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장급 팀장·프로젝트 리더 등 위상 급상승 … ‘나만의 전문분야’ 개발, 승진기회 노려

포스데이타는 '직급파괴'를 통해 과장에게 주도적 권한을 부여했다. 포스데이타 스텐딩 회의.‘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말이 있다. 리더가 되기 위해선 해당 업무를 꿰뚫는 전문성을 반드시 갖춰야 한다는 뜻이다. 성공한 벤처기업 CEO들이 대부분 엔지니어 출신인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경영전략과 함께 사업의 핵심인 기술개발을 위한 전문성을 겸비한 결과다.대기업에서도 일반관리나 마케팅 분야가 아닌 기술 개발에 주력해야 하는 부서라면 벤처기업에서와 똑같은 리더의 자질론이 적용될 수 있다. 이 때문에 대기업 과장이 조직내에서 실질적 권한을 갖고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곳도 마찬가지로 연구 개발(R&D) 분야다. 그만큼 근무연수나 직급보다는 개인의 전문성과 창의성이 중시되기 때문이다.지난해 초 ‘직급 파괴’를 선언한 포스데이타는 과장에게 주도적 권한을 부여하는 데 있어 가장 앞서가는 대기업중 하나다. 포스데이타에선 능력이 인정되기만 하면 과장은 물론 심지어 대리급에서도 팀장이 나오는 사례가 있다. 또 과장급 팀장이 차장이나 부장 또는 이사급 임원을 팀원으로 두는 경우까지 있다.물론 이 가운데서 가장 큰 약진을 한 직급은 역시 과장들이다. 전체 76개 팀중 9개 팀에 이전 서열로 보면 과장급인 팀장들이 포진해 있고 이 팀들은 대부분 핵심 연구개발 분야에 속한다. 결국 과장들이 포스데이타의 연구개발 리더로 회사를 이끌어가고 있는 셈이다.실력·전문성 겸비 … 중용하는 기업 증가정병인 포스데이타 인사팀장은 “이전까진 부장이나 이사가 팀을 맡아왔지만 승진제도 자체가 없어져 ‘실력’과 ‘전문성’을 겸비한 과장들이 대거 팀장으로 발탁됐고 기대 이상의 좋은 성과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팀조직 운용에도 30대의 젊은 과장이 팀장일 경우 여러 가지 면에서 이점이 있다. 무엇보다 팀장과 팀원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해질 수 있다.포스데이타 무선인터넷팀 박진호씨(직급파괴로 팀원의 호칭은 모두 ‘OO씨’임)는 “예전의 부장이나 차장보다 비교적 나이 차이가 덜 나는 과장급 팀장과 더 잘 통하는 게 사실”이라며 “위계질서보다 참신한 아이디어가 현실적으로 요구되는 개발팀에선 이런 점이 매우 유리하다”고 설명했다.포스데이타처럼 ‘직급파괴’라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더라도 핵심 연구개발 분야에 실력있는 과장을 팀장으로 앉히는 움직임은 다른 그룹사 계열 대기업에서도 서서히 가시화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현대자동차 울산연구소 디자인1팀(내장 스타일링 파트)을 이끄는 이강(35) 팀장 역시 과장 맨파워를 자랑하는 대표적 케이스다. 이팀장은 지난해 하반기에 발표돼 호평받은 신차 ‘아반떼 XD’를 지난 99년 디자인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공로로 2년후 최연차(15개월) 과장급으로 팀장 자리에 올랐다.사실 이팀장의 경우는 회사측의 ‘과장 키우기’ 프로젝트의 수혜를 본 것. 입사 4년만에 회사의 지원으로 영국왕립미술대학원(RCA) 자동차디자인과에서 수학한 것이나 팀장으로 발탁되기 전 2년간 본사 마케팅 파트에서 실무를 쌓는 기회를 얻은 것 모두 회사측의 인력관리 시스템에 따라 이뤄진 것이다.“시시각각 바뀌는 고객의 니즈를 따라잡기 위해선 경험과 창의력을 두루 갖춘 젊은 과장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회사의 의지가 반영된 것 같다”고 이팀장은 설명했다. 실제로 현대자동차 디자인연구소에는 이팀장말고도 과장급 팀장이 여러명 더 있다.