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증가·시장지배력 높아지자 군침 … 대주주 등극까지는 ‘산너머 산’

골드만 삭스의 진로채권매입은 대기업의 부실채권을 국제입찰을 통해 외국계 투자가가 대거 사들였다는 점에서 화제를 모았다.골드만 삭스가 진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IMF 직후인 지난 98년. 당시 1조5천억원의 부채를 안고 부도를 냈던 진로는 98년3월, 서울지방법원으로부터 화의기업 인가를 받았다. 주력사업을 소주제조에서 유통, 건설, 케이블TV 등으로 무리하게 다각화하고 확장했던 것이 부실을 초래했다.이후 채권단은 진로의 화의채권 대부분을 자산관리공사에 넘겼고, 자산관리공사는 국제입찰(KAMCO 98-1)을 통해 매각했다. 낙찰을 받은 업체는 골드만 삭스로 총 7백32억원어치의 진로채권을 매입했다. 당시 골드만 삭스의 진로채권매입은 대기업의 부실채권을 국제입찰을 통해 외국계 투자자가 대거 사들였다는 점에서 화제를 모았다.◆ 채권 추가 인수 저의는?이후 골드만 삭스는 진로의 채권을 더 매입하기 시작했다. 은행, 종금사 등 국내 금융기관으로부터 1백50억원대의 채권을 추가 매입한 결과, 진로의 주요 채권자로 등장하기에 이르렀다.(표1 참조) 이 채권을 추가 매입하기 전 진로 주 채권자는 자산관리공사, 한빛은행, 체이스맨해튼은행, 하나은행 등이었으나 추가매입한 뒤 골드만 삭스가 채권단 상위권으로 부상, 진로 경영진의 눈에 띄게 됐다.또 최근들어 금융권에 “골드만 삭스가 진로의 경영권에 관심이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진로의 경영진을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금융계 관계자는 “골드만 삭스가 최근 진로의 채권을 보유하고 있는 은행 등과 비밀리에 접촉, 계속해서 채권 추가매입에 나서고 있다”면서 “채권을 출자전환해 진로를 인수할 수 있는 방안을 M&A전문가와 로펌 등에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이렇듯 골드만 삭스가 채권자의 입장에서 경영권을 포함한 대주주의 위치로 올라서려는 이유로 금융가에선 “진로의 현 경영진 능력으론 화의를 조기에 종결할 수 없고, 기업을 부실하게 만든 장진호씨가 아직 회장 자리에 있어 문제”라는 것 때문으로 분석한다.이에 대해 김영진 진로 상무는 “골드만 삭스의 적대적 M&A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며 “화의조건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제3자가 경영권을 노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장진호 진로회장이 아직 퇴진하지 않았다는 지적에 대해 김상무는 “장회장은 이미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지 오래”라며 “외자유치와 자산매각에만 관심을 쏟을 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진로를 M&A하려는 업체는 진로의 대주주인 장진호 회장과 일전을 불사해야 한다. 그가 아직 회장 직함을 유지하면서 대주주로 앉아 있기 때문이다.◆ 왜 진로인가사실 골드만 삭스가 진로의 채권자에서 대주주가 되려고 방향을 선회한 것은 최근 일이라는 것이 금융계의 분석이다. 그렇다면 어떤 이유로 골드만 삭스는 화의기업인 진로의 경영권까지 관심을 갖게 된 것일까.가장 큰 이유로는 최근 들어 진로소주의 매출이 유래없이 늘었다는 점이다.(표2 참조) 지난 97년 부도 이후 IMF 체제에서 매출이 저조했지만 지난 99년 이후 국내 경기회복과 더불어 진로소주의 매출도 가파르게 늘기 시작했다. 화의기업의 오명을 벗기 위해 진로는 원가, 비용절감 등 경영개선을 추진하고 신제품 출시 등 판매전략을 적극적으로 수립했던 것이 시장에서 인정을 받았다. 또 부채를 갚기 위해 진로는 위스키사업부문을 영국의 얼라이드 도맥사에 양도, 1억2천만달러의 외자유치를 성공시켜 현금 유동성을 확보했다.