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관영 통신사인 신화사가 장편의 평론을 하나 보도했다. ‘정부는 심판이지 선수가 아니다(政府當裁判員, 不當運動員)’라는 제목이었다. 정부가 기업에 일일이 간섭하는 기존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게 핵심 내용이었다.“경기장에서 골을 넣어 승리하는 일은 선수들의 몫이다. 정부는 선수가 아니라 경기를 공정하게 진행하는 심판이다. 심판이 공을 찬다면 무슨 일이 벌어지겠는가. 아직도 시장 자율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관리들은 자리를 지킬 이유가 없다.”강렬한 어조였다. 평론은 이어 심판이 할 일로 불공정 경쟁 감시, 지방보호주의 타파, 의법 행정 등을 꼽았다. 신화사는 각종 행정승인도 이제는 필수 불가결한 것만 빼고는 모두 등록제로 전환해야 할 때라고 밝혔다.신화사는 중국 공산당의 ‘입(口)’이다. 신화사 보도는 곧 공산당의 뜻이다. 그 신화사가 지금 서방 국가에서나 나올 법한 말을 거리낌없이 하고 있는 것이다. 공산당이 변하고 있다는 얘기다.허베이성 휴양지 베이다이허. 매년 여름 고위 당·정 관리들이 피서를 ‘빙자’, 밀실에서 국정을 논의하는 곳이다. 지난달 이곳에서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뉴스가 나온다. ‘헌법에 사유재산 불가침 조항을 삽입하겠다’는 보도였다. 헌법에 ‘사유재산 보장 규정’을 규정하는 국가를 공산주의 체제라고 말하기는 어렵다.창당 80주년 기념식서 사유재산 보장 규정공산당의 질적 변화는 이미 여러 곳에서 감지됐었다. 지난 7월 공산당 창당 80주년 기념식. 장쩌민 주석은 기념연설에서 “재산의 유무에 따라 정치성의 낙후와 선진을 판단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베이징의 정치분석가들은 “민간기업 등 자산계급의 당 가입을 허용하겠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실제로 이 발언이후 사영기업 종사자들의 당 가입 지원이 쏟아졌다. 공산당은 내년 가을 열릴 제16차 전당대회에서 ‘자산계급의 당 가입’ 조항이 당헌에 삽입될 것으로 알려졌다.공산당은 노동자와 농민의 이익을 기반으로 성립했고 그들의 이익을 대변해 왔다. 그런 공산당이 사회에 엄연하게 존재하는 자산가 계층을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현실에 직면했고 그들을 끌어안기로 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아예 당명을 허울뿐인 ‘공산당’을 버리고 다른 이름으로 바꾸자는 논의도 제기되고 있다. 필요하다면 당명까지 바꿀수 있다는 얘기다.그 변화는 경제현장에서 나타난다. 요즘 중국 언론에 ‘독점을 폭격하라(砲打壟斷)’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산업과 산업, 기업과 기업, 정부와 기업 간에 존재하고 있는 각종 독점을 깨트리라는 뜻이다. 정부와 기업의 분리, 진입장벽 철폐, 가격결정의 시장화, 업체간 가격 담합 금지 등이 주요 내용이다. 특히 기업 및 시장에 대한 정부의 ‘관리독점’이 폭격의 대상으로 정해진 게 눈에 띈다.중국의 ‘독점 폭격’ 의지는 결연하다. 최근 승용차 가격을 자율화한 게 단적인 사례다. 중국은 지난 6월 승용차에 대한 정부 지도가격 제도를 폐지, 민간기업이 시장상황에 맞춰 출고 가격을 정하도록 했다. 이와 함께 그동안 가격을 통제해 왔던 1백20개 상품 중 국가 주요 공급물품 13개를 제외한 나머지 1백7개 상품의 가격을 시장에 맡기기로 했다.중국은 또 가격단합을 한 6개 자동차보험사 난징지점에 대해 엄중 경고와 함께 벌금을 부과했다. 항공 철도 에너지 통신 등을 대표적인 독점산업을 규정, 폭격을 준비하고 있다. 기업행정을 주관하는 공상관리총국 국장을 차관급에서 장관급으로 승격, 독점 감시권을 부여했다.중국 경제전문가들은 “독점 깨트리기 작업이 결국 계획경제 체제와의 결별로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한다. 정부 스스로 ‘규제 라인’을 끊어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계획경제의 유물인 기업에 대한 정부의 지령이 하나 둘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공산당은 기업에 대한 규제를 끊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기업을 찾아다니면서 도와준다.기업규제완화·경쟁력 확보 앞장후난성 창사에 위치한 중앙제어 에어컨 전문업체인 위엔다. 창사의 대표적인 사영기업이다. 이 회사 제품 가격은 외국 제품보다 약 20%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프랑스 일본 등으로 제품을 수출한다. 기술 경쟁력이 높기 때문이다.최근 후난성 정부가 이 회사에게 ‘선물’을 했다. 현재 이 회사 부지의 6배나 되는 주변 1만㎡를 ‘위엔다파크’로 지정, 땅을 마음껏 활용하도록 했다. 공장을 확대할 필요가 있으면 얼마든지 쓰라는 얘기다.“정부가 더 난리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하는 모든 사업에 후원자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요구하지도 않았는 데 찾아와 ‘불편한 것 없느냐’라고 묻습니다. 우리는 세금으로 보답합니다.” 맨주먹으로 회사를 설립한 엔지니어 출신 장위에(41) 사장의 말이다.이 회사 취재를 마치고 창사로 나오는 버스 안. 독일 싱가포르 일본 중국 등 외신기자들 사이에 토론이 벌어졌다. 중국 체제를 어떻게 규정할 지가 주제. ‘변형된 자본주의 국가’ ‘무늬만 사회주의 국가’ ‘중국특색의 사회주의 국가’ 등 여러 의견이 나왔다.외신기자들의 결론은 ‘중국특색의 자본주의 국가’였다. 중국은 늘 ‘중국특색의 사회주의 국가’라고 체제를 규정하고 있지만 이는 곧 ‘중국특색의 자본주의 국가’라는 말과 똑같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토론을 지켜보던 중국 기자가 끼어 들었다. “체제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 국민들만 잘 살면 그만이지 않느냐.” 그의 말에 외신기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앞둔 중국은 ‘사영기업이든 국유기업이든 돈만 벌면 효자’라는 논리가 자리잡아가고 있다.개혁개방의 설계사 덩샤오핑(鄧小平)이 말한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좋은 고양이다(不理是黑猫惑是白猫, 捉到老鼠的就是好猫)’라는 말은 여전히 현 중국지도부의 금과옥조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