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하시 죠센씨는 <일본,올해가 버블경제… designtimesp=20815>에서 일본은 올해가 가장 힘든 해가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지난 3월8일 정오를 조금 지난 시각. 오전 내내 이렇다 할 움직임이 거의 없던 도쿄 외환시장은 오후 1시가 넘어서면서 갑자기 출렁거리기 시작했다. 변동폭이 미미했던 엔화 값은 초특급 태풍을 만난 듯 맥을 못추더니 장중 한때 1년 8개월만에 달러당 1백20엔대로 밀려 난 후 전일의 달러당 1백19. 23엔에서 1백19. 95엔으로 0. 72엔이 떨어진 채 장을 마감했다. 태풍은 외환 시장만 덮친 것이 아니었다. 곧 바로 인접한 증시로 이동해 그렇지 않아도 비틀거리던 도쿄 주식시장을 강타, 닛케이 평균주가를 73엔이나 꺾어 버렸다.이날 태풍은 밖에서 불어 온 것이 아니었다. 일본 내부에서 생겨난 자연발생적 강풍이었다. 그리고 그 진원지는 도쿄의 정치 1번지 국회의사당이었다. 태풍을 몰고 온 주인공은 일본 정계 최고의 경제통이자 나라 살림을 꾸려가는 총책임자인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재무상이었다. 그는 이날 오전 야당의원들에 대한 예산심의 답변 과정에서 “일본의 재정은 파탄국면에 근접해가고 있다”고 말해 듣는 이들의 귀를 의심케 했다. 그의 발언은 도쿄 외환시장과 증시를 강타한데 이어 외신을 타고 즉시 전세계에 전해졌다.하지만 미야자와 재무상의 발언은 전혀 새삼스런 것이 아니었다. 일본 경제를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관찰자라면, 그리고 관심을 갖고 들여다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던 문제였기 때문이었다.일본에서는 누적된 재정적자와 그로 인한 나라 살림 파탄 이야기가 새로운 화젯거리가 아니다. 버블경제가 꺼진 90년대 초반 이후 근 10년 이상을 불황의 터널 속에서 허우적거린 탓에 경제활동은 위축되고 조세 수입은 줄어든 가운데서도 그동안 퍼부은 돈이 적지 않다는 것을 어지간한 사람들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들어오는 돈은 빠듯하지만 경기를 살려 보려고 국가 예산을 늘리다 보니 재정은 빚더미에 앉게 된 것이 이제는 공공연한 사실이 돼 버렸다는 이야기다.경제소설 <일본국채 designtimesp=20826> 경제 위기 경고그러나 일본의 서점가에는 재정적자와 그로 인한 파탄, 즉 국가 부도를 예고하는 소설 또는 경제 예측서들이 올들어 유난히 각광받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이들 서적은 특히 최근 도쿄 주식시장의 주가가 버블 이후 최저치를 잇따라 경신한데다 외환 시장에서도 엔화 값이 달러당 1백20엔 밑으로 추락하는 등 일본 경제의 난기류가 거세지자 각 서점마다 앞다퉈 베스트 셀러로 급부상하고 있다. 제목은 제각각이고 집필자들의 컬러 또한 천차만별이지만 이들 서적에 담겨 있는 내용은 거의 한결같다. 일본 경제가 지금 처해 있는 상황은 전례를 찾아 보기 힘들 만큼 위급하며 자칫 잘못 대응하면 회복불능의 상태로 빠지고 만다는 것이다. 서적들 중에는 일본 경제가 도저히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맞게 된다고 예고하는 내용들까지도 눈에 띄고 있다.경제 위기를 경고하는 책들중 가장 눈길을 끄는 서적은 단연 경제소설인 <일본국채(저자·고다 마인 幸田眞音) designtimesp=20835>다. 이 책은 일본이 거액의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대량으로 발행한 국채가 수요부족으로 가격이 폭락한다는 가상 시나리오를 전제로 깔고 있다. 국채값 폭락은 시장금리 급등으로 이어지고 기업은 원리금 부담이 폭증해 빚을 제때 갚기 어려워진다. 부실채권이 늘어난 은행은 일제히 대출회수에 나서고 가계는 돈을 구하기 힘들어지면서 기업에 이어 소비자 파산도 급증, 연쇄부도의 고리에 휘말리게 된다는 줄거리다.고단사가 작년 11월에 출간한 이 책은 지난 2월로 판매부수가 벌써 10만부를 돌파했으며 최근의 경기 상황과 맞물려 찾는 이들이 갈수록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작가 고다씨는 “책을 읽어 본 공무원과 은행원들로부터 자신들이 느끼는 위기와 당혹감을 잘 그려냈다는 찬사를 받을 때가 많다”고 전하고 있다. 