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뛰어난 목공예가나 음악가, 요리사 등에게 사람들은 흔히 ‘명인’ 또는 ‘달인’이라는 영광스런 호칭을 부여하곤 한다. 영업에도 명인이라는 개념이 있을까. 30년 넘게 한 우물만 팠고 이제 ‘업계에서는 더 이상 선배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가장 연배가 높은 60대가 됐음에도 여전히 현역 못지 않은 왕성한 활동력과 업적을 과시하고 있다면 이같은 이름이 부끄럽지 않을 것 같다.올해 삼성화재 연도상에서 판매왕으로 뽑힌 정선자씨(60)는 글자 그대로 은근과 끈기의 주인공이다. 해마다 보험사에서 가장 높은 판매 실적을 올린 모집원에게 주는 연도상에서 그는 일곱 번이나 근처에 접근했지만 ‘진짜 1등’자리에 오른건 이번이 처음.30년 영업 ‘최고참’ … 7전8기 ‘연도상’ 영예지난해 소득이 4억원에 달하고 보유 계약 6백여건, 2000년에만 올린 매출이 34억3천4백만원에 이르는 화려한 기록을 자랑하지만 정씨는 평범한 아주머니처럼 보였다.‘영업의 비법’을 묻는 질문에도 ‘그저 운이 좋았다’고만 한다. 그렇지만 보험 계약 한 건을 유치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객을 방문, 10년만에 결국 고객이 가입하더라는 일화나 쉽게 계약이 성사되지 않은 날이면 여지없이 그 일이 꿈에 나타난다는 얘기들은 운 이상의 엄청난 노력이 뒤따랐음을 짐작하게 한다.정씨는 이젠 연휴가 길어지면 괴로워하는 일중독자이지만 보험영업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남들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주부이자 하숙집 아줌마였다. 여성의 사회생활에 대한 인식도 낮고 더구나 보험상품이 무엇인지도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71년 세 아이의 엄마 정씨는 돈도 벌고 직장도 다녀보고 싶은 마음에 동방생명(현 삼성생명)에 설계사로 취직했다. 햇병아리 시절의 한 달 수입은 겨우 5천원.“버는 게 별로 없으니 비싼 가죽 구두는 못 사죠. 모조가죽으로 된 신발을 신고 다녔는데 하도 많이 걸으니까 이걸 수도 없이 수선했어요. 한번은 산동네 길을 올라가는데 신발이 더 못 견디고 반으로 뚝 잘리더라고요. 맨발로 누가 볼까 후다닥 내려오는데 어찌나 창피하던지.”‘한달에 30만원을 버는 선배 설계사가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너무 신기하기만 하던 그녀는 초기에 고전을 면치 못하다 ‘고객이 정말 필요해서 가입하는 것은 손해보험’이라는 생각이 들어 삼성화재로 적을 옮겼다.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매출 성장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적이 없다. 자신이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해 있을 동안 화재를 당한 고객이 보험금을 타가지 않고 있었다는 걸 퇴원 후 알고는 이를 받게 해 준 일을 계기로 영업에 가속이 붙기 시작했던 것이다. 계약 유치도 중요하지만 성실한 사후 처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절감케 한 사건이었다. 지금도 화재가 발생하면 본사 직원 및 손해사정인과 함께 현장에 나가 보험금 지급이 완료될 때까지 계약자의 모든 일을 하나 하나 처리해 준다.하루 아침에 극적인 성과를 올렸다기보다 장기간 꾸준한 상승세를 쉬지 않고 이어온 것이 정씨가 다른 보험 판매인들과 다른 점이다. 주요 고객은 중소기업, 주력 판매상품은 3∼5년짜리 장기화재 보험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냥 열심히’ 하는 것 말고 ‘비장의 무기’가 있을 것 아니냐는 채근에 정씨는 “보험료를 자동 이체 안하게 해 굳이 매번 가서 만나는 것, 방문할 때는 꼭 꽃을 들고 가서 꽂아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라고 귀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