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을 통해 증권사 애널리스트의 한마디가 특정 기업이나 그 업종 전체의 주가를 끌어내렸다는 보도를 심심치 않게 접하게 된다. 가까운 예로, 미국 살로먼 스미스바니 증권의 글로벌 테크놀로지팀 애널리스트인 조나단 조셉이 7월 내놓은 보고서 한편이 시장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그는 이 보고서에서 반도체 생산량이 수요를 앞지르고 있다며, 세계 애널리스트 가운데 최초로 반도체 경기의 대세 하락론을 주장했다.그의 한마디로 7월5일 미국의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전날에 비해 9.3%나 급락했고 인텔,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마이크론테크놀로지 등 반도체 대표기업 주가가 폭락했다. 일본 대만의 반도체 주가도 떨어졌고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삼성전자와 현대전자 주가도 덩달아 흔들리기도 했다. 발표 당시는 이 리포트를 둘러싸고 왈가왈부 논쟁이 많았으나 결과적으로 투자자들을 보호한 기념비적 보고서라는 평가를 받았다.정확한 평가와 분석을 토대로 한 전망의 중요성이 모든 업종과 영역에 걸쳐서 부각되고 있다. 금융기관, 일반 기업의 신용평가 및 리스크 관리 업무 등을 하고 있는 향영 21C리스크 컨설팅 이정조 사장은 “수준높은 분석능력을 갖춘 애널리스트만이 부실채권이나 투자손실 위험을 방지해줄 뿐 아니라 고수익 확보를 가능케 한다. 금융기관이나 기업의 경쟁력을 제고시키는 핵심 역할을 바로 이들이 수행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일반적으로 증권사의 투자분석가를 애널리스트라고 부르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증권 분야에서 일찍부터 애널리스트의 중요성이 널리 인식되고 있다. 이와 함께 지난해 벤처투자 붐이 일고, 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서 벤처캐피털리스트, 벌처펀드 애널리스트들의 활약도 널리 인정받고 있다. ‘누가 투자했는가’가 벤처의 미래를 판단하는 잣대로 기능하고 있는 것도 고급 분석력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사례다.유능한 애널리스트 절실가장 전통적인 금융기관인 은행이나 종합금융회사, 보험사 등에서도 마찬가지다. 기업의 부실이 그대로 일련의 금융기관의 부실로 이어졌다는 비판과 함께 감독기관의 금융시장 개혁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투명성을 바탕으로 한 여신관행 혁신을 재촉받으면서, 그리고 금융기관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이제 우량고객을 발굴하고 유치하는 일이 생존 문제로 떠오르면서 이들 금융기관에서도 정확한 평가와 전망을 토대로 한 자본운용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정보를 수집하고 이해하는 기본적인 능력 외에, 정확한 예측을 생명으로 하는 이들 애널리스트들에게 공통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많은 경험이다. 현재 활약중인 애널리스트들의 대부분은 ‘전업’을 한 사례가 많다. 평균연령이 낮은 증권사 애널리스트들도 경영대나 법대 출신을 제치고 공대 출신들이 각광받고 있는 것도 비슷한 현상.사실 ‘전성시대’라 선언하기에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시기상조라는 지적도 많다.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밀한 분석과 예측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지적들은 유능한 애널리스트의 필요성에 대한 절실한 요구 증대의 반증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올해 천장과 바닥을 오간 주가로 인해 증권사의 ‘제도권’ 애널리스트들이 온갖 원망과 지탄을 받은 반면 개미들과 함께 했던 사이버 분석가들이 높은 인기를 누린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예측이 빗나감으로 인해 경기분석의 중요성이 역설적으로 부각된 것이다.이밖에도 전문가들은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분석가들을 양성할 수 있는 시스템이 충분치 않다는 문제점을 지적한다. 현재 각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이들의 대부분은 금융기관이나 일반기업에서 얻은 나름의 경험과 지식을 토대로 스스로의 노력과 공부를 더해 활동 밑천으로 삼았다. 이름을 날리는 스타 애널리스트들은 대개 외국 경영대학원에서 MBA 등을 취득한 사례가 많다는 공통점이 있긴 하지만 국내 기업을 분석 평가하는 업무에 해외 학위 취득이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증권사나 은행 등에서는 사내 연수 프로그램을 통해 또는 한국금융연수원과 같은 사외 기관을 통해 직원들을 교육시키고 있지만 전문가 양성이라고 부르기엔 미흡한 경우가 많다. 벤처캐피털리스트나 벌처펀드 애널리스트의 경우는 시행 착오를 통한 독학이 유일한 교육이다.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 부설의 상남경영원에서 증권, 보험, 은행, 일반 기업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분석전문가를 양성하는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신용평가회사에서 강좌를 여는 등 분야를 넘어서는 애널리스트 교육과정이 열리고는 있지만 수요에 비해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