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나이스비트 외 지음/안진환 옮김/한국경제신문/403쪽/2000년/1만5천원

존 나이스비트는 <메가트렌드 designtimesp=20508>로 이름을 알렸던 미래학자. 82년 출간된 <메가트렌드 designtimesp=20509>는 18개 언어로 번역돼 8백만부 넘게 팔린 대형 베스트셀러다. 이 책의 한 귀퉁이에 소개됐던 ‘하이테크 하이터치’라는 개념이 이번 책에서는 현재를 토대로 미래 사회를 예측하고 이해하는데 핵심 주제로 부각됐다.모든 미래예측서들이 그렇듯, 이 <하이테크 하이터치 designtimesp=20512>도 현재를 규정하고 이해하는 데서 작업을 시작하고 있다. 저자들이 ‘현재’에서 추출해낸 키워드는 테크놀로지, 즉 기술이다. 기술이 우리 삶에 얼마나 어떻게 파고들어 있는가에 대해 설명하는데 책의 전반을 할애한다.현대인들은 기술중독상태다. 스트레스로 몸과 마음이 피곤하면 마사지 기계를 산다. 동네가 불안해 못살겠다면 보안시스템을 설치한다. 기술을 장난감인 양 좋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머리가 핑핑 돌 정도로 빠르게 발전하는데 대해 은근한 불안감과 반감을 갖고 있다. 기술에 길들여지는 과정은 아이때부터 시작되는데, ‘닌텐도 게임’으로 대변되는 폭력적인 게임과 미디어에 의해서다.그렇다고 기술을 거부하자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기술의 진화는 거의 인간의 본능과 같기 때문에 거부할 수도 없다. 다만 ‘하이테크’로 피폐해지는 인간의 감성을 어루만질 ‘하이터치’의 필요가 절실해지는 시대 도래의 징후들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요컨대 소비재와 유전공학에서 눈부신 진화를 거듭해온 기술을 신학 종교 예술 감성의 잣대로 받아들이자는 주장이다.하이터치와 하이테크의 이상적인 결합이란 무엇일까. 책에는 몇 가지 예가 나온다. 미국에서 이름을 날리는 여성 중에 마사 스튜어트라는 인물이 있다. 그녀는 요리, 집안가꾸기, 패션, 생활용품 등 평범한 일상에 인간의 손길이 직접 닿게 하자는 주장으로 돈을 벌고 성공했다. ‘바닐라 열매를 쪼개 병에 담고 보드카를 부어 6개월 동안 그늘진 곳에 보관해, 직접 바닐라 향료를 만들어 볼 것’을 권유하는 식이다.그렇지만 정작 그녀는 하이테크를 통해 이런 메시지를 전파한다. 여섯 대의 개인 팩스, 14개의 전화선, 자동차에도 일곱대의 이동전화가 있고 웹사이트를 운영하는 것이다. 마이크로 소프트사도 비슷한 사례다. 대표적 첨단기업인 이 회사의 시애틀 본사 건물은 주변에 심어진 나무들에 파묻히도록 나지막하게 지어져 있다. 아시아 대도시에 속속 들어서는 고층건물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하이터치라는 것이다.책 후반부에는 ‘미래-종교와 예술을 통해 유전자기술 이해하기’ 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현재의 삶을 미디어와 게임으로 대변되는 소비재기술이 좌우하고 있다면, 미래에는 유전자기술이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라 보는 것이다. 종교와 예술로 유전자 기술을 이해하고자 시도한 것은, 저자들이 스스로 하이테크와 하이터치의 이상적인 결합을 구현해보고자 한 시도다.방대한 분량과 내용에 비해 책의 골자가 되는 착상은 대단히 간단한 편이다. 자주 등장하는 예술 전문용어 같은 것들이 쉬운 책읽기를 방해하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무겁지 않은 편이다. 좋게 보면 주제를 뒷받침하는 진술이 풍부하고, 나쁘게는 그럴듯한 포장술로 과장했다고 볼 수도 있다. 어쩌면 놀라운 통찰력이란 깜짝 놀랄만한 새로운 생각을 해 내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다 알고 있는 단순한 통찰을 명확히 형상화하고 이슈로 만드는 능력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