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IT(정보기술)혁명의 거점을 이야기할 때 한국에서는 언제나 도쿄 시부야의 비트 밸리를 떠올린다. 틀린 말은 아니다. 시부야역을 중심으로 반경 4~5km 안에 수백개의 크고 작은 인터넷 벤처기업이 몰려 있는 지역적 특성을 감안하면 당연한 이야기다.하지만 경제력의 수도권 집중 현상이 한국보다 훨씬 덜한 일본에서는 지방 도시에서도 비트 밸리 못지 않은 벤처기업 요람이 연이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일본 열도 북쪽의 홋카이도 삿포로에서 혼슈의 센다이, 하마마쓰, 나고야를 거쳐 남쪽의 후쿠오카에 이르기까지 인터넷 벤처들은 저마다 미래시장 제패를 꿈꾸며 한데 모여 고유의 아성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일본의 디지털 엘리트들은 이들 지방의 밸리가 비트 밸리의 복사판이 아니라는 것을 무엇보다 강조한다.지방 밸리는 지자체와 지방 경제계 그리고 대학과 향토기업인들의 기대와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으며 특정 기업의 수익보다는 지역 IT화의 기폭제 역할에 중심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대표적 사례로 삿포로에서 활약중인 홋카이도대학 출신 인재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삿포로 밸리가 침체에 빠진 홋카이도 경제를 살리는데 앞장서고 있음을 들고 있다.“예부터 시즈오카 사람들은 시즈오카현 사람들을 상대로 장사를 시작하지만 하마마쓰 사람들은 전국을 겨냥해 장사에 나선다는 말이 있습니다.”태평양 연안을 끼고 일본 열도의 중간에 자리잡은 하마마쓰(浜松)는 세계적 기업인 야마하와 혼다를 배출해 낸 산업도시다. 인구는 50여만명에 불과하지만 초일류 기업의 창업터전이었던만큼 도시에는 활기가 넘친다.이곳에서 태어난 씨-포인트(www. c-point. co. jp)의 노자와 히로키사장(野澤浩樹)은 자신의 사업 무대가 하마마쓰가 아니라 일본 전국을 대상으로 하고 있음을 상기시키고 있다.씨-포인트는 인터넷·인트라넷 사업과 시스템 개발, 컴퓨터 주변기기 판매를 핵심 비즈니스로 삼고 있다.“고객들에게 시스템을 개발해 준다고 그것으로 업무를 끝내지 않습니다. 고객과 지속적으로 아이디어를 교환하면서 웹사이트 시스템을 개선해 줍니다. 한 걸음 더 나가 고객회사의 사업에 출자도 하면서 인터넷 비즈니스에서 얻는 수익을 서로 공유하는 것이 우리의 특징이자 강점입니다.”노자와 사장은 어디까지나 고객과 함께 호흡하면서 열매를 같이 가꿔가는데 사업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예를 들면 씨-포인트는 휴대전화에서 간단히 고기능의 홈페이지를 제작할 수 있는 ‘게이타이(휴대라는 뜻의 일본어)넷’의 경우 시스템 개발을 무료로 해주는 대신 수익은 출자비율에 따라 나누어 받고 있다.창업 4년여의 씨-포인트는 특이한 비즈니스 모델로 일본 인터넷 벤처업계에서 적지 않은 관심을 끌고 있다. 고객층도 하마마쓰라는 한정된 지역을 벗어나 일본 각지로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노자와 사장은 편의점 결제시스템을 비롯, 도쿄의 대학과 오사카의 유명 호텔등으로부터 이같은 방식으로 최근 굵직한 일감을 잇달아 따냈다. 또 홋카이도와 오키나와 등 일본 열도의 남북단 지역의 기업들로부터도 상담이 줄을 이어 출장길에 오를 때가 부쩍 많아졌다.“하마마쓰는 세계 최초로 텔레비전을 개발해 낸 시즈오카대 공학부가 자리잡고 있을 만큼 하이테크의 자존심이 높은 지역입니다.”뜨거운 애향심을 갖고 있는 그는 도쿄의 인재들을 하마마쓰로 데려와 함께 일하고 싶다고 밝히고 있다. 도쿄가 일본 정보기술 혁명의 교두보로 각광을 받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지방 작은 도시에서도 디지털신화의 꿈이 영글고 있음을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