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사업가들의 공통점 중 하나가 기회가 오면 놓치는 법이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기회가 주어지면 이를 최대한 활용, 완만한 성장곡선을 수직상승하게끔 만든다. 더 나아가 이들은 ‘위기’마저 절묘하게 ‘기회’로 만드는 수완까지 발휘한다. 니트류 수출전문 제조기업 아이텍스필의 정주병(62) 사장은 바로 그런 사업가들 중 한 사람이다. 정사장은 최근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 이후 밀려드는 바이어들의 주문물량을 소화해내지 못할 정도로 사업이 대호황을 맞고 있다. 파키스탄 등의 동남아지역 공장에 주문했던 바이어들이 공급선을 과테말라 등 중남미지역으로 옮기고 있기 때문이다. 정사장은 과테말라에 섬유공장 8개(직원 2천7백명)를 운영하고 있다.정사장은 “기회가 찾아오면 어떻게든 이를 잡으려 애썼다”고 강조한다. 정사장은 두 번의 기회를 맞아 이를 성공의 발판으로 삼았다. 여기엔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고 스스로 변화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 결과 아이텍스필은 매년 눈부신 성장을 거듭, 지난해 1천1백54억원의 매출과 27억원의 순익을 남기는 중견기업으로 올라섰다. 특히 이 회사는 97년 말 불어닥친 IMF를 비웃기라도 하듯 그해 4백30억원의 매출실적을 98년 7백47억원으로 두배 가까이 올려놓았다.정사장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번 세 번째 기회를 맞아 회사를 매출 2천억원대의 안정적인 중견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한 거대한 플랜을 짜고 있다.정사장을 일약 성공한 사업가로 올려놓은 두 번의 기회는 과연 뭘까. 그리고 그가 맞은 세 번째 기회는 무엇인가.대한중석 입사 2년 때 섬유무역업 진출 기회 잡아첫 번째 기회. 정사장은 경기고와 서울대 상대를 졸업한 이른바 ‘KS’출신. 정사장은 66년 졸업 후 대한중석 공채 2기로 입사했다. 하지만 당시 무역업이 한창 인기를 끌고 있어 틈틈이 공부해 무역사 자격증을 따뒀다. 60~70년대에는 무역사 자격증이 있어야 무역업을 할 수 있었다.그러던 중 정사장은 입사 2년 때 한 섬유전문 무역회사로부터 과장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첫 번째 기회를 잡은 것이었다. 당시 섬유업은 지금 국내 굴지의 기업들이 전사적으로 매달렸을 정도로 활황이었다. 따라서 섬유 무역회사는 물론 제조업체들이 많은 돈을 벌었다.정사장이 무역회사를 나와 회사를 차린 것은 지난 72년. 정사장은 세아림이라는 니트웨어 하청업체를 창업, 본격적으로 섬유업에 뛰어들었다. 처음엔 2~3년 정도 사업을 꾸려나가다 다른 업종으로 전환할 생각이었지만 섬유업을 인생의 승부처로 정하고 열심히 뛰었다.두 번째 기회. 80년대 후반 정사장에게 위기가 닥쳤다. 당시 섬유산업은 사양길로 접어들면서 업계에 ‘탈섬유’ 바람이 일었다. 인건비가 급상승해 제품가격이 크게 오르자 싼맛에 한국을 찾았던 외국 바이어들이 중국 등 동남아로 발길을 돌렸기 때문이다. 여기에 미국의 쿼터제한이 맞물려 졸지에 바이어를 잃은 섬유업체들은 ‘기존 업종을 고집하다간 세간마저 날릴 것’이란 위기감으로 자동차 부품업이나 건설업 등으로 업종을 바꿔 나갔다. 이땐 업종전환을 않는 섬유기업들은 죽음을 기다리는 시한부 환자쯤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정사장은 고심 끝에 ‘위기를 기회로 만들겠다’며 섬유업 고수와 함께 해외진출이라는 승부수를 던졌다.“20여년간 다져온 섬유업을 그냥 접을 수 없었습니다. 사람이 있는 한 섬유업은 계속 존재할 것이고 그렇다면 분명 무슨 해결책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해외로 나가기로 결심했습니다.”정사장은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다 88년 중남미지역의 과테말라가 최적지라는 판단을 내렸다. 이 지역은 인건비가 쌀 뿐 아니라 미국의 쿼터제한이 없어 정사장에게 ‘금싸라기 땅’으로 비쳐졌던 것이다. 정사장의 판단은 적중했다. 정사장의 노하우를 인정한 빅 바이어들의 주문이 밀려들었다. 특히 미국 최대 유통업체인 월마트 타깃 리복 등의 대량주문이 들어오면서 정사장은 이후 탄탄대로를 달렸다. 정사장의 회사는 이제 미국 월마트의 니트류 공급선 2백46개사 중 제1의 납품업체에 올랐다. 이에 정사장은 지난 99년 니트업계 최초로 석탑산업 훈장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 3월 회사를 섬유업체로는 드물게 코스닥에 등록하는 성과를 올렸다. 이쯤되자 시큰둥하게 바라봤던 국내 섬유기업들도 대거 몰려와 지금 2백60개의 공장이 있다.과테말라 공장과테말라·요르단 등에 생산기지 확보정사장은 과테말라에 이어 99년 미국 요르단 이스라엘이 요르단을 중동의 경제특구로 협약을 맺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지난해 말 요르단에 생산기지를 새로 만들었다. 정사장은 요르단에서 생산한 섬유제품은 무관세에다 쿼터제한이 없어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유럽 진출의 마지막 교두보라고 확신하고 있다.세 번째 기회. 정사장은 지난 5월 세계 최초로 니트전문기업간 전자상거래업체인 비텍스비를 세웠다. 이젠 온라인이 기회라고 판단한 것이다. 정사장은 이를 통해 매출이 더욱 늘어나 내년엔 1천6백억원, 2003년엔 1천9백억원, 그 다음해엔 2천억원을 웃돌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정사장이 노리는 것은 회사의 외형확대와 함께 안정적인 재무구조를 가져가는 것이다.정사장은 “전자상거래로 콘테이너 운반비용을 한달에 1만달러(1천3백만원) 정도 줄이는 등 전체비용의 6% 절감효과를 얻었다”며 “이는 당기순이익을 50% 증가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고 귀띔했다. 그래서 정사장은 올해 43억원으로 잡은 당기순이익이 내년에 1백10억원으로 3배 가까이 뛰고 2003년엔 1백58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자신있게 계산해놓고 있다.정사장의 이같은 구상에는 또다른 밑그림이 있다. 그가 꿈꿔온 고급 독자브랜드를 2005년께 탄생시키는 것이다. 과연 이것이 정사장을 OEM(주문자생산) 대부에서 세계적인 독자브랜드 니트메이커의 대표주자로 올려놓는 네 번째 기회가 될 지 관심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