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네트워크 기반 ‘찾아가는 서비스’로 새바람 일으켜
지난 67년 국내에 진출한 씨티은행은 웬만한 지방은행 못지않은 영업능력을 갖고 있다. 작년말 기준 씨티의 수신은 6조1천4백91억원, 여신은 4조8백58억원에 달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 우리나라에 들어왔던 체이스 은행에 비해 5배 이상의 외형을 갖고 있다.씨티는 또 34년 연속 흑자행진을 벌이면서 지금까지 1조원 이상의 이익잉여금을 쌓은 것으로 나타났다. 바람잘 날 없던 한국 금융시장에서 놀라운 실적이 아닐 수 없다. 국내 금융계 일각에서 “경제성장기에 정부의 규제를 받지 않으면서 주로 대기업들과 거래를 해온 점을 감안하면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는 얘기도 나오지만 어쨌든 큰 잡음없이 우리나라에 튼튼하게 뿌리를 내린 점은 인정해줘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지금까지 씨티의 기업금융은 대기업 위주였다. 몇년간을 제외하고는 우리나라의 국가신용도가 워낙 낮았기 때문에 본사 차원에서 투자대상을 확대하기도 어려운 처지였다.중소기업 금융강화씨티는 최근 들어 중소기업들에 눈길을 돌리고 있다.사자드 라자비 서울지점 대표는 “그동안 수도권에 집중돼 있던 영업력을 지방으로 확대해 우량 중소기업들을 새로운 고객군으로 발굴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특히 수출기업들과의 거래를 적극적으로 확대, 자금지원에서 무역컨설팅까지 일괄 금융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씨티의 이같은 전략 선회는 국내 기업환경의 변화를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30대 그룹 중 절반 가량이 워크아웃에 들어갔거나 부실이 심화된 상황에서 더 이상 대기업 위주의 여신을 구사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여기다 나날이 늘어가는 수신고를 운용하려면 새로운 거래선을 찾아야 할 입장이다.주식처럼 리스크가 큰 위험자산에의 투자를 극력 기피하는 씨티로서는 한국시장에서 ‘투자 금융’보다는 ‘정통 금융’을 펼쳐야 할 입장에 놓이게 된 셈이다. 하지만 기업금융을 강화한다고 해서 마구잡이로 기업 대출을 늘린다는 의미는 아니다. 대기업 중소기업 가계 여신비중을 적절하게 조절해 가며 시장 상황에 맞게 탄력적으로 운용하겠다는 전략을 갖고 있다. 글로벌 은행으로서의 정교한 여신심사 기법도 한국적 현실에 맞게 ‘완화’할 생각이 아직은 없다. 씨티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하면서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면 우량 중소기업들을 많이 유치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중소기업 금융본부 관계자는 “중소기업인들이 은행방문에 불필요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기술개발과 경영에 전념할 수 있도록 ‘찾아가는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라며 “담당 인력도 평균 경력 20년 이상의 베테랑들로 구성돼 있어 중소기업인들의 애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예를 들어, 글로벌 네트워크를 이용해 국내 기업들에 대한 바이어 알선뿐만 아니라 해외 거래업체들의 신용조회서비스 등을 해줌으로써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고객이 대기업으로 성장할 때까지 상호 ‘윈-윈’ 게임을 펼치겠다는 게 중소기업 금융전략의 핵심이다.하이닉스반도체 GDR 발행 뒤에는 씨티은행의 남다른 '뚝심'이 작용했다.하이닉스 설리기도 앞장씨티는 최근 자회사인 살로먼스미스바니를 앞세워 12억5천만달러의 GDR를 발행하는 데 성공했다. 