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구·도기권씨 등 금융사 임원급으로 대거 포진 … 직원들 대상 ‘러브콜’도 많아

국내 금융기관들이 구조조정과 부실 채권 처리 문제로 손발이 꽁꽁 묶여 있는 동안 외국계 금융기관들은 ‘펄펄 날았다’. 그런데 외국계 은행들이 국내 금융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9월 기준으로 약 7조원으로 1.6%(콜머니 제외), 여신액 10조원으로 1.8%를 차지한다. 막상 비율이나 규모로 보면 미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국내에 진출한 외국 은행의 첨병 씨티은행의 존재감이 수치 이상으로 묵직하게 피부에 와 닿는 이유 중 하나는 이들의 네트워크가 최근 국내 금융계 구석구석에 파고들고 있기 때문이다. IMF이후 금융기관 구조조정이 지속되면서 씨티 출신 인사들이 하나 둘 ‘떠올랐다’. 이런 현상은 금융기관 구조조정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하영구 한미은행장은 씨티은행서 소비자금융 대표를 맡고 있었고 도기권 굿모닝증권 사장도 씨티 출신이다. 금융감독원의 이성남 부원장보는 외국계 출신이자 여성 중에서 처음으로 금융당국의 임원이 됐다. 금융감독원 은행검사국 검사6팀을 이끌고 있는 최명희 팀장도 씨티에서 17년간 근무했다. 우리금융 지주회사의 민유성 부회장도, 마이크 캘런 우리금융지주회사 사외이사도 씨티은행에서 30년 가까이 일했다.서울은행 씨티출신 인맥 막강서울은행의 경우는 아예 씨티은행 출신들이 꽉 잡고 있다. 강정원 행장은 서울은행으로 옮기기 전 도이체방크 대표를 맡았으나 70년대 후반 씨티은행에서 금융을 익힌 씨티맨이다. 장형덕 부행장도 씨티은행 출신. 그는 지난해 서울은행으로 자리를 옮기기 전까지 씨티에 있었다. 76년부터 씨티은행 서울지점에 발을 들여놓은 뒤 25년간 씨티은행에서 근무하면서 여신담당 이사와 중소기업 금융담당 본부장 등을 거쳤다. 역시 서울은행 김명옥 상무도 씨티은행 소비자금융그룹 이사 출신이다.지난해 3월 스카우트된 하나은행의 송갑조 부행장은 씨티은행 서울지점과 아시아 지역 IT부문 부장을 거쳤고 87년부터 95년까지는 중남미 지역에서 기술이사로 일했다.신한은행이 지난 3월 영입한 오용국 상무는 씨티은행 서울지점과 홍콩에서 근무한 신용관리 전문가다. 제일은행의 재무관리본부장인 랜비드완 상무는 씨티은행에서 아시아 지역 재무담당 부사장 재임 중 호리에행장에게 스카우트 됐다.산업은행의 IT본부장(상무)인 서송자씨 역시 씨티은행에서 전산전문가로 일했던 인물. 서본부장은 세계금융의 본고장인 미국 월가에서 활동했다.이런 현상에 대한 반응은 극단적이다. 국내 은행에 근무하는 한 직원은 비관적인 어조로 말한다. “20년전 명문대를 졸업해 촉망받으면서 국내 시중은행에 입행한 친구는 지금 명예퇴직을 앞두고 있다. 퇴직은행원만큼 갈 곳 없는 사람들이 또 어디 있는가. 그런데 당시 같은 학교를 나와 외국계 은행에 들어간 친구는 이제 ‘선진금융의 전도사’가 되어 곳곳에서 러브콜을 받는다.”지금 씨티에서 근무하고 있는 직원들은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입사한 지 1년이 된 한 직원은 “부러운 한편 자랑스럽기도 하죠. 나도 언젠가 저런 기회를 만날 수 있겠구나 생각하면서 열심히 일하려구요”라고 했다. 그의 말에서는 자부심이 배어 나왔다. ‘뱅커’들이 자부심이 강하긴 하지만 씨티은행의 직원들은 특별히 ‘씨티 뱅커’라는 자긍심을 갖고 있다는 설명이다.씨티은행 직원들 ‘씨티 뱅커’ 자부심 강해국내 은행과 씨티은행이 확연히 구분되는 점이 있다면 전자가 개개인의 역량에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한 사람이 사라지면 그 은행의 노하우도 같이 사라지는 반면 후자는 철저히 시스템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이다. “서부 개척시대에 총 맞으면서 돈상자 옮길 때부터의 노하우가 그대로 축적돼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이범영 자금부 이사)그래서 씨티은행의 이사급이 내놓는 분석은 좀더 설득력있게 들린다. “지금 우리나라 금융기관들에게 필요한 게 뭡니까.