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이 살랑살랑 불기 시작할 무렵 섬진강 주변은 가는 곳마다 꽃밭이다. 광양의 다압면 도사리에는 매화 향기가 가득하고, 구례의 산동면 상위마을에는 노란 산수유 꽃이 활짝 피어난다.우선 매화마을부터 들러보자. 섬진강 주변에는 대체로 매화나무가 많이 자라지만 전남 광양시 다압면 도사리 일대의 청매실농원만큼 매화꽃이 ‘선경(仙境)’을 이루는 곳은 없다. ‘매화박사’로 통하는 홍쌍리씨가 본격적으로 매화밭을 조성해 오늘처럼 매화명소로 알려진 데는 고인이 된 홍씨의 시아버지 율산 김오천 선생의 선견지명과 땀방울 덕분이다.김오천 선생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밤나무와 매화나무를 각각 식량대용 및 약용으로 들여왔다. 한 뼘의 땅도 아쉽던 시절 넓은 야산에 밭작물 대신 나무를 심는 그를 보고 주변 사람들은 ‘오천’이 아니라 ‘벌천’이라는 비난을 퍼붇기도 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이 나무를 가꿔 오늘의 청매실농원 기틀을 마련했다.이어 며느리 홍쌍리씨는 경제성이 낮은 밤나무 대신 청매실을 심기 시작, 굽이굽이 산자락이 온통 매화꽃으로 뒤덮이게 했다. 게다가 홍씨는 매실 에끼스에 매실차, 매실 장아찌, 매실환, 매실정과 등 매실로 만든 온갖 건강식품을 선보여 정부지정 명인 14호로 지정될 만큼 매실전문가가 됐다. 이곳 매화는 대개 3월 중순부터 3월말까지가 절정. 올해의 경우 윤달이 끼여 있어 그 어느 때보다 매화꽃 구경하기가 좋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매화가 지천으로 핀 농원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섬진강의 푸른 물줄기와 파란 보리밭, 농원을 가득 채우고 있는 수천개의 재래식 옹기도 볼거리다. 청매실농원(061-772-4066).이번에는 구례 산수유마을을 들러볼 차례이다. 지리산의 관문격인 남원에서 구례로 가는 길 중간쯤, 지리산온천지대를 지난 곳 산동면에 상위마을이 있다. 지리산 북쪽 자락, 만복대와 노고단으로 이어지는 계곡 입구에 옹기종기 집들이 들어있는 상위마을은 유난히 산수유가 많아 아지랑이가 아른거리는 봄날이면 꼭 한번쯤 다녀와야 할 곳이다.상위마을 주변에는 1백년도 넘는 산수유나무가 2만여 그루나 되고 집집마다 돌담을 끼고 가지를 늘어뜨린 산수유가 일제히 꽃을 피워 온 마을을 노랗게 수놓는다. 손톱보다 작은 꽃잎을 한 장씩 떼어내 보면 그저 청초하다는 느낌을 줄 뿐이지만 수천 그루의 산수유나무가 일제히 노란 꽃송이를 터뜨리면 노란색이 주조를 이룬 파스텔화로 변하니 장관이 아니고 무엇이랴.●여행메모: 서울에서 광양까지 하루 12회 고속버스가 운행된다. 5시간 소요. 광주에서는 1일 23회 운행. 승용차로는 호남고속도로 전주IC->남원->구례->광양 코스를 달린다. 남해안고속도로를 이용할 경우 광양IC, 동광양IC, 옥곡IC, 진월IC를 빠져나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