또 하나 골드만 삭스가 눈여겨보는 진로의 성장성은 시장지배력이 커졌다는 점이다. 여기엔 진로의 가장 큰 경쟁사인 두산이 3천억원을 투입, 한국중공업을 인수하면서 주력사업을 중공업 중심으로 이전시켰다는 점이 주 원인으로 꼽힌다. 한중 인수에 골몰한 두산은 최근 몇 개월 동안 그린소주 이후 신제품 생산이 뜸했고, 결과적으로 진로소주의 시장점유율만 키워줬다는 것이다. 실제 진로소주의 전국 시장 점유율은 창사 이래 처음으로 지난해 52%(9월 결산기준)를 기록했고 서울 경기 등 수도권지역만을 놓고볼 때는 시장점유율은 무려 90%에 달한다.이를 바탕으로 진로는 2001년 시장점유율 목표를 60%로 늘려 잡고 있다. 이런 진로의 상승세가 골드만 삭스입장에서는 탐이 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골드만 삭스가 진로에 군침을 흘리는 이유는 또 있다. 2000년10월 진로는 전선과 광케이블 제조회사인 진로산업(전 진로인터스트리)에 빌려준 대여금 2백억원을 출자전환, 최대주주가 됐다. 진로산업은 매출액이 2000년 상반기에만 1천6백억원, 당기순이익 10억원인 알짜기업. 장진호 회장이 14%를 소유, 진로산업의 대주주였지만 진로의 출자전환으로 2대주주로 후퇴했다. 만약 골드만 삭스가 진로의 대주주가 되면 진로산업도 같이 소유할 수 있는 셈이다.◆ M&A 가능할까그러나 일부 금융권과 진로측에선 골드만 삭스의 대주주 등극이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예상한다. 채무자인 진로가 꼬박꼬박 빌린 돈의 이자를 갚는 등 화의조건을 이행하는 상황에서 채권자인 골드만 삭스가 진로에 출자전환을 요구하기엔 무리라는 것이다. 장회장이 경영에는 간섭하지 않지만 또 다른 대주주가 들어오는 것을 달가워할리 만무하다고 진로측은 전한다.채권단 한 관계자는 “아직 화의기업의 채권자가 채권액을 출자전환한 예는 없다”면서 “진로가 출자전환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말하자면 진로가 이자를 못 갚는 등 경영이 악화될 경우 자본금을 확충하기 위해 채권을 출자전환할 수는 있지만 화의조건을 이행하는 한 이같은 시도는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얘기다.하지만 금융가에선 진로의 채권을 보유한 은행 등 금융기관이 골드만 삭스에 채권을 매각, 힘을 실어줄 경우 채권자의 지위를 이용한 M&A는 의외로 쉽게 풀릴 수 있다고 분석한다.◆ 눈치 보는 채권단진로의 5대 채권자인 하나은행 관계자는 “최근 골드만 삭스가 진로채권을 매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결국 협상이 결렬됐지만 진로에 관심이 있는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진로채권을 매각했던 자산관리공사 관계자도 “외국계 금융기관중 골드만 삭스가 유독 진로 채권 매입에 열을 올린 것은 사실”이라며 “총 대출채권의 15%를 소유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전했다.그러나 골드만 삭스의 이런 노력은 일부 국내 은행의 반기로 무산되기도 했다. 채권자중 하나인 A은행 관계자는 “골드만 삭스엔 진로 채권을 매각할 수 없다. 외국계 기업이 진로소주를 소유하게 하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이에 또 다른 금융계 관계자는 “은행들이 골드만 삭스에 진로채권을 높은 가격으로 매각하려는 의도”라고 풀이한다. 말하자면 명분을 내세워 최대한 비싸게 팔겠다는 것.이런 치밀한 이해관계 때문에 골드만 삭스는 은행의 협조를 얻기가 그리 녹록하지는 않다. 하지만 은행 인수합병이 진행되고 부실자산을 매각하려는 움직임이 일면서 자금력이 든든한 골드만 삭스가 시간을 벌면서 진로채권을 매입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또 2백70억원대의 진로채권을 보유한 국민은행의 대주주가 골드만 삭스여서 마음만 먹는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1천억원이 넘는 진로의 채권을 보유할 수 있다. 