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외국 금융기관과 같은 시스템을 고스란히 복제해 이식하는 겁니다. 발탁되고 있는 개개인의 능력도 뛰어나야겠지만 외국 은행에서 오래 일해 그 시스템을 다른 국내 금융사에 가서도 만들어내고 정착시킬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한 시기인 거죠.” 씨티에서 15년 넘게 근무했다는 어느 이사의 말이다. 그의 분석은 우리나라 금융산업의 현 주소와 맹점을 그대로 나타내주고 있다. 투명성 확보, 글로벌 스탠더드에의 적응, 수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상업주의의 실현 등도 급한 과제이지만 ‘복제’에 급급한 것이 최선의 방법인가에 대해서는 고려가 부족한 상황이다.씨티은행 기업문화시스템 탁월 … 개인주의 강해요즘 외국계 금융사들이 대체로 그렇듯 씨티은행은 국내 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수한 인력을 확보한다. 단적인 예로 국내 1천여명의 직원 중에서 2백명 이상이 MBA 취득자다. “차장급 이상은 거의 다 MBA라고 보면 돼요.” 마케팅팀 김수지사원의 얘기다. 그러나 이 회사 김찬석 지배인은 “우수한 인력을 확보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들이 오랜 직장생활에서 정체되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각 분야의 전문가로 만드는 것이 인사 정책의 기본 틀이기 때문에 본인이 원치 않는 순환 근무 등은 전혀 없다는 것이다.사원이나 과장급 직원들은 ‘분권화된 조직’을 조직 문화의 최대 장점으로 꼽았다. 일단 어떤 분야의 일을 맡으면 직급에 관계 없이 재량권을 철저히 존중해 준다는 것이다. 한도 내에서는 예산도 집행 가능하고 이렇게 권한을 분배하면 의사 결정이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고 보고를 위한 서류 꾸미기나 얼토당토 않는 윗사람의 지시 등 ‘쓸데 없는 일’에 투여하는 시간이 적어 효율성이 월등하다는 것이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국내 기업에 비해 남녀차별 연공서열 등에서 오는 불합리가 훨씬 적다. 실제로 전체 직원 중 60%가 여성이다. “동등한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인사 정책의 대원칙인데 금융업에는 여성이 더 적합한 것 같다.” (김찬석 지배인)씨티은행의 직원들은 씨티코프가 세계적 금융그룹이라는 데서 오는 효과를 높이 평가했다. 이들은 “말로만 듣던 글로벌 네트워크의 위력을 씨티은행에 와서 확인했다”고 말했다. 타 지역 성공 사례가 있으면 그 내용을 서울 지점에도 즉시 옮겨 올 수 있고 실패 사례 역시 마찬가지다. 노하우뿐 아니라 인력 이동도 종종 일어난다. 서울 지점에서 홍콩으로 가서 근무하거나 싱가포르에서 서울 지점으로 오는 식이다. 직원들은 넓게 보는 법을 배우고 ‘국제금융통’이 되는데 유리한 조건이라는 점을 후하게 쳤다.반면 이같은 문화에서는 직원들 사이의 낮은 유대감이 단점으로 지적된다. 대규모 공채는 없고 자리가 빌 때마다 수시 모집으로 사람을 뽑는다.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는 탓에 친밀한 유대감 같은 건 기대하기 어려우며 ‘따로따로’ 분위기가 강하다. 씨티은행에서 1년째 근무하고 있는 박영기 사원은 “동기가 없어서 외로웠다”고 했다. 지나친 보수성도 단점이다. 효율성과 유대감 사이의 갈등이 해결해야 할 숙제라고 내부에서는 평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