하이닉스의 실추된 신용도를 감안할 때 당초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지만 씨티의 ‘뚝심’은 먹혀 들었다. 또 작년말 국내 금융기관들이 초단기 자금운용에 골몰하며 제 살길 찾기에 혈안이 돼 있을 때 하이닉스에 8천억원 규모의 신디케이트론을 성사시키기도 했다.씨티의 이같은 태도를 놓고 “기존에 물린 여신이 많아 어쩔 수 없이 끌려들어간 것일 뿐”이라는 혹평도 없지 않지만 반드시 삐딱하게 볼 것만도 아니다.은행 관계자는 “한국시장의 전략적 중요성을 알고 있는 씨티로서는 거대 기업인 하이닉스의 부도가 간과할 입장이 아니다”면서 “향후 반도체 경기가 변수가 되기는 하겠지만 하이닉스의 회생을 낙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씨티는 지난 외환위기 때도 우리 정부와 함께 외채 만기연장과 외평채 매각협상을 주도하면서 적잖은 도움을 준 게 사실이다. 이 과정에서 씨티가 어느 정도의 이득을 취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발등의 불처럼 떨어진 외환위기를 벗어나는 데는 상당한 기여를 했다. 지난 3월 25년간 일했던 씨티를 그만두고 지난 3월 신한은행으로 자리를 옮긴 오용국 상무는 “외환위기 당시 씨티는 한국 대기업에 대한 지원을 오히려 늘리는 등 도움을 주었고 기업(도매)금융과 소비자(소매)금융 부문에서 새로운 금융상품과 마케팅 기법을 도입해 한국 금융기관들을 자극했다”고 말했다.탁월할 여신 심사능력씨티는 부실가능성이 높은 고정이하 여신의 비율이 0.7%선에 불과하다. 1억원을 빌려주면 70만원 정도의 리스크를 안는다는 셈이다. 지난해말 기준 총자산 이익률(ROA)은 1.49%로 국내 우량은행인 제일(1.13%) 국민(0.97%) 주택(0.94%)보다 훨씬 높다.이는 담보를 거의 받지 않는 대신 철저한 재무분석과 신용평가를 통해 기업을 분석하는 기법과 투명한 의사결정 덕분이다. 심사기준 가운데 가장 중요한 항목은 상환능력이다. 이 과정에서 현금 흐름과 장단기 재무 구조를 꼼꼼히 파악한다. 외부적 평가요인으로는 여신기업 모기업 또는 정부의 지원을 여신심사에 적극 반영한다. 외국에 담보물이 있거나 외국기업의 보증서가 있을 경우에는 여신위험도가 낮아진다.최근에는 정부의 대기업 개혁방향과 맞물려 기업 지배구조나 계열사간 지급보증을 비중있게 분석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이어 해당 산업의 중장기 트렌드와 시장 상황을 반영한다. 물론 이같은 분석기법은 국내은행들도 채택하고 있다. 하지만 상환능력에서 투자대상국의 국가위험도까지 모든 심사항목을 계량화하고 이를 철저하게 지키는 것이야말로 씨티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라고 은행측은 강조한다.독보적인 파생상품 영업국내에서 이자율이나 금리관련 파생금융상품을 기획하고 거래하는 능력은 씨티가 단연 발군이다. 연간 거래실적이 50억달러를 넘나들고 있으며 어떤 금융기관보다도 풍부한 북리스트를 갖고 있기 때문에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들의 다양한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다. 황성배 지배인은 “단순히 파생상품 중개를 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금융의 토털 솔루션을 제공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며 “지금은 리스크를 헤지하는 거래가 주종이지만 앞으로는 다양한 상품 조합을 선보일 계획”이라고 말했다.하지만 외환위기를 전후로 산업 국민 등 국내은행들이 파생금융 시장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씨티도 ‘링 펜스(Ring Fence)’ 조항 때문에 애를 먹고 있다. 파생상품 거래로 막대한 손실을 막을 경우 서울 지점만 책임을 지고 미국 본사는 빠지는 링펜스 계약에 대해 산업은행 등이 ‘불평등 계약’이라며 거래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