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들 “e비즈 실패 계열사 전가 부당” … 외국계 증권사, 투자등급 하향조정
국내외 증시관계자들은 삼성의 지배구조를 비판하고 있다. 삼성 임원 연수교육에 참가한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보.(가운데)이재용 삼성전자 상무보와 삼성계열기업간의 이른바 ‘스위트하트 딜(Sweet-heart Deal)’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대단히 비판적이다. 특히 그간 안정적인 주가흐름을 보여오던 삼성SDI와 제일기획의 주가는 이재용 상무보의 인터넷벤처캐피털인 e삼성지분 인수가 공시되자마자 급락행진을 이어갔다.디스플레이 생산업체인 삼성SDI는 영업실적 호전에 올해 환율상승에 따른 수혜까지 기대되던 대표적 가치주의 하나였다. 지난해 7천억원 규모의 이익이 올해 1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돼 왔다. 이 때문에 지난해 종합주가지수(KOSPI)의 지속적인 하락행진 속에서도 30% 이상 시장초과 수익을 내왔다.삼성SDI 시가총액 나흘새 6천여억원 줄어e삼성인터내셔널 지분 11.25%를 이재용상무보로부터 인수한다는 발표가 나오기 전날인 3월26일 삼성SDI 종가는 6만7천1백원. 발표 다음날부터 외국인 투자자들의 매도가 이어지면서 30일에는 5만4천원으로 주당 1만3천원, 20% 가까이 하락했다. 30일까지 외국인 투자자들의 순매도 주식수는 67만주 가까이 된다.이 결과 이 회사의 시가총액은 4일만에 약 6천억원 가까이 줄었다. 물론 그 후의 주가상승으로 4월4일 기준으로 시가총액 하락규모는 4천억원대로 줄었지만 역시 엄청난 하락임에는 틀림없다.제일기획도 마찬가지다. 주당 10만원을 넘던 제일기획 주가는 e삼성 주식 75%를 이재용 상무보와 이학수 삼성구조조정 본부장, 김인주 구조조정본부 재무팀장 등으로부터 2백8억원에 매수한다는 발표가 난 다음날 하한가에 가까운 주당 1만3천8백원이 급락했다. 발표후 5일간의 하락분은 거의 20%에 달한다. 참여연대가 발표한 시가총액 하락분은 7백60억원(3월말 기준)이다.제일기획은 99년에도 삼성생명주식을 주당 70만원에 3백억원어치 매입했다가 순자산가치가 취득원가의 5%도 못되는 장부상 가치만 남은 적이 있다. 삼성자동차 투자실패 때도 고통분담을 했었다.e삼성 관련 주식을 인수한 계열사들의 주식을 보유한 삼성전자도 이로 인해 8백93억원의 평가손실을 입었다고 참여연대는 밝히고 있다. 이번 딜로 인해 삼성계열사들의 시가총액이 줄어든 것만해도 나흘간 7천억원에 달했다는 것이 참여연대의 추산이다.물론 오프라인 보안업체인 에스원은 기존사업과 연관성 높은 닷컴보안업체(시큐아이닷컴 ) 지분의 45.5%를 인수함에 따라 상대적으로 피해를 보지 않았다.가장 타격이 컸던 삼성SDI가 이번 스위트하트 딜을 위해 지불한 금액은 주당 4천54원에 90만주이므로 36억원 정도. 36억원어치의 지분인수가 눈깜짝할 사이에 6천억원어치의 기업가치감소로 이어진 셈이다.지난해 이 회사는 7천억원의 이익을 냈다. 설사 인수한 지분이 몽땅 휴지조각이 된다 해도 손실은 36억원 정도인데 왜 이처럼 예민한 반응을 보였을까.이에 대해 시장참여자들과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투자실패를 계열사에 떠넘길 수 있는 삼성의 기업지배 구조문제에 대한 실망 때문”이라고 말한다. 과거 삼성생명 주식을 주당 70만원에 제일기획에 넘겼듯이 삼성자동차의 주식을 계열사에 안겨 손실을 안겼던 사례가 아직도 반복되고 있음을 확인시켜 줬다는 것이다.메릴린치증권은 4월2일자로 삼성SDI의 투자등급을 ‘매수(Buy)’에서 ‘매집(Accumulate)’으로 한단계 하향했다. 이 보고서를 작성한 전자부품산업 담당 김동원 애널리스트는 “삼성전자나 삼성전기에 비해 주가가 많이 오르기도 했지만 e삼성인터내셔널의 지분인수로 기업지배 구조문제가 재부상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김애널리스트는 “이번 거래가 금액규모가 작음에도 경영진에 대한 신뢰가 흔들렸기 때문에 지난해 LG전자의 사례처럼 불신이 상당히 오래갈 것”이라며 투자등급 하향에 대한 이유를 밝혔다.W.I.카 증권 “주가영향 오래 지속될 것”W.I.카 증권은 ‘투자자들이 다시 용서할 것인가’라는 도발적 제목으로 보고서를 내고 삼성계열사들이 e삼성 지분을 매입한 것은 과거에 삼성생명 주식을 주당 70만원에 사들였던 것처럼 정당화되기 어려울 것으로 평가했다.이 증권사의 와히드 버트 리서치 담당이사는 “지금은 한국의 투자자들도 투명하지 않은 기업지배구조 문제를 잘 알고 있으며 주가에 미치는 영향은 과거보다 훨씬 크고 오래 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국내 증권사도 이번 스위트하트 딜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LG투자증권은 “이재용씨의 e삼성지분을 인수한 것이 지금까지 진행된 비전략적 사업부문 정리와는 방향이 다른데다 세계 모니터용 브라운관 재고증가를 감안해 1개월 투자의견을 매수에서 중립으로 하향조정한다”고 밝혔다.한국투신증권도 “36억원은 올 예상순이익의 0.7%에 불과하다”면서도 “기업지배구조로 인한 신뢰성 저하로 투자의견과 적정주가의 하향조정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증권사이트, 투자자 비판 빗발쳐신한증권의 김학균 연구원은 e삼성의 주당 수정 순자산가치를 6천3백96원으로 추정하고 “제일기획이 이보다 26% 이상 비싸게 매입했다”고 지적했다.김연구원은 “제일기획의 회계적 손익악화 가능성보다 한국적 관행에 대한 외국인의 부정적 시각이 당분간 주가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했다.더욱 비판적인 의견은 삼성주식을 사서 손실을 보고 있는 투자자들로부터 나온다. 외국계 증권사 관계자들은 “소송하겠다고 국제전화로 항의하는 외국인 투자자도 있었다”고 전한다.국내 투자자들의 분노는 더 하다. D증권 목동지점 직원은 “회사 리서치팀 자료를 보고 보수적인 성향의 단골고객들에게 삼성SDI를 권했다가 항의에 시달려 몸살이 날 지경”이라고 하소연한다. 그래도 이익을 내는 회사라며 삼성주식을 선호해왔다는 투자자들은 팍스넷, 씽크풀 등 각 증권사이트 게시판에 삼성을 비난하면서 재산손실에 대한 울분을 삭히고 있다.에드워드 켐벨해리스 JP모건증권 서울지점장은 “한국 재벌기업에 투자하는 외국인들은 수익성과 함께 지배구조의 문제를 감안, 할인한 주가를 적정가로 판단한다”고 말한다.지배구조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한국기업은 저평가를 불평할 자격이 없다는 뜻일 것이다.©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