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 트렌드에 관한 한 일본은 이해하기 힘든 구석이 적지 않은 시장이다.모방을 통한 창조를 바탕으로 본바닥보다 더 뛰어난 상품이 숱하게 쏟아져 나오는가 하면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올 만큼 소비자들의 심리를 정확히 읽어낸 상품들도 꼬리를 물고 있다. 그런가 하면 한켠에서는 시장에 도저히 먹혀들 것 같지 않은 파격적 상품이 인기의 날개를 달고 소비자들로부터 환영을 받는 사례도 수없이 벌어지고 있다. 값싸고 질 좋은 노동력으로 무장한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했다지만 생명력 강한 상품을 앞질러 만들어내는 능력에서만큼은 아직 일본에 견줄 바가 못된다.2001년 여름 일본 시장은 색(컬러)을 통한 소비자들의 자기표현 욕구가 유난히 강했던 때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제조업체들이 상품에 덧씌운 획일적이고도 비개성적 컬러가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한 반면 컬러를 통해 개성을 드러내고 자기 만족을 찾으려는 소비 행동이 그 어느 때보다 두드러졌다는 분석이다. 일본 언론과 전문가들의 지적을 뒷받침 하듯 컬러를 ‘즐기고’’ 맛보려’는 트렌드는 개별 상품의 인기를 통해서도 확인된다.정보통신 가전제품 시장은 컬러 혁명의 돌풍을 다른 어느 곳보다 진하게 실감한 곳이다. 초대형 가전양판점중 하나인 요도바시 카메라에서는 광택이 나는 빨간색 휴대폰이 올 여름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회색과 베이지색이 판을 치던 냉장고 시장에서 가전메이커 히타치는 황색과 장미색의 제품을 내놓은 후 톡톡히 재미를 봤다. 일본 가전시장에 컬러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마쓰시타전기가 빨간 냉장고를 선보인 지난 98년부터지만 히타치가 올해 내놓은 6종의 컬러 냉장고는 이같은 붐을 완전히 궤도에 올려 놓았다는 평을 들었다. 히타치 관계자는 장미색 냉장고가 전체 판매량에서 2위를 차지해 회사측도 놀랐다고 털어놓고 있다. 마쓰시타 종합디자인센터의 호소야마 마사이치씨는 “필요할 때 편의점에서 언제나 요기를 해결할 수 있어 냉장고는 식품보관 기능외에 인테리어적 의미를 갖게 됐다”는 설명이다. 즉 젊은이들 사이에 냉장고는 오래 사용해야 한다는 의식이 옅어지면서 질리지 않는 자신만의 색상을 즐기려는 트렌드가 생겨났다고 그는 보고 있다.컬러에서 만족을 찾는 소비 풍조에 편승해 등장한 또 하나의 히트상품은 빅터사의 미니 컴포넌트다. 이 제품은 빛의 반사를 이용해 앞면을 번쩍거리게 만든 컬러로 젊은 여성들의 기분을 사로 잡았다. 빛을 낼 때의 신비감과 광채가 자기 개성이 강한 20대 전후 여성들에게 특히 어필한 것 아니겠느냐는 것이 빅터사 디자인실 관계자의 진단이다.냉장고·미니컴포넌트 컬러 바람몰이컬러 바람에서 두드러진 신소비 물결중 하나는 대담한 색상의 제품이 쾌조를 누린 점이다. 소니와 샤프는 미니 디스크 컴포넌트와 시스템 오디오에서 얼굴이 제품 겉면에 비칠 정도로 거울처럼 번쩍이는 제품을 내놓았다. 이들 제품은 ‘표면에 손자국이 묻어나 소비자들이 싫어할 것’이라는 내부 반대 의견에 부딪혔지만 의외로 빨리 히트상품으로 자리잡았다. 거울이 갖고 있는 고급스런 감각과 미래 지향적 제품 분위기가 시대 조류와 잘 어울렸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자동차 시장에서는 혼다가 메탈릭 색상의 차를 내놓아 히트를 쳤다. 혼다 기술연구소의 와타나베 오사무씨는 “점잖은 색상이 주도해 온 것이 자동차 시장이지만 메탈릭 컬러 특유의 고급스런 분위기와 광채에 매료된 소비자는 다른 색상을 택하지 않게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파격적이고도 기발한 컬러가 시장을 리드하고 있는 데 대해 전문가들은 색상에서 자기 위안을 찾고 자신을 튀게 보이려는 소비자들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라고 말하고 있다. 이와 관련, 매년 유행색 예측결과를 내놓고 있는 일본컬러디자인연구소는 내년에는 적색 흑색 등 정반대의 색상을 조합해 만든 대담한 컬러가 인기를 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내다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