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마무리 태풍 예고, 직원·부품업체 연쇄도산 우려 … 해법 없이 찬바람만 쌩쌩

썰렁하기 그지없는 대우차 부평공장 인근 상가.대우자동차가 지난해 말부터 다시 덜거덕거리면서 우리 경제는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대우자동차의 의존도가 높은 인천 지역경제는 말이 아니다. 대우자동차 부평공장이 인천지역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은 고용만을 놓고볼 때 15%에 달한다. 이처럼 대우차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인천지역경제는 대우차 사태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계속 바퀴가 헛돌면서 피멍이 든 상태다.지난 1월11일 대우자동차 부평공장 노동조합사무실. 전날 지난해 9월분 임금이 지급됐다는 소식에 노조사무실을 찾은 직원들은 약간 상기된 표정이었다. 4개월씩이나 임금이 밀려 ‘설나기’ 걱정으로 애태웠던 직원들에게 단비였기 때문이다.공장1교대 근무로 일이 없는 직원들은 그동안 건설현장 등을 전전하며 최소한의 생활비를 벌어왔다. 하지만 이도 부족해 어렵게 장만한 아파트를 팔고 평수도 줄여 전세로 옮기는 등 생존의 몸부림을 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부평공장 직원식당에서 만난 김철수(가명, 37)씨는 “지난해 어렵게 마련한 30평짜리 아파트를 팔고 사글세로 옮기고 매일같이 하루벌이 일감을 찾아나서고 있다”고 털어났다. 건설현장 등에 하루벌이를 나섰다가 큰 부상을 입어 병원비를 못대 쩔쩔매는 이들도 속출하고 있다는게 김씨의 설명.상가매출 ‘뚝‘ 급매물 아파트 ‘수두룩’일감을 놓고 경쟁을 벌여 직원들간 의리를 상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기술연구소 휴업으로 집에서 쉬던 이종민(가명, 38)씨는 친척을 통해 몇군데 일자리를 얻어 동료들과 함께 일을 나갔다는 것. 그런데 여기에서 빠진 동료의 부인들이 이를 알고 이씨 부인에게 서운함을 강하게 전달, 아예 조를 나눠 1주일씩 공평하게 일하는 웃지 못할 사건(?)도 벌어졌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회사에서 비록 한달치이긴 하지만 체불임금이 지급됐다고 하니 기쁠 수밖에….하지만 이내 분위기가 썰렁해졌다. 회사측이 구조조정을 마무리짓기 위한 ‘전광석화 작전’을 펼칠 것이라는 얘기가 나돌고 있기 때문이다. 부평구청 관계자도 “대우자동차가 설을 계기로 부평공장 직원 2천여명을 내보내는 구조조정을 시행할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노조는 이에 강하게 맞서겠다며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최종학 노조대변인은 “회사측이 벌써부터 쟁의찬반투표에 방해공작을 펼치고 있다”며 “법적대응은 물론 각종 단체와의 연대를 통해 노조의 동의를 얻지 않은 구조조정안이 이뤄지지 않도록 강력하게 맞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노조는 최근 김우중 전대우그룹회장의 국제현상수배 포스터를 만들어 사내 게재는 물론 영어 및 불어 독어판 포스터를 영국 등 해외5개국에 보내기도 했다.1차 협력업체인 남동공단 소재 다성기업은 지난해 말 대우차로부터 납품대금 30여억원을 받지 못하는 바람에 2, 3차 협력업체에 지급했던 어음을 막지 못해 부도를 냈다. 이 회사는 법원에 화의를 신청, 재산보전처분 결정을 받아냈지만 2, 3차 협력사들은 당분간 30억원에 달하는 납품대금을 받지 못할 것으로 보여 연쇄 도산이 우려된다.인천지역 대우자동차 1차 협력업체는 모두 59개. 이중 8개 업체(1월9일현재)가 자금난으로 부도를 내 근로자 1천여명의 생계가 막막한 상태다. 2차협력업체까지 포함하면 모두 10곳이 부도가 났다.