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스타인하트(Michael Steinhardt, 사진)는 헤지펀드 매니저로 활동하다가 95년에 은퇴했다. 운용수익률은 기복이 심했지만 연평균 30.1%에 이르렀다. 이는 같은 기간의 시장지수 연평균 상승률 10.8%를 크게 웃도는 놀라운 기록이다. 펀드가 출범한 67년에 1만달러를 맡겼다면 28년 후인 95년에 4백62만달러로 불어났을 것이다.헤지펀드는 위험을 무릅쓰고 공격적인 투자를 함으로써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는 고수익 고위험 펀드다. 일반 펀드와는 달리 돈을 빌려서 사기도 하고 가격이 떨어질 것을 예상해 공매를 하기도 한다. 각종 규제를 피하기 위해 펀드 가입자 수를 1백명 미만으로 제한하며 1인당 최소 가입 금액도 1백만달러로 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스타인하트는 머리가 명석해서 16세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펜실베이니아 와튼스쿨에 입학해 3년만에 졸업했다. 뮤추얼펀드의 조사담당자, 증권회사의 애널리스트로 일하다가 26세 되던 67년 경영대학원 동기 두명과 함께 자산운용회사를 설립했다. 스타인하트가 운용을 맡고 나머지 두 사람은 리서치에 주력해 첫해에 30%, 이듬해에 84%의 수익률을올렸다. 회사를 설립한 지 3년도 안돼 세명 모두 백만장자 대열에 올라섰다.그는 전형적인 톱다운(Top-Down) 방식을 적용한 매니저다. 먼저 성장률 금리 인플레율 환율 등 거시경제가 어떻게 변할 것인지를 예측하고 이를 토대로 사거나 팔 업종과 종목을 선택했다. 경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우량주에 장기투자하는 워런 버핏의 바탐업(Bottom-Up) 스타일과는 대조되는 방식이다. 그래서 종목을 선정하는 데에는 크게 신경쓰지 않고 매매시점을 잘 선택하는 마켓 타이밍에 주력했다.그 결과 펀드의 회전율이 대단히 높았다. 전성기 때는 매월, 또는 두 달에 한번 꼴로 포트폴리오를 전면 재조정했기 때문에 연간 회전율이 5백~1천%에 달했다. 매매를 자주 해야 시장의 변화를 감지해서 새로운 투자기회를 조기에 포착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잦은 매매로 수수료 지불액이 엄청나서 브로커들에게는 훌륭한 고객이 됐다. 그 대신 새로운 정보가 있을 경우 브로커나 애널리스트로부터 제일 먼저 전화받기를 원했다.시장 변화 감지해 투자기회 포착그는 차입에 의한 매수나 공매와 같이 투자위험이 매우 큰 매매를 즐겼기 때문에 우여곡절이 많았다. 81년에 금리가 14%까지 올랐을 때 금리 하락을 예상하고 펀드 자금 5천만달러와 차입금 2억달러로 미국 국채를 샀다. 금리가 올라 고뇌의 나날을 보내기도 했으나 결국은 4천만달러의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83년에는 1억달러를 빌려 IBM주식을 사서 1백32달러에 판 다음 이번에는 다시 공매를 해서 1백20달러로 떨어졌을 때 상환함으로써 돈을 벌었다. 93년에는 금리가 오르고 미국 달러화가 강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해 캐나다 유럽 일본 채권을 공매해서 크게 성공했다.그러나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는 법. 94년 유럽채권 투자에서 크게 실패함으로써 33%의 손실을 입었다. 당시 운용자산이 48억달러였는 데 무려 3백억달러를 빌려 채권을 샀으나 금리가 예상과 달리 계속 올랐던 것이다.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95년에는 미국 주식을 매수해 손실을 만회할 수 있었지만 지칠대로 지친 그는 그해 10월 은퇴를 선언했다.마이클 스타인하트의 조언-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는 큰 돈을 벌 수 없다.- PER가 낮고 움직임이 둔한 주식을 산다.- PER가 높고 기관들에 인기있는 주식을 공매한다.- 매매상대방이 상당한 프로라는 것을 늘 명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