화의기업의 특성상 경영성과 보고나 의사결정을 일일이 채권단에 보고해야 하기 때문에 진로는 골드만 삭스의 영향권에 점점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골드만 삭스가 진로의 화의종결을 앞당길 수 있는 특단의 해법을 제시할 경우, 채권단은 골드만 삭스에 힘을 실어주고 거액의 채권을 출자전환할 수 있는 방법도 얻을 수 있다.◆ 남는 문제점들골드만 삭스가 소리소문 없이 진로의 경영권 인수를 추진한다는 소문이 돌면서 진로측도 이에 적극 대비하고 있다. 진로 김상무는 “외국계 금융기관의 전략은 드러나지 않는데 우리가 나서서 전략을 공개할 수는 없다”며 “구체적인 행동에 들어가기 전 루머를 통해 우리를 흔들어보자는 속셈도 있는 것”으로 파악, 치밀하게 대응책을 짜고 있다.그는 이어 “소주제조업은 국가의 세금을 대신해서 받는 등 국내 시장의 특수성 때문에 국내 사정에 밝지 않으면 경영에 실패한다”며 외국인 경영의 실패 가능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진로의 성장성에 비해 형편없이 떨어져 있는 지금의 주가라면 M&A가 불가능한 것만은 아닐 것”이란 우려를 표명했다.진로를 인수하기까지 또다른 어려운 점은 진로의 경영 성적표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쉽게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2000년9월30일, 진로의 정기주주총회 때 나온 경영보고서를 보면 진로의 감사인은 “진로가 내놓은 자구안의 실현가능성 및 존속가능성은 현재로서는 불확실하다. 따라서 회사의 경상이익에 의한 자금창출과 적절한 자본조달 등 정상적인 사업활동과정을 통하여 회사의 자산과 부채가 회수되고 상환된다는 가정은 중대한 의문을 불러일으킬 만하다”고 지적했다. 2001년 국내 경기가 좋지 않다는 점도 진로의 앞날을 쉽게 낙관할 수만은 없는 요인이다.골드만 삭스는 이같은 금융가의 예측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골드만 삭스의 강훈석 이사는 기자의 거듭된 인터뷰 요청에 응하지 않는 등 일체 언급을 삼갔다. 향후 골드만 삭스의 대응을 궁금케 하는 대목이다.★ 골드만 삭스, 어떤 회사인가은행·부동산 등 ‘전방위’ 한국 공략골드만 삭스는 세계적인 투자은행이자 증권회사다. 미국의 유명한 금융전문가는 골드만 삭스에서 키워진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 밥 루빈 전 미국 재무장관도 로스쿨을 졸업한 뒤 골드만 삭스 최고임원까지 올랐다.골드만 삭스가 최근 2~3년 내 국내에 알려진 결정적인 계기는 국내 최대의 은행인 국민은행의 대주주가 되면서부터. 지난 99년 이 업체는 국민은행에 5억달러(3억달러는 주식인수, 2억달러는 전환사채)를 투자, 17%의 지분을 보유했다.이후 골드만 삭스의 국내 투자는 가속도가 붙어 증권사이트인 팍스넷에 5백만달러, 무선 인터넷 서비스 업체인 에이아이넷에 5백만달러, 리눅스원에 60억원을 투자했다. 벤처투자뿐 아니라 골드만 삭스는 서울 종로의 은석빌딩을 매입하는 등 부동산투자에도 열심이었다. 이 업체의 국내 시장에 대한 관심은 전방위적이어서 LG정유를 도와 미국시장에서 2억5천만달러의 LG정유채권을 발행시켰고, 곡물업체인 카길과 함께 대북투자(KOTRA 보고서. 북한뉴스레터 2000년 6월호)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골드만 삭스의 문화를 두 가지로 정의하면 ‘팀워크’와 ‘엑설런트(Excellent)한 일 처리’다. 개인이 튀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팀이 함께 일 하는 것을 강조하는 반면 개개인에겐 철저하게 일 처리를 요구한다. 골드만 삭스 애널리스트라면 밤새워 가며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준비해 고객이 알고 싶은 것을 조사해주는 것은 서비스의 기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