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시장 경기악화 등 부정적 입장 마련한 듯 … 대선 앞둔 정부 입장 고려 ‘시간끌기’ 해석도

GM의 행보가 수상하다. GM이 대우자동차 인수여부의 입장발표는 질질 끌면서 국내 자동차부품업에는 지속적인 관심과 아울러 신속하게 행동으로 옮기기 때문이다. 낙관론자들은 ‘GM의 대우차 인수 선언이 멀지 않았다’며 국내 자동차 부품업에 대한 GM의 관심을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과연 GM이 노리는 것은 무엇일까.지난해 5월 한국을 찾은 GM의 잭 스미스 회장(사진)은 대우차를 인수하면 중소형 저가 모델의 월드카를 공동 개발할 방침이라고 의욕적으로 밝혔다. 특히 스미스 회장은 “대우의 탁월한 R&D 능력에 GM의 기술 지원이 합쳐진다면 대우의 생산능력은 엄청나게 커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스미스 회장은 “대우차를 인수한 뒤 생산성과 시장성이 악화되더라도 한국에서 철수할 계획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스미스 회장은 지난해 6월 최고 전문경영인 자리를 와고너 사장에게 넘겨주었다. 하지만 스미스 회장은 지난해 10월 피아트와 공동으로 대우자동차의 국내 승용차부문 자산인수 검토발표로 자신의 의지를 더욱 구체화시켰다. 스미스 회장은 올초 국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우자동차가 회생가능성이 없는 기업이었다면 관심도 안가졌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미스 회장은 지난 3월 방미중인 김대중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도 대우차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비추기도 했다. 그러나 GM은 같은달 열린 이사회에서 대우차에 대한 입장을 4월 초로 연기한데 이어 또다시 5월로 미뤘고 이젠 자연스레 6월로 지연되고 있다. 특히 GM의 루돌프 슐라이스 아시아태평양지역본부 사장은 4월 일본에서 개최한 태평양경제협의회에 참석, 기자들에게 “대우차에 대한 실사를 계속 진행중이고 다양한 변수로 인해 올 상반기중 입장표명이 가능한지 말하기 어려우며 올해 말까지도 같은 상황’이라고 전해 GM 내부가 대우차를 놓고 상당한 진통을 겪고 있음을 은근히 드러냈다. 이는 와고너 사장이 “대우자동차가 현재 많은 변화를 겪고 있어 평가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해 빠른 시일내에 대우자동차 인수에 대한 제안을 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데서 역력히 나타나고 있다.LG·만도와 부품업 공조 강화반면 GM은 지난해부터 국내 자동차부품회사들과의 공조체제를 신속하게 진행해가고 있다.GM은 지난 4월 자동차 종합부품 전문회사인 만도로부터 2억6천5백만달러 상당의 조향장치(Steering System) 부품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이들 조향장치는 GM이 개발중인 3천3백㏄급 2개 신형 승용차에 들어간다. GM은 대우차 인수여부를 구체화하기 시작한 지난해 말부터 만도로부터 자동차부품 공급계약을 맺고 여러 가지 안을 마련해왔다. GM은 지난해 10월 국내 자동차 부품회사인 평화산업으로부터 부품 공급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GM은 또 국내 4대그룹중 하나인 LG(상사 및 정유)와 손잡고 국내 자동차 부품 유통시장에 진출키로 했다. 양측은 경정비, 할부금융, 자동차보험, 중고차 분야에서의 합작사업도 추진하고 있어 국내 자동차 부품시장은 물론 완성차 시장에 은근히 압박을 가하고 있다.GM의 이같은 움직임과 관련, 정부 및 채권단, 재계내 낙관론자들은 “GM이 대우자동차 인수를 내부적으로 정하고 이를 강력하고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일 가능성이 크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GM이 피아트와 공동으로 대우차 인수여부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고 LG 등 국내 굴지의 기업들과의 제휴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며 “최근엔 정부에 세제지원 요청까지 해놓은 상태”라고 대우차 처리에 대해 희망적으로 전망했다.업계, 본격적인 차산업 안방공략 우려과연 GM은 대우차에 대해 낙관론자들이 간절히 바라는 ‘밝은 입장’을 내놓을까.