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노하우 살릴 틈새 직업·자원봉사 대상 다양 … 전문가들 “과거 잊어야 재취업 수월” 한목소리

한국통신 KT그린플랜지원센터2년 전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직장 근로자 1천7백73명에게 ‘언제까지 일하고 싶은가’라고 물었다. ‘55세까지’가 14%, ‘60세까지’가 14.8%, 그리고 절반이 넘는 57%는 ‘일할 수 있는 한 일하고 싶다’고 응답했다.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우리나라 기업의 90% 이상이 60세 이하 정년제를 채택하고 있고 이 가운데 65.8%는 55세 이하 정년제다. 노인복지법상 ‘노인’은 만 65세 이상, 국민연금의 수급연령이 만 60세인 점을 감안하면 평균 정년연령이 상대적으로 낮은 셈이다. IMF체제 이후 급격히 늘어난 명예퇴직의 경우엔 대상자 연령대가 더욱 낮다. 40~50대가 구조조정의 집중 타깃인데다 비교적 정년이 보장된 공무원, 공립학교 교원들도 앞당겨 퇴직하라는 공공연한 압박을 받고 있다.문제는 중년의 퇴직자들이 다시 일할 터전이 흔치 않다는 것.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이 운영하는 고령자취업센터가 있지만 대부분의 직종이 ‘몸으로 때우되 보수는 보잘 것 없는’ 단순 노무직에 몰려 있다.그나마 예산·인력 부족에다 사후관리가 안돼 제 구실을 못한다는 지적이 높다. 노동부 고용총괄실 관계자도 “중년 퇴직자가 하던 업무를 살려 다시 취직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대부분이 창업으로 관심을 전환하는 것도 고용 재창출이 어렵기 때문”이라고 인정한다. 중년의 재취업 문제는 개인의 몫으로 방치되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고용 재창출 취약 “틈새직업 찾아라”그렇다고 중년을 필요로 하는 직종이 아주 드문 것은 아니다. 조금만 사회 곳곳을 확대해서 들여다보면 다양한 틈새 직업들을 발견해낼 수 있다. 새로운 일거리를 통해 보람과 활력을 찾고 여기에 고정수입까지 확보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노동부 중앙고용정보관리소는 개인 성향별로 어울리는 ‘제2의 직업’을 정리, ‘고령자 취업 적합 직종’을 제시한 바 있다. 표에 제시된 직종 외에도 매표·검표원, 민원상담원, 전기·수도·가스 검침원, 주·정차 위반 단속원, 기숙사사감, 공원관리원, 조경관리원 등이 추천 직업으로 제시됐다. 55세 이하 준고령자의 경우엔 노인대학 강사, 인력개발컨설턴트, 창업지원컨설턴트, 결혼상담원, 인사노무관리자, 운송사무원, 신용조사원, 식물원관리원 등이 적합한 것으로 나타났다.이들 직종에 종사하려면 먼저 관련 단체·업체에 직접 연락, 자격요건을 확인해야 한다. 전문 교육과정이 있는지, 기술 자격증이 필요한 일인지 알아본 후 진로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 무엇보다 “내가 왕년에~”라는 의식을 버려야 새 직업 구하기가 수월해진다고 직업전문가들은 조언한다.한편 연금 등 일정 수입이 확보된 중년 퇴직자들의 봉사활동도 늘어나는 추세다. 아직까지 자원봉사가 대중화된 것은 아니지만 ‘사회활동을 통해 얻은 기회와 혜택을 환원한다’는데 공감하는 퇴직자가 꾸준히 늘고 있는 것. 한국복지재단 복지팀의 김지영씨는 “교사, 의사, 간호사 등 전문직 퇴직자는 물론 일반 기업체 퇴직자들의 자원봉사 신청이 계속 늘고 있는 상태”라고 밝혔다. 한국복지재단은 자원봉사자의 전직을 살릴 수 있도록 봉사 대상을 연결해 주고 있다.★ 한국통신 KT그린플랜지원센터“새 출발, 회사가 도와드립니다”퇴직금을 쥐어주는 것으로 퇴직절차를 마무리하는 대부분의 기업과 달리, 퇴직 사원이 자립기반을 닦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곳이 있다. 한국통신의 ‘KT그린플랜지원센터’. 사업분야 조정 과정에서 방출된 7천5백여 퇴직자의 새 출발을 돕는다는 목적으로 99년4월 문을 열었다. 퇴직 근로자의 재취업을 알선하는 일반 기업은 간혹 있지만, 체계적인 프로그램과 공간을 준비해 다각도로 퇴직자를 지원하는 곳으로는 유일하다.지원센터의 슬로건은 ‘KT패밀리’. 퇴직한 사원이지만 한국통신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고 이를 발판으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의미다. 취업, 창업에서 재테크, 가정문제까지 지원 범위도 방대하다. 한국통신과 위탁운영 계약을 맺은 CBS컨설팅의 연구원들이 상주하면서 각종 프로그램을 개발, 운영하고 있다.특히 지원센터가 아이템을 발굴해 법인 설립, 경영까지 지원하는 회사가 여섯 군데나 된다. 모두 한국통신 퇴직자들이 함께 꾸려나가는 어엿한 주식회사들이다. 지난해 3월 설립된 한네트관광개발의 경우 ‘열악한 전세버스 서비스를 개선하자’는 목표로 시작, 6개월만에 흑자로 돌아섰다. 99년 11월 18명의 퇴직자들이 만든 미래부동산투자개발은 테마주택, 주상복합아파트 등을 성공적으로 분양하는 등 알짜 수익을 내고 있다.대표를 맡고 있는 김웅태 박사는 “처음엔 ‘감원을 위해 만든 곳’이라는 오해를 받았지만 이젠 ‘퇴직자를 감싸안는 훌륭한 배려’라는 평을 듣는다. 퇴직 대상자의 사후 관리까지 포함해야 성공적인 구조조정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