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부 영국 탄광촌에 사는 11살 꼬마 빌리 엘리어트(제이미 벨)에게는 남 모를 고민이 하나 있다. 지금 받고 있는 권투 수업보다는 우연히 접하게 된 발레에 맘이 끌리는 것. 대대로 ‘우리 집안 남자라면’ 당연히 해야 한다는 권투를 안하려니 아버지 불호령이 무섭고, 춤을 포기하자니 몸 안에 꿈틀대는 끼를 주체할 수가 없다.올해 골든 글로브 최우수 작품상 후보였으며, 곧 열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유력한 후보로 예상되고 있는 <빌리 엘리어트 designtimesp=20674>는 한 꼬마의 감동어린 성장기다. 영화 속 어린 영웅들이 늘 그렇듯이 빌리 역시 수많은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발레는 계집애들이나 하는거라 믿는, 천생 ‘광부’인 가족을 설득할 일은 까마득하다. 오디션을 보러 가자니 차비도 만만찮다. 혹 합격한대도 없는 살림에 학비는 또 어쩔 것인가. 온갖 난관에도 불구하고 꿈을 잃지 않는 빌리 이야기는 언뜻 여느 성장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그러나 감독 스티븐 달드리는 성장 영화의 틀에 다양한 색깔의 피륙을 짜입혀, 전형성을 넘어서고 삶을 바라보는 시선에 깊이를 더한다.84년 영국 북부의 탄광촌엔 대처 정부의 광산개혁 조치가 취해지고 이에 반발하는 광부들의 파업이 한창이다. 빌리의 아버지와 형 역시 여기 참여하고 있다. 단단한 신념으로 뭉친 아버지가 아들의 꿈을 이뤄주려고 ‘배신자’가 돼 대열에서 빠져나가다 울부짖을 때, 파업 이야기는 더 이상 영화의 배경에 머무르지 않는다.또한 거친 영국 북부의 분위기 속에서 권투냐 발레냐를 고민하는 빌리나, 커밍 아웃을 시도하는 친구 마이클의 에피소드는 젠더(gender)론과 성 담론을 은근하게 끌어내는 솜씨가 돋보이는 또 다른 부분이다. 이렇게 감독은 세밀한 부분에까지 의미를 담아두는 욕심을 부리고 있지만 그 욕심이 지나치지도 덜하지도 않다.마치 수많은 색실로 완성된 하나의 멋진 자수처럼. 게다가 빌리의 춤을 담은 화려한 화면, 곳곳에 배치된 유머 덕에 즐기기에도 손색이 없다. 영화 속 빌리의 춤은 정통 발레가 아닌 영국식 탭댄스와 발레가 섞인 것. 배경음악도 발레에 걸맞는 고상한 클래식보다, 체제 전복적인 성격의 장르인 브리티시 펑크록이 많아 경쾌함을 더하고 있다.이 영화 역시 <풀 몬티 designtimesp=20687>를 비롯한 최근의 영국 영화들이 보여주는 상업적 온건 보수주의 혐의를 벗지 못한다. 그러나 <빌리 엘리어트 designtimesp=20688>를 빛나게 하는 건 바로 이 조화로운 통제와 그로부터 나오는 세련된 감동이다.이미 여러 영화상의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라 있는 멋진 꼬마 제이미 벨과 연극 무대에서 잔뼈가 굵은 줄리 월터스의 연기는 따스함을 느끼게 한다. 재치있는 욕설이 난무하는 탄탄한 시나리오도 영화의 완성도에 큰 밑거름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