특히 대우자동차의 구조조정안에 부품업체들의 납품가 8% 인하방안이 끼여 있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돌면서 부품업체들의 불안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대우자동차 부평공장에 고무류를 납품하는 D기업 관계자는 “납품가를 더 내리라는 얘기는 아예 문을 닫으라는 것과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이에 부평구청은 지역내에 위치한 대우자동차 2, 3차부품협력사들을 지원하기 위해 생계형 자금 40억원을 긴급히 마련했다. 지역경제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였다. 하지만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자금지원 창구에 한사람도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부평구청 관계자는 “홍보부족 탓으로 돌리며 자금이 어려워 보이는 협력업체들에 직접 전화를 했는데 황당하면서도 한편으로 이해가 되는 답변을 듣고 놀랐다”고 전했다. 얘기인즉 대우자동차 부품협력사라는 사실이 알려질 경우 은행 등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자금 회수압박을 받을 것이 우려돼 신청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부품협력업체의 속마음을 대변해주는 대목이다.인천지역에서도 대우자동차 사태에 따른 된서리를 맞은 곳은 부평공장 인근의 상가들이다. 부평공장 인근 각종 대중업소 1천여개중 50여곳이 지난해 11월 말 대우차 부도 이후 아예 문을 닫았다. 직원들 봉급이 체불되고 실직자들이 늘어나면서 매출이 급감, 더 이상 영업을 해봤자 아무 실익이 없어서다.부평공장 인근에서 호프집을 운영하고 있는 김모씨는 “저녁 7시만 넘으면 손님을 받느라 정신없었는데 지금은 하루매상이 2만~3만원을 넘지 못하고 있다”며 울상을 지었다. 주변 음식점 등도 사정은 마찬가지라고 한다. 때문에 부동산중개소 게시판, 문 닫힌 상가, 전봇대 등 여기저기에 ‘상가 급매물’ 전단이 빼곡하게 붙어있을 정도다. 부평공장 인근 대형 할인매장도 사정은 비슷해 H마트 부평점은 지난해 말부터 매출액이 40% 이상 줄었다.부동산중개소마다 아파트 급매물도 많이 나와 있다. 서울부동산 중개업소 김모씨는 “대우차 부도이후 부평공장 인근 아파트의 급매물이 쏟아지고 있지만 거래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부평구청, 도와주고 싶어도 못돕는 신세대우자동차 사태로 가장 바빠진 곳은 부평구청. 대우자동차로부터 받아야 할 지방세 14억1천6백만원을 아직 받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 해서든 대우자동차를 살려야 미납 지방세를 받을 수 있어 부평구청은 몸이 달아 있다. 부평구청은 지난 1월 11일 박수묵 구청장 명의로 전국시장, 군수, 구청장협의회에 대우자동차 살리기 호소문을 보냈다. 해당 자치단체에서 자동차를 구입할 때 대우자동차를 사달라는 요청이었다.뿐만 아니라 부평구는 롯데백화점에 대우자동차 직원들이 자녀의 학생복 등을 구입할 때 파격적으로 할인해줄 것을 요청, 이의 승낙을 얻어냈다. 대우자동차 직원들이 의류 및 생필품을 구입할 때 롯데 직원들과 같은 수준의 할인혜택을 주기로 약속한 것이다. 여기에 롯데측은 장학금 1천만원을 내놓아 대우자동차 직원 자녀들의 학자금도 지원한다는 계획을 세웠다.하지만 부평구청은 이같은 지원계획을 당장 시행하지 못하고 있다. 대우자동차 노사갈등으로 구내여론이 좋지않기 때문이라는게 부평구청 김형우 중소기업팀장의 설명이다. 인천 지역주민의 피멍이 더이상 한국경제 발목을 잡는 암으로 전이되지 않도록 서로가 한발씩 양보, 대우차 해법을 찾아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