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광고시장에서는 1월 마지막주 일요일이 새해 첫 출발점이다. 이날은 미국 최대의 스포츠이벤트인 프로풋볼경기의 결승전인 슈퍼볼이 열리는 날이다. 7전4승제로 열리는 프로야구 월드시리즈와는 달리 단판 승부로 결정짓는 슈퍼볼은 미국에서만 1억3천만명, 전세계적으로 10억명 이상이 관전하는 것으로 집계된다.그런 슈퍼볼은 광고업계 입장에서도 최고의 상품이다.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광고를 할 수 있는 만큼 효과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때문에 광고비도 30초당 평균 2백50만달러, 우리돈으로 따지면 초당 1억원을 넘어선다.슈퍼볼이 열린 다음날 미국인들의 화제는 딱 두가지뿐이다. 어느 팀이 우승했느냐를 중심으로 하는 게임내용과 어떤 광고가 인상적이었나 하는 광고평론이다. 신문들도 체육면에선 경기내용을 다루지만 경제면에선 광고분석에 시끄러울 정도다.광고업계는 그래서 가능하면 새해 첫 광고를 슈퍼볼에 맞춰 선보인다. 결산이 몇월이든 상관없이 대부분의 기업들이 슈퍼볼 이전에 모든 전략을 세워 새 광고를 만들어야 한다. 올해도 이러한 전통이 그대로 이어졌다.올해 슈퍼볼 게임은 다소 싱겁게 끝났다. 볼티모어 레이븐스가 뉴욕 자이언트를 일방적으로 몰아붙여 게임초부터 승부는 관심권에서 벗어났다. 시청자들은 그래서 광고에 더욱 관심을 가졌다. 올해 시청자들의 눈길을 끈 광고중 하나는 온라인 구인구직 광고인 Hotjob.com.장례식을 준비하는 사람이 웃음짓는 얼굴을 한 시체의 웃음을 지우고 근엄한 얼굴을 만들려고 여러번 시도를 하고 있으나 시체는 자꾸 웃음을 짓는다. 그러는 와중에 자막에 ‘Life Is Short. Be Happy’라는 문구가 흐른다. 인생은 짧으니 행복하게 살아가라는 말. 짧은 인생을 즐기려면 빨리 직업을 구하라는 메시지이다.슈퍼볼 광고 시체·환자 등장 CF ‘눈길’50대 심장마비 환자를 내세운 도시바 광고.다소 코믹하지만 이 광고의 특징은 ‘시체(죽음)’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바로 이 ‘죽음’이 새해초 미국 광고계의 새로운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다. 광고에 ‘죽음’을 이용하는 것은 쇼크기법중 하나이다. 쇼크의 내용이 그동안 터부시돼 왔던 죽음이라는 데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광고평론가들은 미국인들이 ‘섹스’ 일변도의 광고에 싫증을 느끼고 있어 이에 대한 대안이 제시되고 있는 현상이라고 설명한다.역시 슈퍼볼에서 첫선을 보인 디스커버리크레딧카드의 광고에도 ‘죽음’이 등장한다. 무대는 가상의 성 소피아병원. 응급실에서 거의 사망상태에 이른 환자를 앞에 놓고 의사와 간호사들이 이 환자의 크레딧카드가 승인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카드가 승인됐다는 사인이 오자 곧 죽을듯한 환자가 벌떡 일어나 미소를 짓는다. 이 광고는 디스커버리카드가 주로 메이저카드들만 통하는 의료서비스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는 점과 이를 사용할 경우 1%를 현금반환서비스로 준다는 내용을 홍보하고 있다.최근 방송을 많이 타고 있는 FedEX의 광고도 비슷한 효과를 노리고 있다. CATV에서 ‘악어사냥’이란 프로를 진행하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인기 방송인인 스티브 어윈이 악어사냥중 뱀에 물린다. 뱀에 물리고도 해독제가 FedEX를 통해 오면 빨리 오기 때문에 걱정없이 방송을 진행하던 어윈.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해독제가 다른 업체를 통해 배달되다가 일이 잘못됐다는 것을 귓속말로 전해들은 어윈은 그 자리에 쓰러져 죽어버린다.물론 이런 광고들은 ‘죽음’이라는 측면보다 ‘코믹’한 점이 강조되어 엄밀하게 쇼킹 광고라고 부르기는 힘들다. 하지만 ‘코믹’요소가 배제된 쇼킹한 죽음광고도 적지 않다. 복사기 프린트 팩시밀리 등을 파는 도시바는 이런 쇼킹광고에 승부를 걸고 있다. 현재 연간매출 7억5천만~10억달러선으로 미국내 시장점유율 8위인 도시바는 이 광고를 통해 캐논 제록스 등 연간매출이 30억달러에 달하는 업체를 따라잡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1차 광고비를 1천만달러로 책정해 놓고 있을 정도다.쇼킹광고 실패사례도 많아30초짜리 광고는 병원 침상위에 누워있는 50대 심장마비 환자가 눈을 감고 있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경쾌한 오케스트라음악이 배경에 깔리며 환자의 벗은 가슴에 전기충격이 가해진다. 환자는 젊은 부인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복사기앞에서 지루하게 기다리는 과거를 회상한다. 전기충격이 다시 가해진다. 환자는 충격에 눈을 뜬다. 광고말미에 “복사기 앞에서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 컴퓨터에서 직접 복사하라”는 문구가 흐른다.다른 광고들이 죽음을 유머와 함께 소화하는데 비해 도시바광고에는 유머가 없다. 지나치게 쇼킹한 것 아니냐는 비판에 대해 도시바 미국법인 마케팅담당부사장인 마크 매튜스는 “랩톱같은 첨단제품으로 잘 알려진 회사는 이미지관리에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며 “이같은 사실적인 접근이 더 좋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한다.광고를 만든 캘리포니아 샌타 아나의 DGWA광고회사 존 고톨드 감독도 “경쟁회사들의 광고가 주로 제품의 특성을 설명하는 것인데 비해 이 광고의 목적은 감정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라며 “진실을 찾아내 많은 이들에게 기억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한다. 근무시간의 비효율적인 사무장비에 대해 뭔가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관심을 불러일으키는게 광고의 의도라는 설명이다.이같은 도시바의 ‘유머가 없는 쇼킹’한 광고의 성공여부는 그러나 아직 불투명한 편이다. 지난 97년 <쇼크마케팅-광고, 영향 그리고 가정의 가치 designtimesp=20706>라는 책을 펴냈던 일리노이주 시카고근교 웨스턴스프링의 마케팅커뮤니케이션 컨설턴트인 조 마르코니는 “쇼크광고가 시청자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사실이지만 광고의 효과가 의도한 만큼 이뤄지는지는 미지수”라며 “쇼크의 이미지와 광고의 메시지를 얼마나 잘 연결시키느냐에 성공여부가 달려 있다”고 말한다.지난 80년대 두명의 누드모델을 등장시켜 브랜드 이름을 뚜렷이 부각하는데 성공한 캘빈클라인 같은 성공사례가 하나 나오기 위해 실패사례는 그보다 훨씬 많았다는 설명이다. 최근 들어 여성 육상선수가 쇠사슬로 무장한 남자에 의해 쫓기는 나이키광고 등도 ‘쇼킹’을 시도했으나 실패한 대표적인 사례들이다.미국시장에서 도시바 복사기의 판매신장률은 외설을 넘어 죽음을 끌어안으면서 시도되고 있는 쇼킹광고가 성공여부를 알려주는 가늠자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