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후 2∼3년의 경과기간을 거쳐 유통시장을 개방하게 된다. 이 기간에 선진 물류 유통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게 중국의 구상이다. 중국 유통시장 진출을 위한 외국기업의 발걸음이 더욱 빨라지고 있다.중국은 지난 10월1일부터 7일까지 1주일을 꼬박 놀았다. 대부분의 관공서와 학교, 회사가 문을 닫았다. 국경절(공산당 건국 기념일) 휴가였다. 중국은 설(음력 1월1일) 노동절(5월1일) 국경절 등 1년에 3번을 이같이 1주일 쉰다. 중국이 장기휴일을 갖는 것은 위축된 내수를 부추기자는 계산에서다. ‘실컷 놀려줄 테니 마음껏 써라’는 얘기다. 장기휴일이면 각 상가들은 대목이다. 백화점 할인점 재래시장 등 쇼핑센터는 만원이다. 그래서 ‘휴일경제’라는 신조어가 생기기도 했다.연휴기간에 찾은 베이징 국제전람센터 근처 까르푸 매장. 가을을 재촉하는 가을비가 내리고 있음에도 할인매장 내부에는 발디딜 틈이 없었다. 카트에 어린아이를 태우고 물건을 고르는 미시족 주부, 계산대 앞에 줄지어 값을 치르려는 쇼핑객, 물건 쌓기에 여념이 없는 직원 등 모두가 분주하게 움직였다. 우리나라의 할인매장과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이다. 남편의 손을 잡고 쇼핑에 나선 주부 진리씨(42)는 “깨끗하고 값이 싸 매주 이 곳을 찾는다”고 말했다. 그의 쇼핑 카트에는 일주일치 ‘식량’이 가득 담겨 있었다.바로 그 시간 까르푸에서 자동차로 10분 여 떨어진 엔샤 백화점. 평소보다 사람이 많다고는 하지만 썰렁했다. 까르푸에 비하면 절간 같은 분위기다. 점원 왕메이씨(23)는 “베이징에 편의점이 늘어나면서 손님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는 푸념이다.베이징의 두 쇼핑센터는 지금 중국에서 일고 있는 소비유통 혁명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할인매장 대형체인점 등이 새로운 유통 주체로 자리잡으면서 전통 백화점은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혁명의 방아쇠를 당긴 것은 외국계 유통업체였다. 지난 90년대 중반부터 중국에 진출하기 시작한 이들은 선진 구매기법을 통해 원가를 낮췄다. 세계적 체인망을 통해 다양한 상품을 모았다. 현재 중국에 진출한 외국 소비유통업체는 약 2백50여개. 지난 95년 까르푸를 시작으로 월마트 매트로 세븐일레븐 이마트 등이 속속 중국에 진출,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2백50여개 진출 시장점유 각축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앞두고 이들의 중국공략은 더욱 기세를 올리고 있다. 지난해 홍콩 체인점을 폐쇄, 중국 사업의 초점을 대륙으로 옮긴 까르푸는 매장을 현재 28개에서 2005년까지 1백개로 늘릴 계획이다. 5년여의 시장탐색기를 가졌던 월마트 역시 20개 매장을 2003년까지 1백개로 확대하기로 했다. 매트로도 월마트와 동일한 속도로 사업망을 중국 주요 도시로 넓혀가고 있다.외국계 할인매장의 등장은 중국 유통업체에 충격이었다. 이 여파로 90년대 중반 이후 할인매장 성격의 중국 유통체인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들은 지난 6∼7년 사이 급성장, 지난해 10대 유통업체 중 체인점이 5개를 차지했다(공상관리국 발표). 특히 전국 주요 도시에 5백여 매장을 두고 있는 체인업체 렌화는 백화점의 자존심 상하이띠이를 따돌리고 판매액 1위 자리를 차지했다. 렌화 상하이화롄 농공상 등 체인업체 대부분이 지난해 50% 이상의 매출증가율을 기록하기도 했다.기존 백화점은 울상이다. 상하이띠이가 지난해 마이너스 2.9% 성장한 것을 비롯해 베이징의 왕푸징 백화점, 난징의 신지에코 백화점 등 유명백화점이 제자리걸음을 해야 했다. 백화점은 고급화 또는 상호 연대 등을 통해 위기 돌파를 모색하고 있지만 체인점 공세를 막아내기는 역부족으로 보인다.중국 유통전문가들은 “중국 유통업계가 선진화되는 과정에서 백화점이 쓴맛을 보고 있다”고 말한다.소비유통 뿐만 아니다. 도매 물류 분야에도 혁명의 기운이 돋아나고 있다.상하이의 고급 쇼핑가 난징루. ‘상하이의 명동’으로 불리는 이 거리 입구에 고색창연한 빌딩이 눈길을 끈다. 중국 백화점의 상징인 상하이띠이 백화점이다.이 백화점에는 요즘 현수막이 걸려 있다. ‘경축 중국 최고의 유통 기법과 세계 최고의물류시스템 결합’이라는 내용이었다. 이 백화점의 모 그룹인 상하이이바이 집단과 일본 종합상사인 마루베니가 최근 설립한 도매물류 합작사 상하이바이홍을 위해 내건 현수막이다.상하이바이홍은 제조업체 소매상 수입상 세무서 운수회사 은행 철도청 등을 연결하는 선진 종합물류정보시스템을 구축할 예정. 단순 도매시장 운영에서 벗어나 상품의 흐름(물류)을 처음부터 끝까지 취급한다는 구상이다. 이 회사는 상하이 한 철도역 근처에 2만㎡ 규모의 물류센터를 건설, 이를 중국 화동지구의 물류센터로 만들 계획이다.“중국에서도 물류와 도매를 취급하는 종합 물류회사가 등장했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지금 중국 도매유통은 메이커 중간상 소비자 등의 유기적 결합이 없어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메이커가 자체적으로 배송하는 수준이지요. 상하이바이홍은 수많은 중간 유통 회사들을 시장에서 몰아내는 등 도매유통의 새바람을 일으킬 겁니다.”상하이 이마트 매장을 책임지고 있는 김선민 본부장의 말이다.도매물류 분야서도 시장재편 움직임 ‘꿈틀’외국기업이 중국 도매시장에 진출하기는 마루베니가 처음. 마루베니는 국무원(정부)의 승인을 얻어 합작법인을 설립하게 됐다. 상하이 언론들은 상하이바이홍 등장을 놓고 “소비유통 분야에서 시작된 유통혁명의 불길이 도매유통으로 옮겨 붙었다”고 평가하고 있다.중국은 세계무역기구 가입 후 2∼3년의 경과기간을 거쳐 유통시장을 개방하게 된다. 이 기간에 선진 물류 유통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게 중국의 구상이다. 이를 위해 지역별로 마루베니와 같은 외국업체를 끌어들일 계획이다.중국 유통시장 진출을 위한 외국기업의 발걸음이 더욱 빨라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