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중반 이후 오랫동안 국제사회에서 무역흑자 대국의 상징격이었던 일본이 조만간 적자로 돌아설지 모른다는 충격적인 전망이 나와 향후 세계경제 질서, 특히 국제금융시장에 커다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최근 일본 내각부는 상품과 서비스 거래를 합친 무역 및 서비스 수지(우리로 얘기한다면 경상수지에 해당한다)가 올 4분기와 내년 1분기에 적자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만약 이런 예상이 현실화될 경우 일본이 현재와 같은 국제수지 통계를 작성한 1985년 이래 처음으로 적자로 돌아서게 되는 셈이다.일본의 무역 및 서비스 수지는 지난 20년 동안 꾸준하게 분기별로 2조엔에서 3조엔 정도의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해 왔다. 문제는 올들어 무역흑자가 줄어들기 시작해 올 2분기에는 5분의 1 수준인 4천7백억엔 수준으로 격감했다. 여기에 9월 이후 미 테러사건과 군사적 보복조치에 따라 대미 수출이 줄어들 경우 적자반전이 불가피한 실정이다.한때 무역흑자 대국의 상징이었던 일본이 이처럼 무역수지가 급격히 악화되는 가장 큰이유는 그동안 흑자대국의 가장 큰 힘이었던 수출이 올들어서 크게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물량 기준으로 일본의 수출은 올들어 9월까지 9개월 연속 감소세가 지속되고 있다. 특히 대미국 수출이 격감하고 있는 것이 전체 수출부진을 주도하고 있다.미 테러사건 후 대미수출 급감 ‘타격’더욱이 일본의 제조업이 중국을 비롯한 해외이전이 본격화되고 있는 것도 무역 및 서비스 수지가 급격히 악화되는 주범이 되고 있다. 80년대 들어 일부 조립생산 라인을 중심으로 이전하기 시작한 일본 기업들의 해외이전은 최근 들어서는 첨단·하이테크 분야로까지 확산되면서 급기야는 일본내에서 제조업의 공동화 현상까지 우려되고 있는 상황이다.최근 일본경제신문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앞으로 3년안에 일본 대기업의 절반 이상이 생산라인을 해외로 이전할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91%가 중국 이전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주고 있다. 이럴 경우 일본의 무역 및 서비스 수지의 악화세는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앞으로 일본의 무역 및 서비스 수지가 적자로 돌아설 경우 가장 크게 우려되는 것은 엔화가 기조적으로 약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은 점이다.사실 90년대 이후 일본경제가 ‘잃어버린 10년’이란 표현이 나올 정도로 장기간 침체국면이 지속되는 가운데 그나마 엔화 가치가 유지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일본의 막대한 무역흑자 덕분이었다.현재 일본경제는 장기침체 국면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재정정책, 통화정책, 외환정책 등 모든 경제정책도 무력화 단계에 처해 있는 데다 부실채권 문제가 국제금융시장의 골칫거리로 등장할 지 모른다는 우려감으로 이례적으로 IMF의 특별심사를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무역수지마저 적자로 돌아설 경우 엔화 가치는 불가피하게 약세국면이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이에 따라 일본은 자국의 무역수지 보호를 위한 노력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그 중에서 일본의 수출경쟁력 약화와 제조업 공동화의 주범으로 인식하고 있는 중국에 대해 경제기초여건에 비해 지나치게 저평가된 위안화 가치를 올려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일본경제 역사상 이같은 요구는 굴욕적인 사태라 볼 수 있다. 그만큼 일본의 상황이 안좋다는 것을 의미한다.사실 중국은 지난 94년부터 1달러에 8.24위안을 중심환율(Pivot Rate)로 하는 고정환율제를 유지해 오고 있다. 문제는 중심환율로 설정하고 있는 ‘1달러=8.28위안’이 중국의 경제기초 여건보다 지나치게 낮게 설정돼 있다는 것이 일본을 중심으로 인접국들의 공통적인 인식이다.위안화 가치 절상 강력히 요구할 듯결국 중국은 경제여건에 비해 낮은 통화가치를 이용해 세계경기가 동반침체를 보인 올 상반기에도 유일하게 8%대의 높은 성장세를 유지할 수 있었고 수출증대로 다른 국가와 막대한 무역흑자를 기록하면서 해외로부터 제조업을 유치시키고 있다고 보고 있다. 다시 말해 위안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낮게 유지하고 있는 것이 인접국들에 경제적 피해를 야기시키는 일종의 ‘이웃 궁핍화(窮乏化) ’ 정책인 셈이다.일부에서는 이런 현상을 저평가된 위안화 가치를 이용해 고도기술을 한꺼번에 중국이 확보한다는 의미에서 ‘산업찬탈(産業簒奪)’이란 표현을 쓰고 있다. 특히 일본은 제조업의 해외이전으로 최근에 우려되고 있는 제조업의 공동화 현상과 이에 따른 무역적자 우려도 바로 중국의 경제여건에 비해 지나치게 낮은 위안화가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다.따라서 중국 상하이에서 열렸던 아태 경제협의체(APEC) 정상회담에서 일본을 비롯한 여타 회원국들이 중국의 WTO 가입에 앞서 위안화 가치를 약 10% 정도는 절상시켜 놓고 WTO에 가입해도 가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과연 이런 압력이 앞으로 중국이 받아들일지 여부는 아시아 지역의 주도권 문제와 직결돼 있기 때문에 상당히 관심이 되고 있다.문제는 우리나라다. 우리 경제구조가 엔/달러 환율의 천수답(天水畓) 구조를 갖고 있고 국내외환시장에서는 원화 환율이 엔화 환율 움직임에 동조화 현상을 보이는 상황에서 엔화 가치가 기조적으로 약세국면에 진입할 경우 우리 경제는 상당한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하루 빨리 이런 가능성에 대비해 경제구조를 일본으로부터 탈피하는 노력이 추진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한편 최근 일본이 장기침체의 주범인 부실채권에 대한 IMF의 특별심사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문제는 현재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밝힌 일본의 부실채권 규모가 31조5천억엔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번 IMF실사를 통해 부실채권 규모가 더 늘어날 경우 일본경제 자체 뿐만 아니라 일본의 해외시각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참고로 일본의 국가 신용등급은 이탈리아와 함께 선진국 중에서는 유일하게 트리플A가 유지되지 않고 있고 시중은행들의 신용등급은 투기등급으로 떨어질 임계점(Critical Point)에 와 있는 상태다. 따라서 IMF특별실사를 계기로 일본 금융기관들은 재무건전성을 높이기 위해 해외에 투자한 대출을 회수할 가능성이 높다.현재 일본 시중은행들이 국내금융기관에 대출해준 자산이 약 50억달러에 이르고 있다. 국내기업들도 16억7천만달러의 엔화 자금을 대출받은 상태다. 만약에 일본 금융기관들이 이 자금을 회수할 경우 국내금융기관과 기업들은 유동성 문제 뿐만 아니라 원화 가치 등 국내금융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