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에서 1시간여 떨어진 징두 골프장. 최근 이곳에서 한국인이 대거 참여한 한 행사가 열렸다. 한국의 골프전문업체인 메달리스트가 합작, 설립하는 골프대학 학사 기공식이 그것. 이 대학의 학장은 한국인이다. 미국 골프교습 자격증을 갖고 있는 김성재 프로가 주인공. 그는 골프 개발도상국인 중국에 한국의 선진 골프 문화를 전수하는 ‘골프 전도사’ 역할을 하게 된다.“골프 대학은 신인 발굴의 ‘장’ 입니다. 중국 전역에서 인재를 끌어 모아 체계적으로 교육시킨다면 4∼5년내 박세리와 같은 세계적 스타를 키울 수 있을 것입니다.”메달리스트가 골프대학을 세우는 궁극적인 목적은 이를 중국 골프시장 진출의 ‘파워센터’로 키우겠다는 것이다. 이 파워센터를 통해 골프용품 판매, 골프인구들을 통한 상품 마케팅 등 종합적인 비즈니스를 펼치겠다는 생각이다.메달리스트의 골프사업은 우리나라의 대 중국 비즈니스에 중요한 한 가지를 시사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소프트’ 상품에서 승부를 걸라는 것이다.우리는 중국에 대한 수출을 말하면 곧 눈에 보이는 제품만을 거론하는 경향이 있다. 화학제품 수출량이 얼마나 늘었고 중국에서 생산한 완구를 미국으로 다시 수출해 돈을 얼마나 벌었다는 식이다. 하드웨어 제품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서 하드웨어 제품은 중국과의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중국의 기술이 급속하게 고도화되고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예술 디자인 기획 연구개발 관리 국제시장 노하우 등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가치가 있는 상품 분야에서는 우리가 경쟁력을 갖고 있다. 이들 상품은 오히려 하드웨어보다 부가가치가 높다. 지금 중국에서 불고 있는 한류(韓流·한국 문화 바람)는 소프트 상품의 중국 진출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다.베이징 중심 상가인 왕푸징. 요즘 이곳은 늦여름 밤의 정취를 느끼려는 시민들과 외국 관광객들로 밤늦게까지 분주하다. 이곳에서 최근 리틀엔젤스 공연이 벌어졌다. 한·중 우호의 달 행사의 하나였다. 중국인 관객이 행사장을 가득 메웠다. 화려한 의상을 한 작은 천사들이 아름다운 우리 춤, 선율을 보여줬다. 중국인들 사이에 환성이 끊이지 않았다. 천사들은 마지막으로 우리 노래뿐만 아니라 중국의 노래 3곡을 중국어로 완벽하게 불렀다. 그들은 공연이 끝났는 데도 발을 떼지 못했다.한국노래강좌 인기·HOT 바지 유행한류 현상을 말해주는 사례는 많다. 베이징의 한국문화원에서는 매주 토요일 한국노래강좌가 열리고 있다. 등록을 신청한 후 몇 개월을 기다려야 겨우 강좌를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수강생들이 몰려들고 있다.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헐렁한 바지가 유행하고 있는 데 이를 ‘HOT바지’라고 한다. 지금 베이징 텔레비전에 나오는 젊은 가수들은 모두 HOT아류라고 보면 틀리지 않다. 영화 <비천무 designtimesp=21576>는 중국인이 만든 무술영화보다 더 재미있다는 평가를 받았다.왜 한류가 통할까. 중국인들에게 가장 좋아하는 외국 나라를 꼽으라면 단연 한국이다. 그들은 천생적으로 일본을 싫어하고 남의 나라 영공에 들어와 정찰활동을 하면서도 ‘정상적인 군사 행위’라고 말하는 미국도 경멸한다. 그들에게 한국은 ‘교통질서를 잘 지키고, 금모으기를 할 정도로 단결이 잘 되고, 중국이 단 한 번도 이길 수 없는 축구강국…’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이미지가 바탕이 됐기에 한류가 분 것이다.한류는 우리 문화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다. 결코 음악에 한정된 게 아니다. 음악은 그문화의 일부분에 불과할 뿐이다.최근 중국의 한 돈 많은 실업가가 VOD(주문비디오) 사업을 시작했다.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고 올 연말쯤 본격 시작한다. 영화음반 확보가 문제였다. 그는 적당한 사람을 찾던 중 소개로 알게 된 한국 문화사업가를 부사장으로 스카우트 했다. 세계적인 문화사업 네트워크가 그의 상품이었던 것이다. 한국인 부사장은 일본을 제외한 세계 각국 영화 배급회사와 교섭, 영화를 중국에 공급하게 된다.소프트 상품 수출 전망은 밝다. 게임업체들은 서서히 중국시장으로 타깃을 옮기고 있다. 한·중간에 공동 영화제작이 활성화되고 있다. 또 베이징에서 확산되고 있는 한국음식점 역시 한국의 음식문화의 수출이다. SK가 베이징TV를 통해 실시하고 있는 장학퀴즈도 우리나라 문화의 중국 시장 진출이다.대중음악에서 시작된 한류를 상품화하는 노력도 요구된다. 베이징의 이벤트 기획회사인 우전소프트의 김윤호 사장. 지난해 2월 HOT베이징 공연을 기획, 한류 돌풍의 주역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그가 최근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중국 전역에 ‘한류 팬시점’ 체인망을 열기로 한 것.“전국에 흩어진 수십만 명의 한류 팬들이 시장입니다. 한국의 가수와 한국문화 등을 담은 액세서리 선물 등을 판매할 계획입니다. 전국에 체인점을 열어 이 체인망을 한류돌풍의 전진기지로 삼을 겁니다.”중국은 위에서 아래로 일방적으로 흐르는 수직형 사회다. 개인과 개인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데 약하다. 그들은 교육받은 대로 행동하라고 배우지 창의력를 발휘해 새롭게 창출하라고는 배우지 않는다. 우리가 오랫동안 소프트 상품에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다.기존 업체들도 이제는 소프트 상품을 생각해야 할 때다. 하드웨어 제품으로는 이제 중국회사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에서 제품을 개발하고, 이를 중국에서 생산하는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한국은 이제 거대한 연구개발(R&D)센터로 변해야 한다. 그것이 21세기 한·중 경제협력에서 우리가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