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na be in.”(당신 회사에 투자하고 싶다.)노베라 옵틱스를 창업한 한국과학기술원(KAIST) 김병윤(48, 휴직중)교수가 지난해 1월5일 오후 샌호제이에 있는 사무실로 막 들어서는 순간 걸려온 전화에서 들려온 말이었다.이 전화는 실리콘밸리의 유력 벤처캐피털(VC)인 엔터프라이즈파트너스의 빌 스텐슈루드 파트너한테서 걸려온 것이었다. 김교수는 이 회사로부터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그날 새벽 샌호제이에서 산타바버라로 비행기를 타고 가 아침을 먹으면서 그에게 사업계획을 설명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스텐슈루드씨는 이날 오전 산타바버라에서 열린 한 기업의 이사회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김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투자하겠다고 회신한 것이다.이 한마디를 듣는 순간부터 노베라의 투자 유치는 일사천리로 진행돼 약 한달후 노베라는 1천1백만달러의 1차 펀딩을 받았다. 투자자는 실리콘밸리 5위권의 VC인 레드포인트벤처스와 15위권인 엔터프라이즈.지난 2월에는 8천3백만달러의 2차 펀딩에 성공해 화제를 불러모았다. 실리콘밸리의 투자 분위기가 냉각된 가운데 성사된 것인데다 투자 유치 규모가 크고 회사가치도 비슷한 업종의 벤처기업에 비해 2배 이상 높은 수준으로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옥탄 에섹스 아메린드 등 대형 투자회사들은 물론 인텔 애질런트 같은 유력 정보기술(IT) 업체들도 참가했다.노베라의 투자 유치 성공은 한국 기술벤처가 미국에 진출할 수 있는 전형적인 모델을 보여줬다고 평가받고 있다. 한국에서 개발된 기술을 바탕으로 시제품을 만든 단계에서 미국에 법인을 만들고 미국에서 벤처 투자를 받고 마케팅도 미국에서 벌이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스라엘 벤처기업이 1백여개 이상 미국 증시에 상장된 비결이기도 하다.노베라가 미국 VC들로부터 대규모 자금을 유치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물론 우수한 기술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이 회사의 기술은 광통신에 사용되는 빛의 품질을 향상시켜 전송거리와 정보량을 늘리는 것. 초음파를 활용하는 것과 품질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김교수는 이 기술을 이용해 만든 광필터가 기존 제품에 비해 신호 전송 거리를 6배 가량 늘릴 수 있다고 소개했다.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이 기술을 이용한 시제품을 만들어 상용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이다. 더구나 시제품을 사용해본 세계적 통신장비회사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아 기술의 우수성을 객관적으로 입증한 것이다.철저히 미국화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미국에 회사를 만들고 이 회사가 모든 비즈니스의 중심이 됐다. 경영진도 미국인 일색으로 꾸며 임원 가운데 한국인은 회장과 최고기술담당임원(CTO)를 겸하고 있는 김교수 뿐이다. 이 회사는 원천기술을 개발한 KAIST로부터 특허권 자체를 사들여 기술도 완전히 미국회사 소유로 만들었다. 행운도 따랐다. 첫째 행운은 사업 분야를 잘 잡았다는 것이다. 요즘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각광받는 광통신분야의 사업을 한다는 점이다. 요즘 실리콘밸리에서는 무선통신이나 광통신이 아니면 VC들과 얘기조차 하기 힘든 분위기다.둘째는 게이트키퍼와 선이 닿았다는 점이다. 실리콘밸리의 VC 사회에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남태희 변호사(스톰벤처스 파트너)를 만난 것이다. 남변호사는 김교수를 레드포인트와 엔터프라이즈의 파트너에게 소개시켜 줘 사업계획을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요즘 실리콘밸리 VC들이 한국에서 왔다면 일단 만나주기는 합니다.” 김교수는 노베라의 투자 유치 이후 이곳 VC들 사이에 한국 기술 벤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며 실제 투자를 받을 가능성이 높은 기업이 여럿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