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기관에서의 오랜 경험을 통해 산업 전체를 거시적으로 조망하는 데 익숙해졌기 때문일까. 김상훈 행장은 국내 금융산업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나아갈 길이 무엇인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한국금융연구원 손상호 연구위원은 “공공기관이 아닌 수익내는 기업으로 탈바꿈하는 것, 이를 위해 기업부실을 최소화하고 자본금을 늘려 생존 기반을 마련한 뒤 여신심사와 은행 경영권의 독립을 확보하는 것이 좋은 은행이 되기 위해 해야 할 과제”라고 지적한다. 김행장이 취임이후 보여온 행보나 그간 밝혀 온 은행경영관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손연구원의 이같은 지적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다.‘일류’와 ‘시장’은 김행장을 이해하는 두가지 키워드다. “은행도 하나의 기업이다. 최고의 기업 가치를 가져야 우량기업으로 대접받을 수 있다. 장부상으로 최대의 자기자본가치를 시현해야 하는 것은 물론 은행 내부의 잠재적인 자원까지 최고 수준이 됐을 때 비로소 종합적인 기업 가치가 최고라고 할 수 있다”는 그의 말은 시장에서의 평가가 가장 중요하다는 평소 생각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감독기관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인물치고는 다소 의외의 마인드를 갖고 있다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은행장이 되기 이전 그의 경력을 보면 이런 마인드가 십분 이해되고 남는다. 금감원 재직시 산업적 관점에서 금융경쟁력을 고민했고 이런 고민을 은행장으로 변신한 뒤 과감히 실천에 옮기고 있기 때문이다.평소 “금융산업에 공공성이 강조되다 보니 문제가 많다. 산업 전체로는 공공성을 띠지만 개별은행은 상업성을 가져야 한다. 이익을 창출하지 못하는 은행은 은행이 아니다. 금융인 역시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해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 은행의 운명을 책임지는 행장으로 변신한 뒤 그가 어떤 각오로 경영에 임하고 있는지를 엿보게 하는 발언이다.김행장은 틈만 나면 ‘일류’를 자주 강조한다. 국민은행의 올해 히트 상품인 슈퍼 정기예금에 대한 김행장의 애착과 자랑은 대단하다. “다른 은행은 전산시스템이 뒷받침하지 못해 이런 상품을 만들고 싶어도 못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남들이 따라오지 못하는 것에 대해 강조하는 것은 주택은행과 합병 후 국내 최고의 은행 자리를 굳히고 이를 넘어 세계 시장에서도 경쟁력 있는 은행이 되겠다는 욕심 때문이다.한국은행과 은행감독원, 그리고 금융감독원을 거쳐 시중은행장이 된 김행장의 시작은 처음부터 곡절 많은 것이었다. ‘관치’논란에 휩싸이면서 취임일부터 노조 반대에 부딪치는 등 적지 않은 난관을 겪었고 지금은 합병이라는 극도로 예민하고도 어려운 과제를 맡아 ‘국민은행호’의 운명을 한 손에 쥐고 있다.‘소리없이 강한’ 카리스마 소유이렇게 지난해와 올해 연이어 뜻하지 않게 뉴스메이커가 됐지만 김행장의 개인 인지도나 대중적 인기는 높은 편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일처리야말로 김행장의 방식이고 개성이라는 것이 주위의 평가다. 행장 개인은 눈에 띄지 않아도 좋으니 은행만 부각되면 충분히 만족스럽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금융감독원 부원장 시절에도 부실기업 조기퇴출이나 경영개선작업(워크아웃) 처리, 대우 문제 등 구조조정 실무 총책을 맡아 조용하고 깔끔하게 일을 처리했다. ‘소리없이 강한’ 조용한 카리스마가 김행장의 리더십인 셈이다. 차분하고 나직한 말투지만 의외의 달변가라는 것도 이런 김행장의 스타일을 잘 대변해준다.감독기관에 오래 근무한 경력 때문인지 ‘다소 딱딱하고 가까이 하기 어렵다’는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시간나는 대로 직원들과 산행을 하는 등 간격 좁히기에도 열심이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65년)하고 66년 한국은행 입행, 금융계와 인연을 맺었다. 은행감독원 검사 1, 3, 5 국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99년 금융감독원 부원장으로 재임하다 2000년 3월 국민은행장으로 선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