준에서 연봉이 시작된다면 실적에 대한 평가에 따라 3년후에는 2배까지도 연봉 차이가 난다.성과에 대한 스트레스가 강하고 아침 7시부터 밤늦게까지 하루평균 14시간이상 일할 때가 많다. 노동 강도로 치면 남부럽지 않게 높다. 그만큼 실적이 유난히 떨어지지 않는다면 이들은 같은 수준의 학력과 경력을 가진 다른 화이트칼라보다 적지 않은 금전적 보상을 받는다.최근 국내증권사에서 일하는 애널리스트들은 교육 및 직업적 배경 면에서 매우 다양해지고 있다. 예전에는 경영학이나 경제학과 출신 혹은 관련학과 출신이 주종을 이뤘지만 최근에는 이공계열 출신이 늘고 있다.사회 전체적 추세를 반영해 여성 애널리스트도 늘고 있다. 삼성증권 한영아 연구원(유통, 소매업 담당), 현대증권 조윤정 연구원(제약담당), 안준아 연구원(인터넷 광고 및 쇼핑), LG투자증권 이은영 연구원(철강, 비철금속) 등은 해당분야에서 상당한 평가를 받는다.삼성증권에는 캐나다 출신의 외국인애널리스트 마크 바클레이 수석연구원이 자동차제조 및 타이어 전기 가스 등을 맡고 있다. 그는 최근 한 조사에서 한국시장에 투자하는 펀드매니저들로부터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부문에서 대우증권 장충린 연구위원에 이어 2번째로 우수한 애널리스트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외국계 증권사 출신도 다수 포진90년대 중후반까지 국내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외국계 증권사로 스카우트되는 것을일종의 신분상승으로 여겼다. 연봉도 올라가고 선진적 분석기법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었다.그러나 최근 삼성증권과 현대증권 등은 외국 증권사에 못지 않은 리서치 자료를 제공하면서 한국시장에 관한 한 외국 증권사에 뒤지지 않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 말과 올해 초 IT(정보기술)나 인터넷 관련 벤처기업에 관한 리포트는 오히려 외국계 증권사들이 의존할 정도였다.삼성증권의 경우 JP모건과 자딘플레밍 등 외국증권사에서 활동해온 이남우 상무가 리서치담당 임원으로 98년 영입되면서 성가를 높여가고 있다. 현대증권은 SG증권 등을 거친 정태욱이사가 철저한 실적보상시스템으로 드라이브하면서 리서치시장에서 삼성증권과 주도권을 다투고 있다.정태욱 현대증권 리서치센터 담당이사는 증권 애널리스트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신뢰감을 주면서 투자와 관련된 의사 결정 행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정의한다. 또 정보의 홍수 속에 애널리스트의 존재 이유는 “얼마나 많은 정보를 남보다 얼마나 빨리 아는가가 아니라 똑같은 정보를 놓고 어떻게 판단하고 분석하는가”라고 강조한다.★ 이공계 출신 애널리스트 ‘상한가’“테크노 MBA출신 어디 없나요?”인터넷업체의 사업내용이나 통신장비회사의 제품명, 바이오테크회사의 새로운 사업. 아무리 두뇌회전이 빨라도 재무적 지식만 가지고는 어떤 내용인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기술의 변화속도가 빠르다. 이른바 ‘뉴이코노미’기업의 기술내용이나 사업내용을 이해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어렵다. 이 때문에 최근 증권가에서는 공학교육을 받고 경영대학원을 나왔거나 이른바 공학과 경영학이 접목된 과정을 거친 테크노MBA가 벤처기업의 수요와 겹쳐 상한가를 기록하고 있다.반도체를 담당하는 삼성증권 하정헌 연구위원이 엔지니어출신 애널리스트 1세대 가운데 하나이다. 삼성증권에서 현재 통신장비를 맡고있는 오세욱 수석연구원이 제어계측공학을 전공했고 무선통신장비를 담당하는 이성수연구원은 전기공학과를 졸업했다. 이들은 각각 삼성전자와 현대전자에서 엔지니어로서의 길을 가다가 증권쪽에 합류했다. 오세욱연구원은 “통신장비쪽을 하다보니 재무분야를 배우고 싶어” 올해초 증권분야로 뛰어들었다. 이성수연구원은 97년 갈수록 넓어지는 자본시장의 흐름에 합류하고 싶어 증권사로 왔다고 말한다. 삼성증권은 현재 전체 애널리스트 가운데 25%가 공학 혹은 이과계 대학 출신이다.현대증권의 경우 학교교육은 물론 실제로 엔지니어로서의 현업경력이 있는 ‘순수엔지니어’출신으로 구성된 ‘기술자문팀’도 있다.대우증권에도 환경공학을 전공한 강종림 애널리스트, 정밀기계공학을 전공한 성기종 애널리스트를 비롯, 이공계 출신 연구위원들이 여럿 있다. 제약 및 바이오테크분야의 애널리스트 중에는 특히 화학 및 생화학전공자들이 많다. LG투자증권의 황호성 책임연구원은 서울대대학원에서 화학을 전공했으며 한화증권의 황두현연구원도 화학과 출신으로 제약을 맡고 있다.신영증권은 이공계출신 애널리스트가 적지 않다. 박정배 선임연구원은 화학과(서울대) 석사이며 제약을 담당하는 허용선임연구원은 미생물학과 석사출신이다. 이진형 선임연구원은 전기공학(연세대)을 전공하고 미국 조지워싱턴대학에서 MBA를 거쳤다. 이승우연구원은 학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대학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