올들어 부쩍 불거진 경제 위기설이 단순히 ‘설’로만 끝나지 않고 일본 중산층 국민들의 마음 속 깊이 끝없는 두려움을 심어주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일본 경제의 파국을 예고한 책들 중에는 소설이 아니라 각종 데이터와 분석자료에 바탕을 둔 예측서들도 상당수 끼여있어 눈길을 끈다. 대표적인 경우가 은행, 증권업계 관계자들의 애독서가 된 <통화가 추락할 때(저자·기무라 오카 木村 剛) designtimesp=20841>이다. 저자는 “내용이 딱딱하고 비교적 전문적이기 때문에 많이 팔릴 것으로 기대하지 않았다”며 “현실로 나타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쓴 내용들이 눈 앞에 벌어지고 있다”고 씁쓸해 했다. 이 책은 발간 즉시 3만부가 팔려 나가 출판사가 부랴 부랴 추가 인쇄 작업에 돌입했다.전문 이코노미스트가 쓴 책 중에서는 미쓰비시 종합연구소의 고문 다카하시 죠센씨(高橋乘宣)가 펴낸 <일본, 올해가 버블경제 이후 가장 힘든 시기다 designtimesp=20844>는 서적이 단연 눈길을 끈다. 다카하시 고문은 일본 경제가 미국경제의 감속과 일본 금융기관들의 불량 채권 누적, 그리고 기업도산 태풍에 휘말려 올해 가장 혹독한 시련을 겪을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지난해 11월에 선보인 이 책은 비즈니스 관련 서적에서 베스트 10위권을 항상 유지해 왔는데 최근 일본의 경제상황이 더욱 고꾸라지면서 외국 매스컴들로부터의 관심과 시선도 뜨거워지고 있다. 다카하시 고문은 한국경제신문과 가진 지난 1월의 단독 대담에서도 도쿄 증시의 닛케이 평균주가가 버블 이후 최저치(1만2천8백79엔)를 경신하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주장했다. 또 1만2천엔선도 무너질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어 그의 정확한 예측에 독자들이 혀를 내두르게 하고 있다.학생 주부들에까지 베스트셀러 부상일본 경제의 위기를 점치는 서적들 중에는 이밖에 <2003년 일본국 파산> <일본이 파탄할 때 designtimesp=20851> 등 일본의 거덜난 나라 살림을 예고하는 책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 보는 이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내일의 일본 경제에 경종을 울리는 책들의 인기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아직은 단정하기 힘든 상태다. 하지만 일본 서점에서 이들 책이 팔리는 기세는 실로 놀랄만하다는 게 매스컴 관계자들의 진단이다. 도쿄 이케부쿠로에 자리잡은 아사히 서점의 경우 이들 서적을 종류마다 10권 이상씩 쌓아 놓고 있지만 선채로 읽는 샐러리맨과 학생들로 진열대 앞은 항상 만원이다. 또 예전에는 이같은 류의 책들을 외면했던 직장여성과 주부들이 앞다퉈 책을 사러 오는 것도 새로 나타난 풍경이라고 서점 관계자들은 귀띔하고 있다.서점 관계자들은 “수년전만 해도 내용이 어둡고 읽기 지루해 외면당했던 책들이 베스트 셀러로 부상한 것은 주목할만한 사실”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 “이제는 출판사들도 저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애쓴다”고 달라진 분위기를 전하고 있다.한편 책을 쓴 저자들은 거의 모두 자신의 책 속에서 일본경제의 파국을 피할 수 있는 처방을 제시하려 애쓴 흔적이 엿보이고 있다. 단순히 책을 많이 팔기 위해 흥미 본위로 썼다기보다 일본 경제의 내일을 걱정하며 나름대로의 의견과 주장을 전달하기 위해 엮었다는 것이다.기무라씨는 새로운 재정구조개혁법과 근본적인 국채탕감법의 제정이 시급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이 두가지 법을 만들지 못한다면 일본이 선택할 길은 단 하나, 국제통화기금의 지원을 받는 것 밖에 없다”고 단언할 정도다. “일본이 파국을 피하기 위해서는 발본적 개혁을 서둘러야 하지만 지금의 일본 지도자들에게는 그러한 것을 전혀 기대할 수 없다. 일단 파탄이 현실화되고 나면 새로운 것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것을 외부의 힘에 의존할 것인가, 자력으로 해결할 것인가 일본은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기무라씨가 경제 위기의 벼랑에서 비틀거리는 일본에 던진 메시지는 섬뜩하기까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