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의 무선단말기 개발팀내 연구그룹인 ‘GSM/GPRS 베이스밴드 프로세서’ 프로젝트팀을 총괄하는 황규철(38) 과장(4년차)도 회사로부터 연구개발성과를 인정받아 책임자로 발탁된 사례.KAIST 박사 출신인 황과장은 컴팩과 공동진행한 ‘마이크로 프로세서’ 프로젝트에서 이른바 ‘키 엔지니어’로 활약한 전력이 있다. “입사 이후 계속 반도체 설계를 전담해온 덕분에 적어도 현재 맡고 있는 모뎀칩 분야만큼은 다른 팀 누구라도 터치할 수 없는 영역이 됐습니다.”옆팀의 책임자가 상사라도 협력이 있을 뿐 고유 개발분야에 대한 직급간 차별은 있을 수 없다는 게 황과장의 얘기다.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 총괄 인사팀 이승백 차장은 “ 첨단기술산업일수록 경영환경의 변화가 심하고 기술발전 속도가 빨라 젊은 인재들의 역할이 막중해 인사정책 역시 이들을 중시하는 추세로 가고 있다”며 젊고 실력있는 과장들을 핵심프로젝트의 리더로 전진배치하는 구상이 있음을 내비쳤다.관례 깨고 과감한 발탁인사 필요물론 아직까지도 여전히 국내 대기업에선 이사나 부장급이 팀장을 맡는 게 내부 규정으로 명시화돼 있다.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환경에서 신기술, 신소재 개발이 절실한 디지털 경쟁체제에 순발력 있게 적응하려면 이례적이긴 하지만 연구개발 부서에서만이라도 과장급 책임자를 양성하는 것은 지나칠 수 없는 대안이 되고 있다.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선 기존의 관례를 깨고서라도 발탁인사를 하겠다는 의지다. 그리고 이 대상엔 경력에서도 빠지지 않고 전문성까지 갖춘 과장급 엔지니어나 연구원이 안성맞춤이다.회사측의 이런 움직임에 따라 대기업 과장들 자신도 ‘나만의 전문분야’를 개발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LG화학 상품기획팀 이정국 과장의 경우가 그렇다. 이과장은 마케팅 부서에서 ‘상품개발’ 쪽을 함께 연구하면서 그 성과를 인정받아 상품기획팀으로 들어와 팀의 핵심적 역할을 하는 과장으로 떠오르고 있다.노옥경·이영곤 포스데이타 팀장“권한 갖고 능력 발휘, CEO급 팀장이죠”포스데이타 무선인터넷팀 노옥경(38, 사진 왼쪽) 팀장은 지난해만 해도 과장급 팀원이었다. 지난해초 회사 차원의 ‘직급파괴’에 따른 조직개편과 인사에 따라 ‘과장’에서 ‘팀장’으로 등극한 것. 이전엔 과장이 팀장이 되는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 뿐더러 여성이라면 거의 불가능했던 게 사실이다.물론 직급파괴로 모든 과장이 팀장으로 승진한 건 아니다. 노팀장이 회사에서 주목한 엔지니어였다는 점이 주효했다. 지난해 워드프로세서 및 그룹웨어 개발에서 보여준 성과를 비롯해 휴대폰, PDA 등의 무선단말기용 지리정보시스템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노팀장이 보여준 탁월한 능력이 팀을 충분히 이끌 것이란 회사측 판단을 끌어낸 것이다. 과장급 팀장이 가진 장점에 대해 노팀장은 “동료같은 팀원들과 격의 없이 터놓고 의견을 나눌 수 있다”며 “창의성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개발팀에서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경쟁력”이라고 강조했다.포스데이타 CALS/EC 추진팀장인 이영곤(33, 사진 오른쪽) 박사 역시 입사때부터 지난해말까지 쭉 과장이었다. 당시 이사급 팀장 아래서 실질적인 팀장 역할을 해온 것이 직급파괴로 명실상부한 팀장으로 올라오게 된 계기가 됐다. “직급이 없어진 다음 특히 개발분야에선 누가 더 이쪽 일에 정통해 있느냐에 따라 팀의 리더가 결정됩니다.” 이팀장은 지난 1월 팀장으로 직책을 맡는 것과 동시에 회사로부터 기대 이상의 지원을 받게 됐다. “팀원을 조직하고 배치하는 인사권을 비롯해 연구개발비 등 팀운영에 필요한 예산편성요구권 등 여러 가지 권한을 갖게 돼 능력을 한껏 발휘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한 셈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