미국 굴지의 자동차회사에서 20여년 가까이 근무했던 A씨는 최근 GM의 행보와 관련, 흥미로운 분석을 내놓았다. 결론부터 말해 GM은 끝내 대우자동차를 인수하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그 근거로 우선 GM이 노조문제에 휩싸였거나 경쟁사가 포기한 회사를 인수한 사례가 없다는 점을 들고 있다. GM은 대우자동차 우선 협상자로 뽑혔던 포드와 달리 노조문제에 아주 민감하다는 것. 또 경쟁사가 포기한 회사를 GM이 인수하려 할 경우 자존심문제이기도 하거니와 주주들이 이를 허락하지 않을 것이란 설명이다. 대우자동차에 대한 인식에 있어 GM의 주주나 포드의 주주가 다를 게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우자동차의 생산라인이 GM의 기존라인과 중복되는데다 인수금액에 대한 GM과 채권단의 현격한 차이도 이유로 들고있다.GM의 경영상태도 문제다. GM은 1분기중 수익이 87%나 줄어드는 등 상태가 나빠지자 인원감축을 실시하고 있고 적자사업은 아예 폐쇄하는 등 일련의 구조조정 작업을 벌이고 있다. 그럼에도 GM이 대우자동차에 대한 입장발표를 뜸들이는 것은 단지 GM의 이기심 때문만이 아니라 내년 대통령선거를 앞둔 우리측 정부의 입장을 고려한 때문일 것이란 분석이다.국내 자동차회사에서 최고경영자까지 지낸 B씨는 “GM과 포드가 국내 3대 자동차회사였던 대우자동차를 샅샅이 실사해 국내 자동차회사들의 구조적인 문제를 90% 이상 파악한 것으로 안다”며 “이젠 GM이 대우자동차를 헐값에 가져가는 것보다 국내 자동차산업을 속속들이 아는 미국 자동차회사들의 안방공략을 어떻게 막아내야 할지가 더 걱정이다”고 조심스레 지적했다.대부분의 국내 자동차 업계 관계자들은 A 및 B씨의 분석에 대해 설득력이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즉 GM의 국내 자동차 부품시장 공략을 대우자동차 인수의 서막이 아닌 국내 자동차산업에 대한 대대적인 공세 전초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얘기다.대우차 처리에 밝은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GM이 르노의 삼성자동차 인수조건보다 더 나은 조건을 정부 및 채권단에 요구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실제 자동차업계에선 GM이 대우차의 인원을 이미 감축된 것보다 30%이상 더 줄일 것을 요구하고 있고 인수금액도 3천5백여억원 이하로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정부 및 채권단이 이같은 GM의 요구를 받아들일 경우 GM의 긍정적인 입장발표를 이끌어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 경우 ‘대우차를 헐값에 넘기고 그에 따른 부실을 국민에게 떠넘긴다’는 비난여론이 쏟아질 것이고 이것이 자칫 정치적인 문제로 확대돼 내년 대통령선거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데 있다. 따라서 자동차업계 관계자들은 ‘GM은 우리측 정부가 이같은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 부정적인 입장을 내려놓은 상태에서 우리측 정부의 입장을 고려해 입장발표를 유보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있다.어쨌든 대우차는 6월15일까지 법원에 정리계획안을 제출해야 한다. 따라서 GM이 그전에 어떤 입장을 표명할지 아니면 좀 더 시간을 끌지 궁금하다.GM의 대우차 관련 행보2000. 10. 9 피아트와 대우차 승용차부문 자산 인수구상 공식발표2. 20 북미지역 4%(1만6천명) 인원감축 발표2001. 1. 4 잭 스미스 회장 “대우차 회생 가능성 없었으면 관심 안 가졌을 것”1. 12 신규사업 담당 사장 “대우와 같은 엔진공장 이미 4개 갖고 있다”3. 7 이사회, 대우차 인수여부 발표 4월초로 연기3. 9 잭 스미스 회장, 방미중인 김대중 대통령과 면담4. 9 아시아태평양지역본부사장 “아직도 실사중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변수로 상반기 또는 올해중 입장표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4. 11 아시아본부 홍보담당이사 “대우차 관심 갖고 있으며 조기에 결론”4. 12 피아트, GM과 협의중 최종단계4. 19 1분기 수익 87% 하락 발표4. 22 LG와 자동차부품유통 사업키로4. 23 만도에서 2억6천만달러어치 자동차부품 수입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