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씹는 치약’ 진지한 메시지 ‘이왕이면 기능성 껌으로’ 마케팅 전략 적중

롯데제과의 ‘자일리톨 껌’은 지난해 하반기 껌 시장 재편을 예고하며 ‘충치예방 껌’ 바람을 일으킨 상품이다. 지난해 6월 출시된 이후 첫 달 4억원의 매출을 올린데 이어 12월말까지 7개월 동안 1백40억원이 넘는 매출실적을 올렸다. 자일리톨 껌 한통이 5백원임을 감안할 때, 이는 껌 2천8백만 통에 해당하며, 전체 국민 가운데 절반이 넘는 인구가 지난 한해 동안 자일리톨 껌 한통씩을 씹은 셈이 된다.특히 지난해 9월부터는 껌시장 매출 1위(20억~30억원) 품목으로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 보통 잘나가는 껌이라고 해야 월 5억~10억원 매출을 올리고 있는데 비해 롯데 자일리톨은 2배~4배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데 따른 것이다. 이런 추세는 올해 1월 4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2월부터는 월 50억원의 매출도 가능하다는 롯데측의 조심스런 예측에 비추어 볼 때 당분간 타의 추종을 불허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도대체 이와 같은 히트의 비결이 뭘까.우선 건강 관련 제품을 선호하는 최근의 소비자 트렌드에 비추어 설명할 수도 있다. 자일리톨 껌은 핀란드산 자작나무에서 추출된 ‘자일리톨’ 성분을 이용한 껌으로, 충치의 균(무탄스균)을 억제 또는 제거함으로써 충치예방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아무리 건강에 좋은 식품이라도 맛이 없거나 가격이 적당하지 않으면 소비자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 입에 쓴 한약이 비록 몸에 좋다고는 하지만, 한약을 상시 복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 않은가. 다행히 자일리톨 껌은 설탕과 거의 같은 단맛에다 청량감까지 갖고 있어 ‘맛도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7개월 동안 1백40억원 매출 … ‘껌값’ 짭짤그렇다면 가격은 어떨까? 롯데 자일리톨 껌 1통의 가격은 5백원이다. 보통 껌(3백원)의 거의 2배 값이다. 게다가 요즘은 ‘마른 수건도 다시 짠다’는 불황기다. 단돈 10원짜리 한푼이 아쉬운 요즘, 한갓 기호품일 수 있는 껌 1통을 사기 위해 5백원 짜리를 선뜻 내놓을 정도라면 그만큼 특별해야만 한다. 결코 가격이 싸서가 아니라, 비싼 만큼 가치가 있다는 인식을 소비자들에게 심어줬다는 얘기다. 롯데의 마케팅 전략은 바로 여기서 시작한다.사실 롯데제과가 자일리톨 껌을 시장에 내놓은 것은 지난해 6월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97년9월 ‘자일리톨 F’란 이름으로 시장에 첫선을 보였지만, 소비자 반응이 시원찮아 나온 지 몇 달만에 철수했다.롯데제과 마케팅 1팀 조경수 팀장은 “막 IMF가 시작되던 시점이라 소비심리가 극도로 위축돼 있었던 탓도 있었지만, 자일리톨 껌이 5백원이란 비싼 가격에 걸맞는 상품이란 이미지를 심어주지 못한 탓”이라고 당시의 실패원인을 분석했다. 한마디로 “마케팅의 실패”였단 설명이다. 당시 껌 시장은 덴티큐를 비롯한 무설탕 껌이 위세를 떨치던 때라 자일리톨 껌도 그저 비싸기만 한 또 하나의 무설탕 껌으로 소비자들에게 인식됐던 것이다.롯데제과는 그러나 이 껌을 그대로 접을 수는 없었다. 여기에는 비슷한 시기에 일본 롯데제과에서 출시된 자일리톨 껌은 일본 소비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는 점도 한몫을 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 즉 껌의 기획단계로 돌아가 껌의 효능을 제대로 알리는 것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었다.97년 ‘자일리톨F’로 첫선 … 마케팅 ‘쓴맛’롯제제과는 이에 따라 마케팅팀 직원들을 자일리톨의 본고장이자 자일리톨 껌을 충치 예방용으로 가장 잘 활용하는 곳인 핀란드로 파견했다. 