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전략 부재, 외산제품에 안방 내줘 … 배급사 인식전환도 시급

국내 PC게임 시장 규모가 커진 것은 90년대 후반이다. 특히 지난 98년 여름 불멸의 히트작인 스타크래프트가 출시되면서 PC게임 시장은 단숨에 1천억원대의 거대 시장으로 급부상했다. 이어 PC게임 시장은 매년 두자릿수의 성장률을 보이면서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했다.(표 참조)이처럼 전체 외형만을 살펴보면 국내 PC게임은 디지털 콘텐츠 산업을 이끌어 갈 핵심 산업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외화내빈’이라는 점을 직감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국산 게임의 기반이 취약하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아직까지 국산 게임의 시장점유율에 대한 통계가 없어 정확히 말하기는 힘들지만 지난해 말을 기준으로 할 때 국산 게임은 전체 시장의 10%도 차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더욱이 고가에 팔리는 패키지 시장에서는 몇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명함도 내밀지 못하고 대다수 국산 게임은 출시와 동시에 주얼(패키지 게임과 대비되는 말로 의류로 치면 땡처리와 비슷함)로 헐값에 판매되는 것이 보통이다. 10여명 안팎의 벤처기업들이 2년여 기간에 걸쳐 개발한 게임을 패키지로 출시해 보지도 못하고 개당 5천원 정도를 받으며 주얼로 판매하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업계 전문가들은 국산 게임의 르네상스가 도래하려면 개발사들의 노력과 함께 게임 배급사들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더욱이 아바스 EA 인포그램 인터플레이 마이크로소프트 등 세계적 게임 업체들은 한국 시장에 대한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어 국산 게임의 기반은 더욱 좁아지고 있다. 이들 게임 공룡 중에서 EA 인포그램 인터플레이 마이크로소프트 등은 이미 국내에 현지법인을 설립해 게임 타이틀 직배를 시작했으며 블리자드라는 세계적 개발사를 거느리고 있는 아바스는 한국내 특정업체를 통해 대작들을 잇따라 쏟아내고 있다.2년 개발 제품 헐값 판매 수두룩업계에서는 국내 게임 개발의 역사가 일천하고 내수 기반이 취약한 점을 감안하더라도 국산 게임이 외산에 시장을 통째로 내주고 있는 상황은 이해할 수 없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국산 온라인 게임이 세계 시장을 제패하고 있는 것에서 미뤄 짐작할 수 있듯이 한국 게임 업계의 개발력이 아시아는 물론 세계적인 수준임에도 국내 시장의 5% 정도 밖에 차지하지 못한다는 것은 게임 개발 업체의 장기적인 전략 부재가 가장 큰 원인이라는 것이다.대부분의 개발사들이 팔기 위한 제품을 개발했다기보다는 먼저 게임을 만들어 놓고 나서 판매를 생각하는 등 안일하게 대응해왔다는 지적이다. 특히 최근 들어 국산 게임의 성공 모델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어 이같은 분석은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게임 컨설팅 업체 게임브릿지의 유형오 사장은 “토종 게임 개발사들이 자리를 잡아 가는 시점에서 스타크래프트가 모든 게임 수요를 독차지하면서 1세대 게임 개발사들이 고사한 것은 사실이지만 최근들어 상황이 바뀌고 있다”며 “국내에서만 2백만장이 팔린 스타크래프트가 키워 놓은 게임 시장의 파이를 국산 업체들이 나눠 가질 시점이 됐다”고 밝혔다. 유사장은 판타그램의 ‘킹덤언더파이어’, 소프트맥스의 ‘창세기전’, 키드앤키드닷컴의 ‘하얀마음백구’ 등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시장에 접근해 성공한 케이스로 국산 게임 개발사들이 나아갈 지표를 제시하고 있다고 분석했다.우선 판타그램은 글로벌 비즈니스 전략의 성공 사례를 보여준다. 판타그램은 내수보다는 ‘월드 베스트’를 타깃으로 ‘킹덤언더파이어’를 개발했으며 현재 국내 판매량을 포함해 전세계적으로 40만장을 판매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판타그램은 전세계 30여개국에 킹덤언더파이어를 1백만장 정도 판매한다는 목표를 세워 놓고 있다.특히 판타그램은 세계 30여개국에 배급망을 갖춘 글로벌 게임 배급사인 판타그램인터랙티브를 설립해 세계적 게임 배급사로 도약을 시도하고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소프트맥스의 `‘창세기전’ 시리즈는 한국적인 대작을 만들어 성공한 케이스다. 