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시죠? 한푼 두푼 세뱃돈 아껴쓰던 그 시절 그 마음….”지난 설 연휴 때 뉴욕에서 발행되는 한 한국신문에 나온 전면 컬러 광고의 카피다. 색동저고리를 입은 예쁜 한국 꼬마가 복주머니를 들고 있는 배경이 앙증맞다. 평소 이런 광고는 대부분 한국기업의 제품이나 이미지광고들이다. 교포들에게 고국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켜 현지판매를 늘리려는 의도에서다. 한국신문에 어쩌다가 나오는 미국기업 광고들은 한국인들이 주요고객인 국제전화회사들이다.그러나 이 광고의 스폰서는 뜻밖에도 미국 우정국이다. 설날이면 한국교포들의 우편물이 많아지는 것도 한 요인이다. 하지만 이 광고는 우리식으로 따지면 공기업인 미국 우정국의 공격적인 마케팅의 하나로 해석되고 있다. 반정부조직인 공기업도 과감한 경영혁신 없이는 살아남기 힘들다는 메시지인 것이다.미 우정국이 온라인 결제 · 첨단 배달업무 메카로 재탄생하고 있다. 뉴저지주 버겐카운트의 글렌락 우체국 창구.공격적인 경영으로 홀로서기를 하고 있는 우정국은 지금 미국 e비즈니스의 중심에 서 있다. 지난해 초엔 인터넷홈페이지의 주소를 아예 ‘www.usps.gov’에서 ‘www.usps.com’으로 바꿨다. 정부(gov)보다는 기업(com)의 벤처정신으로 혁신을 하겠다는 생각이다. 우정국의 과감한 변신노력은 왜 e커머스가 필요하고 어떤 방향으로 가야하는지를 그대로 웅변해주고 있다.우정국을 변화시키는 요인은 간단하다. 주종목인 우편배달의 세계가 너무나 빠르게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e메일이 늘어나고 인터넷 거래는 점점 폭증한다. 이런 물결은 맞서 싸울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빨리 동참할 수밖에 없다. 기차가 나왔을 때 편지와 소포를 배달하는 말을 버리고, 비행기가 나왔을 때 기차를 포기한 것과 똑같은 논리다. 정부기관이 민간업계에 진출한다는 민간업계의 항의도 있지만 앉아서 죽을 수는 없다는게 우정국의 입장이다.전자결제·e메일 급속 확산 ‘생사기로’우정국의 핵심 업무는 일반우편 배달. 그러나 인터넷의 발달은 이 업무를 빠르게 위축시키고 있다. 이는 곧바로 매출과 수익감소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몇년간 영업실적이 좋았던 우정국은 실제 지난해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 99년 우정국을 통한 세금 지급 및 반환결제는 8억8천만건이었으나 지난해에는 이중 68%가 전자시스템으로 대체됐다. 우정국의 수익이 단번에 1억8천만달러 날아갔다. 때문에 올 1월부터는 일반우편의 우표값을 33센트에서 1센트 올린 34센트를 받고 있다.우편물 배달에 나선 뉴저지주 우체국 직원.우정국의 주요고객인 은행들이 자기네 고객들에게 보내는 우편물도 지난 96년부터 99년까지 20% 가량 줄어들었다. 거꾸로 고객들도 수표를 우편으로 보내던 각종 공과금을 이젠 온라인을 통해 보낸다. 미국에선 대부분의 시민들이 각종 결제를 개인수표로 하기 때문에 수표우편은 우정국으로선 가장 든든한 수익기반이었다.우정국은 지난해 한해 동안 2천70억건이었던 우편건수가 경제성장속도보다 느리게 증가, 2003년에 2천1백60억건으로 피크를 기록한 뒤 그 다음에는 점점 줄어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전자결제수단과 e메일의 사용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는 탓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실제는 우정국의 예측보다 더 빠른 속도로 줄어들어 2008년에는 고작 1천8백80억건에 불과할 것으로 내다본다.백화점이나 온라인쇼핑기업들의 인터넷 매출이 늘어나면서 소포운송이 특수를 맞고 있으나 이 분야에는 FedEx나 UPS같은 경쟁력있는 상대들이 버티고 있다. 우정국이 이익을 내기 쉽지 않다. 조그만 동네의 배달전문업체들도 방심할 수 없는 경쟁자들이다.이같은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우정국은 최근 5개년 장기계획을 세워 의회에 제출했다. 일반우편의 감소를 e커머스에 대한 광범위한 발전을 통해 해결하겠다는게 핵심내용이다. 우정국이 시도하는 주요 e커머스는 다음과 같다.●전자결제= ‘eBillPay’라는 시스템을 도입, 고객들이 우정국을 통한 송금 및 결제가 가능토록 한다. 물론 결제는 다른 인터넷업체보다 빠르게 해준다. 수수료도 20건까지 6달러(혹은 한달에 2달러)이고 그 이후 건당 40센트 받는 식으로 다른 업체들보다 훨씬 싸다.●온라인메일= ‘NetPost’라고 불리는 서비스로 메일내용을 인터넷을 통해 우정국으로 보내면 우정국에서 이를 인쇄하고 봉투에 넣어 주문자가 원하는 메일리스트로 발송해주는 시스템이다. 기업들이 많은 고객들에게 동시에 우편이나 뉴스레터 등을 보낼 때 쉽게 이용할 수 있다. 우정국이 가장 야심차게 생각하는 계획으로 5백장 프린트하고 발송하는데 9백달러를 받는다.●전자 우편소인= 법률 의료 교육과 관련된 서류가 e메일을 통해 확실히 전달됐다는 것을 전자우편소인을 찍어 증명해주는 서비스. 우정국 e메일망을 통할 경우 수수료를 지불하는 대신 확실한 전달을 보장받을 수 있다.●인증된 e메일 서비스= 법률회사나 기업들이 정부에 보내는 서류는 정부가 요구하는 법적인 서류양식을 갖춰야 한다. 우정국에서 이런 법적인 서류양식을 갖추고 여기에 맞춰 서류를 e메일을 통해 정부에 보내는 서비스이다.●온라인상점= 우정국 인터넷망에 상점을 만들어 우표는 물론 전화카드나 우표수집자들을 위한 앨범 등도 판매한다.우정국은 이같은 e커머스를 구축하는데 2천6백만달러 정도 들어가지만 한번 구축해 놓으면 연간 4천2백만달러의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상당히 남는 장사인 셈이다.문제는 민간 사업자들의 반발을 어떻게 무마하느냐에 달려 있다. 민간부문의 e커머스 업체들의 대변인격인 미국 컴퓨터통신사업연합회(CCIA)는 우정국의 변신에 대해 격렬한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다. 정부의 보호막 아래 일반우편을 독점하는 우정국이 e커머스 시장에 진출, 민간기업들과 경쟁하는 것은 불공정한 게임이란 논리다. 에드 블랙 연합회장은 “우정국이 민간업자의 가면을 쓰고 e커머스 시장에서도 우편독점을 하려는 의도”라고 비판하고 있다.하지만 이같은 논란이 우정국이 걷고 있는 e커머스의 길을 가로막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그 길을 가지 않으면 우정국 조직의 생사가 불투명해진다는 것을 우정국 자신이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