여기서 직원들은 각종 충치세미나는 물론, 일반 가정, 유치원, 학교, 보건소 등 충치와 관련된 곳이면 어디든지 방문했다. 충치가 거의 없기로 유명한 핀란드인들이 생활속에서 자일리톨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체험하기 위해서였다.회사의 자존심을 건 2년여의 준비 끝에 2000년1월 롯데측이 처음으로 내놓은 것은 치과용 자일리톨 껌. 이미 자일리톨의 효능을 알고 있는 치과의사들을 통해 자일리톨 껌을 충치예방 권장식품으로 보급했던 것이다. 또 하나는 사단법인 충치예방연구회를 통해 자일리톨의 효능을 제대로 알리는 것. 충치예방연구회는 충치예방의 3가지 방법으로 칫솔질 잘하기, 불소음용, 자일리톨 이용 등을 추천하고 있던 터라 롯데로선 이들 전문가들을 활용해 일반인들에게 자일리톨의 효능을 제대로 알리는 것이 급선무였던 것이다.6월로 예정된 시판용 껌 출시를 앞두고 롯데측이 가장 고민했던 문제 역시 자일리톨 껌의 충치예방 기능을 부각시키기 위한 광고 차별화 전략. 자일리톨 껌이 의약품이 아니라 식품이기 때문에 껌의 효능을 그대로 광고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롯데가 이용한 전략이 핀란드 현지에서 본 일반인의 충치예방 생활을 그대로 광고에 활용하는 것. 자기전에 자일리톨 껌, 학교가기 전에 자일리톨 껌, 연인끼리, 부부끼리 자일리톨 껌 등 4편의 광고를 핀란드 현지에서 제작해 보여주는 전략으로 이국적인 현실감을 살렸다.이와 함께 6월초 치과업계가 대대적으로 벌인 구강건강 캠페인과 더불어 대학로, 대형 쇼핑센터 등에서 자일리톨 껌 무료시식 행사를 통해 소비자들의 인지도를 높이는데 성공했다. 껌의 포장을 기존의 일반 껌 형태가 아니라 휴대가 간편한 고급형으로 바꾼 것도 주요 전략중의 하나.결국 자일리톨 껌의 성공은 실패를 발판으로 한 철저한 시장조사와 소비자들의 마음을 얻기 위한 치밀한 마케팅 전략이 빚어낸 결과라 할 수 있다. 남은 과제는 해태제과의 ‘자일러스 플러스’ 등 유사제품이 속속 생겨나고 있는 실정이라, 이들 ‘미투(Me Too)’제품들로부터 어떻게 차별화된 이미지를 지켜나가느냐가 아닐까 싶다.★ 인터뷰 / 조경수 자일리톨 껌 마케팅 실무책임자“핀란드 체험 마케팅 접목 결실”“97년 자일리톨 껌을 처음 출시했을 때는 마케팅을 책임진 저희들도 ‘자일리톨’이 무엇인지, 어떤 효능이 있는지 정확하게 몰랐습니다. 핀란드에 가서 그들의 생활을 보고서야 자일리톨의 효능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고나 할까요.”자일리톨 껌의 마케팅을 책임지고 있는 롯데제과 마케팅 1팀 조경수(40) 팀장은 “상품을 제대로 아는 것이 곧 제대로 된 마케팅 전략을 짜는 비결이었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2년여 동안의 피를 말리는 듯한 노력이 헛되지 않아 다행”이라는 것이 조팀장의 솔직한 심정. 그러나 조팀장에게 자일리톨 껌의 히트는 단순한 성공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94년 해태제과가 덴티큐를 출시한 이후 껌 시장의 판도를 바꾸며 ‘껌이라면 역시 롯데 껌’이라는 롯데의 자존심을 구겨놨다. 이후 롯데제과는 무설탕껌 ‘제로’와 치아미백껌 ‘화이트E’ 등으로 시장 점유율을 높이긴 했지만 기존의 위상을 완전히 회복하기에는 미흡했다. 자일리톨 껌의 성공은 기능성 껌시장에서 롯데의 위상을 끌어올리며 ‘껌=롯데’라는 등식을 재확인시켜준 계기가 된 셈.86년 롯데제과에 입사한 조팀장은 껌 제조업체 마케팅 담당으로서 간부회의에서나 사장 앞에서도 껌을 씹을 수 있는 ‘특권’이 있는 반면, 베개 밑에까지 껌을 넣어두고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계속 껌을 씹어야 한다는 것이 그다지 녹록지 만은 않다는 고충도 털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