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 디지털디자인연구실장 김진(40) 상무는 언제나 ‘악수’로 인사를 나눈다. 상대가 윗사람이건 아랫사람이건 남자든지 여자든지 항상 먼저 손을 내민다. 그리고 남자보다도 세게 ‘꽉’ 잡는다.“성별이나 지위고하에 관계없이 대등하고 당당하게 ‘실력’으로 승부하겠다는 각오가 인사습관으로 굳어진 것 같아요.”김상무는 최근 LG전자가 발표한 임원인사에서 상무로 발탁됐다. 지난해 부장급 책임연구원으로 진급한 후 1년만에 전문위원으로 초고속으로 승진한 것이다. 부장 1년차 디자인 전문가가 임원으로 올라간 것만도 파격적인 인사다. 더구나 신입사원부터 시작해 임원까지 자체 육성된 여성은 LG그룹에서 김상무가 첫 케이스다.그동안 대기업 인사에서 여성이 임원직에 오른 일이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도 김상무의 사례는 여성인력의 사회진출에 적잖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맡은 일에 철두철미 … 여왕벌 별명까지김상무는 홍익대 공업디자인과를 졸업하고 지난 83년 LG전자의 전신인 금성사 디자인종합연구소에 대졸여성 공채 1기로 입사했다. 김상무는 입사때부터 도전적인 성격이 돋보였다. 입사시험 면접에서 결혼을 하고도 계속 근무할 것을 다짐받았을 만큼 당찬 새내기였다.혹시라도 성차별 같은 부당한 일을 겪기라도 하면 내 일이건 남의 일이건 그냥 넘기는 법이 없었다.“불이익을 받고 있다고 생각이 들면 그 때마다 인사당담 임원에게 시정을 요구하는 편지를 썼습니다. 그래도 고쳐지지 않으면 직접 찾아가 당당하게 의사를 밝혔죠.” 이처럼 지고는 못사는 성격 덕분에 동기 여직원들이 결혼 후 회사를 떠나는 동안에도 6년만이지만 기어이 대리를 달고야 말았다.김상무는 18년 동안 제품디자인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이다. 윗사람들이 ‘깐깐하다’는 뜻으로 ‘깐숙이’란 별명을 지어주었을 만큼 모든 일이 철두철미하다. 평소엔 부드럽다가도 성실성에 문제가 있다 싶으면 여지없이 일침을 가하는 탓에 남자 부하직원들로부터는 ‘여왕벌’이란 애칭도 얻게 된다.“제품디자인은 무엇보다 ‘컨셉’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소비자가 어떤 것을 원하는가’란 고민에서 출발해야 합니다.”김상무는 한때 검은색 일색이었던 소형카세트에 식상해하던 젊은층의 니즈를 읽고 빨간색의 아기자기한 디자인을 제시해 호응을 받기도 했다. 지난 98년엔 ‘늘 끼고 다니는 이어폰을 방안에서까지 귀에 꽂아야 하나?’란 문제제기로 충전기에 스피커를 장착한 ‘아하프리’ 디자인도 소비자 입장에서 불편을 읽었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다. 이 제품은 김상무에게 굿디자인(GD) 대통령상과 산자부장관 최우수디자이너상을 가져다 줬다. 지난해 선보인 문자메시지 화면을 9줄로 길게 늘린 아이북(i-book) 디자인도 대히트였다.김상무의 도전엔 끝이 없다. 현재 산업정책연구원과 헬싱키 대학원 부설 MBA에서 경영과정을 밟는 중이다.“아직 배울 게 너무 많아요. 진정한 디자인 전문가라면 디지털디자인 시대에 맞는 경영도 알아야 하지 않겠어요.”김상무는 자기 일만 열심히 하는 게 프로는 아니라고 말한다. 치과의학박사인 남편의 병원일을 돕는 일이나 중학생 딸을 돌보는 데도 결코 소홀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