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친구가 물었다. “만일 금발머리를 하루 종일 즐겁게 해줘야 한다면 어떻게 할테야?” 다른 친구는 이렇게 대답했다. “종이 한 장을 꺼내 양쪽 면 모두에 ‘뒷면을 보시오’라고 써주면 돼.” 마릴린 몬로가 말했던가. 신사는 금발을 좋아한다고. 안타깝게도 신사는 금발을 좋아할 뿐이지 절대로 책임지지 않는다. 멍청한 금발은 데이트 상대로는 괜찮지만 결혼상대로는 빵점인 셈이다.금발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결혼 상대로 부적당한 건 LA 최고의 미녀 엘(리즈 위더스푼)도 마찬가지다. 5월의 여왕은 맡아놓은 당상이고 리키 마틴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했을 정도로 미모를 자랑하는 엘은 학교 내에서 가장 인기가 많다. 그러나 대대로 정계에 진출해 온 가문의 아들 헌팅튼 3세(매튜 데이비스)는 엘에게 결별을 선언한다. 이유는 엘이 ‘너무 진한 금발’이라는 것.태어나서 한번도 버림을 받아본 적이 없는 ‘공주’ 엘은 오직 남자친구를 되찾는다는 목적으로 하버드대로 진학을 결심, 그 어렵다는 법대에 보기 좋게 합격한다. 그러나 엄격하기로 소문난 하버드 법대는 온몸을 온통 분홍색으로 도배하고 다니는 엘을 환영할 리 없다. 미국내 유수한 석박사가 모인 법대 캠퍼스는 엘을 동물원 원숭이 정도로 취급할 뿐이다. 여왕에서 졸지에 ‘왕따’로 전락한 그녀는 이제 자신을 멍청한 금발로 업신여기는 하버드에 본격적인 복수를 시작한다.지난 여름 할리우드 최고의 슬리퍼 히트(예상을 뒤엎는 흥행 성공을 기록한 저예산 영화들을 일컫는 말)를 성공시킨 <금발이 너무해 designtimesp=21589>는 아마 할리우드 역사상 금발미녀에 대해 가장 신랄한 조롱을 던지는 영화로 기록될 만하다. 패션이라면 보그 지의 1년치 사진을 외우다시피하고 유혹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선수’지만 금발인 엘에게 그 이상의 능력은 요구조차 되지 않는다. 단지 금발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녀는 예뻐야 하고 귀여워야 하고 또 멍청해야 한다.하지만 그런 그녀가 답답한 아집으로 가득 찬 남성중심 세계에 도전하는 방법은 철저하게 그녀 식이다. 권위적인 교수를 누르고 당당하게 변호를 맡은 그녀는 하이힐에 꽃분홍 원피스로 곱게 단장하고 법정을 종횡무진하며 패션과 미용에 관한 해박한 지식으로 결국 재판에 성공한다. 그러나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건 영화 전체를 포장하고 있는 분홍색뿐이 아니다. 바로 편견을 깨고 결국 세상을 부드럽게 만드는 여성적인 것의 승리야말로 <금발이 너무해 designtimesp=21592>가 안겨주는 가장 통쾌한 웃음인 셈이다.이미 속편 제작이 결정됐을 정도로 커다란 인기를 얻었던 <금발이 너무해 designtimesp=21595>의 성공은 단연코 주연인 엘 역의 리즈 위더스푼의 공로. 빼어난 미모와 몸매의 전형적인 금발미녀와는 조금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그녀는 한치의 오차도 허락하지 않는 정확한 타이밍으로 눈부신 코미디 연기를 펼쳐 보이면서 시종일관 폭소를 안겨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