소프트맥스는 지난 95년 12월 RPG 게임인 창세기전을 출시한 이래 지금까지 6종의 시리즈를 선보여 내수시장에서만 61만3천장을 판매했다. 또한 일본 대만 중국 등지에 총 19만장을 수출했다. 현재 판매중인 ‘창세기전3 파트2’의 판매가 꾸준히 늘고 있어 창세기전시리즈는 올해 안에 내수와 수출 물량을 합쳐 1백만장 돌파를 바라보고 있다. 국내는 물론 아시아지역 최고의 기록을 예약해 놓고 있다.어린이·여성 타깃 틈새공략 돋보여이밖에도 위자드소프트의 악튜러스, 재미시스템의 액시스, 조이맥스의 아트록스 등 국산 게임이 나름대로 성공을 거둔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전략 시뮬레이션이나 RPG 등과 같은 하드코어 장르 분야에서는 최소한 개발기간 2년에 제작비가 10억원 이상이 투자되는 완성도 높은 대작만이 통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반면 키드앤키드닷컴의 `‘하얀마음백구’, 삼성전자의 `‘짱구는 못말려’, 메가폴리소프트웨어의 `‘쿠키샵’ 등은 틈새 시장을 공략해 성공한 경우로 대작을 개발해 외산과 정면승부를 낼 여력이 없는 소규모 개발 업체들에 귀감이 될 만하다. 한빛소프트가 배급한 `‘하얀마음백구’는 그동안 게임에서 소외된 아동층을 타킷으로 한 제품으로 지난해 출시돼 지금까지 7만장 정도가 팔렸으며 연말까지 10만장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짱구는 못말려’ 역시 아동층 사이에서 폭발적 인기를 얻고 있으며 위자드소프트가 배급한 `‘쿠키샵’은 여성층을 타깃으로 삼아 성공한 예로 꼽힌다.업계 전문가들은 국산 게임의 르네상스가 도래하려면 개발사들의 노력과 함께 게임 배급사들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도 `‘국산은 안된다’는 구태에서 벗어나 대작의 가능성이 있는 국산 게임을 발굴, 다양한 마케팅을 통해 이들 제품을 히트작으로 만드는 진정한 의미의 배급사업에 나서야 한다는 것. 게임 배급사들이 외산 대작 게임만을 들여와 판매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는 한 국산 게임의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배급사들이 국산 게임을 외면하는 것은 국산 게임 개발사의 고사로 이어지며 이는 또 다시 배급사의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우수한 국산 게임의 발굴은 국내 배급사의 생존 전략일 수도 있다.인터뷰정영희 소프트맥스 사장“장기적 안목으로 인프라 구축해야”국산 게임 개발사의 CEO 입장에서 피부로 느끼는 외산 게임과의 격차는 어느 정도인가.외산 게임과의 격차가 빠르게 좁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픽이나 프로그램 등 기술적인 부분은 거의 동일한 수준에 도달했다고 본다. 기획을 통해 완성도를 높이는 부문은 다소 뒤져 있다. 다만 마케팅 부분이 가장 취약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들어 게임 개발 업체들이 글로벌 마케팅을 비롯해 그동안의 구태를 벗어나려는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외산 게임과의 격차를 줄이기 위한 방안이 있다면.늘 강조하는 부분이긴 하지만 성급해서는 안된다. 게임 사업은 마라톤과 같이 장기적으로 승부를 내야 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몇 년 앞을 내다보고 차근차근 준비를 해야 한다. 특히 단순히 자본만을 대량을 투자한다고 해서 좋은 게임이 나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이런 저런 상황을 종합해 보면 1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국산 게임은 지금이 도약할 수 있는 시기라고 생각한다.PC게임 개발사 중에서 가장 먼저 코스닥 등록을 추진하고 있는 데 코스닥 등록이 게임 개발사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지.공모가는 8천2백원으로 결정됐으며 5월31일, 6월1일 양일간 공모주 청약을 받았다. 코스닥 등록을 통해 개발 자금을 확보할 수 있지만 기업을 공개하는 것이므로 위험 부담도 분명히 존재한다.소비자들의 신뢰를 형성하고 투자자들에게 이익을 환원하겠다는 마인드만 갖고 있다면 코스닥 등록은 게임 개발사들에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국산 게임의 발전을 위해 정책적 건의를 한다면.게임 산업이 단기간에 효과를 측정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정책적 지원 역시 일관적인 방향성을 가지고 장기적으로 추진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