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사실상 마비됐던 채권 시장이 최근 서서히 기지개를 켜는 모습들이 포착되고 있다. 물론 기업 자금난이라는 급한 불을 끄기 위한 정책 당국의 미봉책에 힘입은 부분이 커 ‘살아났다’고 하기엔 갈 길이 멀다. 더구나 꽁꽁 얼어붙었던 99년 이전에도 워낙 허약하고 부실한 데가 많았고 초기 형성단계에 머물렀던 곳이 국내 채권시장인 만큼 기사회생한다 해도 시스템이 갖춰진 안정된 시장이 되기 위해선 해야 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대우증권 정유신(42)부장은 이 문제에 대해 할 말이 많았다.정부장은 대우증권 파생상품영업팀을 이끌고 있다. 선물 옵션 등을 제외한 광의의 각종 장외 파생상품 발행을 주선하는 것이 이 부서의 역할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주로 자산담보부증권(ABS) 발행, 주간 업무를 맡는다. 정부장은 대우경제연구소의 리서치 부문 경력 13년, 신디케이션부장과 채권영업부장 등을 거쳐 파생상품 영업부를 이끌기까지 영업 실무 경력 3년으로 이론과 현장 경험를 겸한 기업금융전문가다. 그는 “채권 발행자(기업), 발행 주간사, 감독당국 등 시장 참여자가 각각 제 위치에서 할 일이 많다” 고 강조했다. 특정 회사에 소속된 샐러리맨임에도 불구하고 자본시장 전체를 보면서 평가 분석하고 우려했다. 이는 기업금융파트에서 오래 일한 이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특성이다.“다른 시장참여자들이 해야 할 일은 제가 얘기할 게 못되구요, 실무자 입장에선 좀 더 다양하고 정교한 갖가지 기법들을 꾸준히 개발해 적용해야 채권 시장이 자리를 잡아 기업 자금이 원활히 돌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 의무겠죠.”파생상품영업팀은 생긴 지 2년 남짓 밖에 되지 않은 부서지만 그간 보여준 실적은 화려하다. 99년부터 지금까지 20건이 넘는 ABS발행과 인수를 맡았다. 그 중에서도 정부장은 4가지를 ‘대표작’으로 꼽았다. 첫번째가 2000년 8월 4천3백93억원 규모의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CBO)을 발행한 것. 지금까지 발행된 프라이머리 CBO가 모두 정부 보증 아래 발행된 것과는 달리 정부 보증 없이 발행된 것은 유례가 없었다. 앞으로도 당분간 어려울 것 같다고. 주택저당채권을 유동화했던 2000년 3월 뉴브리지 캐피털 주택저당증권(MBS) 발행, 카드사 매출채권을 담보로 했던 2000년 12월의 외환카드 ABS도 모두 최초였기 때문에 의미있었다.정교한 기법 개발, 채권시장 안정화 기여마지막으로 꼽힌 것은 금융사가 아닌 일반기업의 매출채권을 담보로 발행했던 올 4월의 현대정유 ABS. 기업매출채권을 담보로 한 것으로는 역시 최초였다. 일반기업의 경우 금융사만큼 유동화할 만한 자산 보유분이 크지 않고 또 유동화증권을 발행시 좋은 등급을 받을 만한 기업은 자금 조달이 쉽기 때문에 ABS보다는 다른 방법을 찾는 경우가 많아 까다로운 작업이라고 그는 말했다.기업자금 실무 경험을 통해 그는 기업의 종합 재정 컨설팅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꼭 ABS발행뿐 아니라 증자를 통한 직접 조달이 될 수도 있고 M&A가 될 수도 있고…. 다양한 수단이 있죠. 시기와 기업이 처한 상황에 따라 최적의 수단을 구사해야 합니다. 앞으로는 이런 다양한 수단을 제공할 수 있어야 진정한 중계자로 경쟁력이 있어요. 현실화된다면 증권업계도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 되겠죠. 기업금융 시장사를 새로 써 보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