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가장 바쁜 업계중의 하나가 바로 김치생산업계다. 냉장고의 냉동실까지 동원해가며 아껴두었던 김장김치는 동을 낸지 이미 오래고 그동안 약간의 겉절이 김치와 갖가지 푸성귀로 식단을 얼버무리다가 장마철을 앞두고 시판김치의 인기가 부쩍 올라갈 때가 바로 요즘이기 때문이다.이런 김치업계에 전해진 또 하나의 호재는 바로 김치의 Codex 규격화다. ‘Codex’는 ‘Codex Alimentarius(Food Code의 라틴어)’의 약어로 세계농업기구(FAO)와 세계보건기구(WHO)가 합동으로 운영하는 국제식품규격위원회의 식품국제규격이다.국내에선 농림부와 한국식품개발연구원을 주축으로 김치 Codex 규격(안)을 마련, 95년 Codex 사무국에 제출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규격화 작업에 필요한 7단계를 모두 거치고 현재 Codex 총회 승인이라는 마지막 8단계를 남겨두고 있다. Codex 총회는 7월 중순 제네바에서 열릴 예정인데 다른 회원국의 특별한 이의제기가 없으면 승인이 확정된다.한국식품개발연구원 관계자는 “김치규격화에 가장 큰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일본과는 이미 97년부터 4차례의 작업반 회의를 개최, 한일합의안을 마련했고 다른 나라의 이의제기 가능성도 5~6단계 과정에서 거의 조정이 됐기 때문에 김치의 Codex 규격화는 사실상 형식적인 승인단계만 남겨두고 있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김치의 Codex 규격화는 김치가 국내 음식 가운데 유일하게 국제규격으로 정해진다는 점, 그리고 한국의 김치가 국제규격으로 공식 인정받는다는 점이 국가적인 의의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김치의 Codex 규격화는 ‘김치(Kimchi)’라는 명칭 사용에서부터 김치의 정의, 김치의 재료, 숙성 과정, 종류, 맛 등에 관한 기본원칙을 한국의 전통김치에 근거해 정하는 것이므로 일본의 겉절이 김치는 ‘김치’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게 된다.국내 김치업계가 김치의 Codex 규격화를 환영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김치의 Codex 규격인증 자체가 김치를 세계시장에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되는 데다 미국 등 해외시장 진출시 일본 ‘기무치’와의 차별화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다는 뜻에서다.현재 국내 김치제조업체 수는 약 4백59개에 달한다. 이들 중 대부분이 지방에 근거지를 둔 중소형 업체들이다. 국내시장을 리드하고 있는 대형 업체로 꼽히는 곳이 두산 농협 동원 등이다. 여기에다 최근 제일제당과 풀무원도 고급 포장김치 시장에 진출했다.국내 김치시장 규모는 98년 3천억원에서 99년 3천5백억원, 2000년 4천억원으로 해마다 10% 남짓 성장하는 추세다. 올해 시장규모는 15% 정도가 늘어난 4천6백억원. 국내 시판김치 시장은 맞벌이 부부의 증가, 김치 품질의 고급화 등에 따라 갈수록 커지겠지만 김치업체의 난립으로 업체마다 수지를 맞추기는 어려울 전망이다.김치업체들이 김치수출에 열을 올리고 있는 이유도 ‘김치의 세계화’라는 대의명분 외에 새로운 시장개척 및 수요창출의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내 업체들의 김치수출액은 1천1백억원. 정안농산 (주)두산 농협이 수출 리딩업체로 꼽히고 있다.농수산물 유통공사는 올해 김치 수출액은 지난해보다 2배 가까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치 국제규격화를 계기로 한국김치에 대한 관심이 증가, 수출환경이 좋아지리라는 근거에서다.문제는 전체 수출액의 90% 이상이 일본에 집중돼 있는 데다 국내 업체들의 과당경쟁으로 수출단가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많이 팔아도 남는 것은 별로 없는 ‘거품장사’일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한국산 김치가 일본시장에서 차지하는 점유율도 99년의 8.7%에서 올 1~3월 사이 6.2%로 낮아졌다(무역협회 도쿄지부).국내 김치업체 살 길은 다변화·고급화이는 그동안 겉절이 김치 생산에 주력해 왔던 일본 김치제조 업체들이 한국식 발효김치 생산으로 속속 방향을 틀고 있기 때문. 게다가 일본업체들은 재료 및 인건비가 싼 중국에 생산시설을 두고 한국인 김치전문가를 고용, 한국적인 김치 맛을 내면서도 가격은 절반에 불과한 김치를 일본시장에 대거 선보이고 있다.결국 국내 김치업체들의 살길은 김치시장 다변화와 고급화에 달려 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농협 (주)두산 등 기존 김치업체들의 김치 세계화 전략도 미국 등 새로운 시장개척과 고급화에 집중돼 있다. 제일제당 풀무원 등 후발업체들은 김치 고급화는 기본이고 아예 서구인의 입맛에 맞는 샐러드형 김치나 퓨전김치를 개발해 일본시장보다 미국이나 유럽 등 서구시장 개척에 나서겠다는 전략을 세워놓고 있다.정부에선 김치의 Codex 규격화와 더불어 2002년 월드컵과 아시안 게임도 김치를 세계인들에게 알리는 데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보고 각종 지원방안을 마련하고 있다.요약하면 이미 김치 세계화를 위한 멍석은 깔린 상태에서 업체들의 김치시장 다변화 및 품질개선 노력과 정부의 지원책이 얼마나 적절히 어우러지느냐에 따라 김치가 세계인의 입맛을 잡을 수도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