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재정을 통합하느냐 마느냐에 대한 해묵은 논란이 다시 일고 있다. 야당인 한나라당이 건강보험 재정 분리를 내용으로 하는 건강보험법 개정안을 전격적으로 국회에 제출했기 때문이다. 현행 건강보험법은 33조 2항에서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의 재정을 통합해 운영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법 부칙 10조에서는 ‘법 33조 2항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2001년 12월31일까지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의 재정을 각각 구분해 계리한다’고 정하고 있다. 법개정 당시 재정통합의 시기를 올해말까지 유예시켜 놓은 것이다. 야당은 법에 규정된 ‘통합해 운영한다’는 조항을 고치겠다는 것이다. 만약 법개정이 없으면 내년부터 재정을 통합관리해야 한다.건강보험 재정의 통합관리 문제는 이 제도가 출범할 당시부터 팽팽한 의견대립을 보여왔던 사안이다. 이른바 조합주의냐 통합주의냐의 논란이 그것이다. 조합주의란 직장과 지역이 별도의 건강보험조합을 만들어 수익자부담원칙에 따라 각각의 보험료를 내고 이를 재원으로 급여를 받도록 하는 것이고 통합주의는 직장과 지역이 같은 기준에 따라 보험료를 내고 급여도 동일하게 적용한다는 것이다.어느 쪽이 옳으냐에 대한 판단은 제도도입 당시부터 지금까지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것 하나만 보더라도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을 알 수 있다.건강보험의 이상론을 추구한다면 통합운영하는 것을 반대할 이유는 없다. 건강보험의 성격 자체가 사회보험의 성격을 띠고 있어 고소득층이 부담을 더 많이 하되 의료보험 급여는 동일한 수준을 유지함으로써 소득재분배 효과를 거두자는 데 있음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민간보험과는 달리 건강보험은 자신들의 선택에 따라 가입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강제로 들도록 하고 보험료를 연체하거나 내지 않을 경우 세금과 같이 강제징수할 수 있도록 제도화돼 있는 것은 그같은 사회보장적 성격 탓이다. 그같은 전제를 받아들인다면 이상적인 형태는 통합운영이 지극히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그러나 그같은 전제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보험료는 이용자 부담의 형평을 벗어나선 안된다는 점에 비춰 보면 문제가 없지 않다. 예컨대 많은 소득을 올리면서도 건강보험료는 상대적으로 훨씬 낮게 부담한다면 이는 형평에 맞지 않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아직은 보험재정을 분리해서 운영해야 한다는 주장의 가장 핵심적인 요인이 여기에 있다.직장가입자들의 경우 유리지갑으로 불릴 만큼 소득이 투명하게 노출되기 때문에 제대로부담하는 반면 직장가입자들의 대종을 이루는 자영업자들의 경우 소득노출이 제대로 안돼 노출된 소득만을 기준으로 보험료를 매기면 실제소득에서 상대적으로 너무 적게 내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소득이 많은 사람이 보험료를 많이 내고 적은 사람은 조금만 부담하되 혜택은 똑같이 보는 것은 인정하지만 소득이 많으면서도 보험료를 적게 내는 것은 불만요인이 된다. 자영업자들에 대한 소득파악률이 30%밖에 안된다는 것이 당국의 판단이고 보면 재정을 통합운영하는 것 또한 당장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이 문제에 대한 정책선택의 기준은 두 가지다. 하나는 건강보험의 사회보장적 성격을 얼마나 강도높게 실현하느냐에 대한 선택이고 다른 하나는 보험료 부담의 공평성을 어떻게 확보하느냐다. 논란이 분분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최소한 지금의 보험료 부과시스템으로는 부담의 공평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