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에서 시작된 사업모델이지만 편의점을 가장 화려하게 꽃피운 나라는 단연 일본이다. 도심은 물론이고 변두리 주택가 곳곳에서 24시간 불을 밝히는 편의점들은 일본인에게 밤길의 두려움을 덜어 주는 보안등이자 먹거리를 해결해 주는 주방이다. 또 현금자동지급기가 있는 무인은행이며 읽을 책과 신문이 가득한 독서실이다. 그런데 이런 편의점의 역할과 기능에 최근 한가지가 더 추가됐다. 화장품이 편의점의 인기 상품 중 하나로 자리를 완전히 굳힌 것이다.편의점의 화장품 장사는 매출증대를 위해 한가지라도 상품을 더 늘리려는 업체들의 속셈과 젊은 여성들의 라이프 스타일 변화가 맞아 떨어진 결과다.편의점의 화장품 사업이 유통업체들의 본격적인 주목대상이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일부 화장품 메이커들이 편의점 전용의 제품을 따로 만들어 공급한 것은 5, 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업체간의 경쟁에 화끈하게 불이 붙은 것은 2년전인 지난 99년부터다. 통신판매 전문업체인 DHC가 그해 3월부터 화장수와 기초화장품을 세븐 일레븐을 통해 공급하면서 큰 화제를 불러 일으킨 것이 기폭제가 됐다는 게 일본 유통 전문가들의 지적이다.화장품 메이커간 자존심 싸움도 한창편의점들의 화장품 싸움은 하루가 다르게 열기가 더 뜨거워지고 있으며 화장품 업체들도 이에 맞춰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 신제품 개발에 나서고 있다. 세븐 일레븐은 립스틱과 메이크업 분야에서 피아스그룹과 손잡고 아예 ‘파라도’라는 자체상표(PB)의 화장품을 만들어 판매중이다. 편의점업계 1위업체답게 자신의 브랜드를 내세우는 한편 다양한 종류의 제품을 내놓고 있다. 로손은 2000년 9월부터 통신판매 전문업체인 환켈과 제휴, 이 회사의 기초화장품을 진열대에 깔아놓고 있다.경쟁은 편의점업체들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화장품 메이커들간 자존심, 눈치 싸움도 불을 뿜고 있다. 5년전부터 편의점 판매루트 개척에 나섰던 가네보를 비롯, 지난해부터 편의점용 화장품 판매를 시작했던 시세이도 등 대형업체들도 편의점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신제품 개발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 가네보는 기존 편의점용 전용 브랜드 제품과는 별도로 올해 6월부터 훼미리마트가 주문한 제품만을 따로 만들어 납품하고 있다편의점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화장품은 개당 3백50엔(약3천7백원) 정도로 가볍게 살 수 있는 네일 에나멜류다. 최근 립스틱을 바르지 않고도 바른 것처럼 연출 효과를 낼 수 있는 ‘프록스’ 제품이 반짝 특수를 누렸다고 편의점 관계자들은 전하고 있다. 상품 선택패턴과 관련, 세븐 일레븐측은 시간에 쫓기는 아침에는 파운데이션과 립 그로즈 등이 많이 팔리는 반면 저녁 시간 이후에는 천천히 제품을 고를 수 있는 손톱화장품류가 인기를 차지한다고 밝히고 있다.편의점 화장품 사업에 뒤늦게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는 시세이도는 지난 2월 편의점 전용 제품의 브랜드를 과감히 모두 바꿨다. 그리고는 자회사인 오-비토를 통해 ‘화장혹성’이라는 브랜드의 제품을 내놓고 인기 몰이에 나서고 있다. 시세이도는 올 여름에 편의점용으로 발매한 개당 7백엔의 자외선차단 크림 ‘썬블록’이 당초 예상의 2배에 달하는 실적을 올렸을 만큼 짭짤한 재미를 봤다.편의점 화장품 판매는 백화점과 전문코너에 밀려 그동안 별 다른 시선을 끌지 못했다. 그러나 10년 넘게 계속되는 장기불황으로 젊은 여성들의 돈씀씀이가 크게 위축된 데다 1백엔숍 등 초염가상품 매장에서도 화장품은 인기상품으로 자리잡아 편의점의 여건은 크게 좋아진 상태다. 최근 나고야에 여성전용의 24시간 편의점이 등장했으며 이 편의점은 화장품을 주력상품 중 하나로 정해 놓고 있다. 편의점 점포마다 화장품 향기가 가득한 시대를 일본 유통업계는 눈 앞에 두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