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실 없애고 직원들과 동고동락 … NTPC 등 신제품 생산 본격화, 매출 6배 증가 예상

‘…나귀가 걷기 시작하였을 때 동이의 채찍은 왼손에 있었다. 오랫동안 아둑시니같이 눈이 어둡던 허생원도 요번만은 동이의 왼손잡이가 눈에 띄지 않을 수 없었다…’.메밀꽃 필 무렵의 강원도 평창은 숨이 막힐 지경이다. 막 피기 시작한 꽃이 지천으로 널려 있고 쓸쓸하던 봉평장도 왁자지껄하다. 막국수 배추전에 메밀전병과 수수부침도 먹음직스럽다.이억기(47) 파이컴 사장의 고향은 바로 평창. 얼마전까지 회사명을 평창하이테크로 썼던 것도 고향에 대한 애착에서 비롯된 것. 그러다가 이름을 바꾼 것은 정현준게이트에 관련된 기업체와 이름이 비슷해 곤욕을 치렀기 때문.4천1백평 규모에 첨단시설 설치, 수출 본격화구로공단에 있는 파이컴은 반도체검사장비인 프로브카드 등을 만드는 기업이다. 99년에 1백22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2000년에는 2백억원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주력 제품은 반도체검사장비인 프로브카드를 비롯해 LCD검사장비인 프로브유닛, FPD용 프로브스테이션 등. 프로브카드는 칩의 불량여부를 검사하는 장비. 각각의 프로브가 웨이퍼의 패드에 직접 접촉돼 칩의 좋고 나쁨을 가려낸다.생산제품은 삼성전자와 현대전자에 주로 공급하고 있다. 외국에서 들어오는 주문도 많지만 생산이 달려 우선 국내에 납품하고 있다. LCD검사장비도 비슷하다.FPD용 프로브스테이션은 퍼스널컴퓨터용 모니터와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각광받는 평면디스플레이 패널의 이상유무를 검사하는 장비다.이 회사는 최근 구로공단내 널찍한 공장으로 이전했다. 4천1백평 규모의 이 공장은 첨단시설을 설치했다. 생산능력도 크게 늘렸을 뿐 아니라 신제품 생산기반도 갖췄다. 이에따라 기존 제품의 생산능력이 크게 늘어나 그동안 미뤄왔던 수출도 본격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시장은 일본 대만 싱가포르를 비롯한 아시아와 미국 유럽 등.아울러 올 2/4분기부터 신제품생산도 본격 시작한다. NTPC(New Tech Probe Card)와 WLCS(Wafer Level Contact System)가 바로 그것. 올 매출목표는 작년의 6배인 1천2백억원으로 잡고 있다. 기술력이 뒷받침돼 국제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해서다.이사장은 첨단제품을 생산하고 있지만 그의 사업역정은 허생원처럼 모질었다. 고졸 학력의 이사장이 사회에서 잡은 직업은 주유소 영업사원. 퇴직금을 모아 창업한게 79년. 26세 때였다. 사업은 전자부품인 와이어하네스제조. 전깃줄과 단자를 조립한 제품이다. 창업한 곳은 경기도 성남의 변두리. 다 쓰러져가는 10여평짜리 외양간을 구해 5명으로 출발했다. 쇠똥 냄새나는 바닥을 청소하고 소가 들이받아 허물어진 벽을 수리했다.기술력 확보에 총력, 일본으로 역수출꾸준히 성장하던 그에게 새로 눈에 띈 분야가 반도체장비. 첨단 제품만이 미래에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기술이 없었다. 그렇다고 석박사 출신의 고급학력출신을 뽑을 형편도 못됐다. 일본으로부터 기술을 이전받기로 하고 3명을 선발했다. 학벌이나 실력은 모자라도 집념은 고래심줄보다 질긴 사람들을 골랐다. 그러다보니 모두 고졸 출신이었다. 인문계 농업계 공업계 출신의 20대 중반. 이들을 도쿄 캐소드연구소로 보내면서 강조한 것은 “지금은 일본에 로열티를 줘가며 기술을 들여오지만 앞으로는 스스로의 힘으로 장비를 만들어 역으로 수출하자”였다.이들은 독종처럼 열심히 연수를 받았다. 5개월 이상 받아야 할 연수를 3개월만에 끝냈다. 이들이 돌아오자 프로브카드 생산이 시작됐다. 그때가 93년. 프로브카드 생산을 하면서 기술을 향상시켜 일본으로 2백만달러어치를 수출했다.반도체는 정밀제품. 한치의 오차도 허락하지 않는다. 검사장비는 이보다 더욱 정밀해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반도체를 골라낼 수 있어서다. 96년 한꺼번에 16개의 칩을 검사할 수 있는 장비를 개발했고 99년에는 동시에 32개를 검사할 수 있는 장비를 선보였다.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1기가D램을 검사할 때 사용한 장비도 바로 파이컴의 검사장비. 국내 업체들의 반도체 제조기술이 세계 최고인 만큼 파이컴의 검사장비 기술 역시 세계 정상급으로 꼽힌다. 기술도입선인 일본보다도 한발 앞선 것으로 평가받을 정도다. LCD검사장비도 마찬가지.이런 수준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것은 “기본에 충실했기 때문”이라고 이사장은 설명한다. 그는 기본기술을 중시한다. 이를 바탕으로 한걸음씩 나아간다. 기본이 없는 첨단은 없다고 보기 때문.파이컴에는 사장실이 없다. 그가 일하는 곳은 ‘대표사원실’이다. 자신이 밑바닥에서 청소하고 기계를 만지고 기름을 칠하며 지내와서인지 사장이라는 직함이 왠지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한다. 대신 사원중에서 대표일 뿐이라는 생각이다. (02)3282-1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