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군살빼기·영업망 개척 … 아시아나, 계열사 지분매각 등 유동성 확보

국내 항공업계의 두 거두 조양호(52) 대한항공 회장과 박삼구 아시아나항공 부회장(55)이 깊은 시름에 잠겼다.가뜩이나 적자 비행을 하는 두 항공회사가 미국의 ‘9.11 테러사건’ 이후 설상가상의 위기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두 항공회사는 유가와 환율상승으로 지난해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고 올 상반기에도 적자행진을 계속해왔다. 이들의 적자규모는 지난해 각 4천6백억원, 1천5백억원에 달했다. 올들어서는 상반기에만 지난해 적자금액에 버금가는 각 3천4백59억원, 1천5백63억원의 손실을 입었다. 하반기 들어서도 양사는 미 테러사건 이후 계속 추락, 항공사의 손익을 바로 알 수 있는 여객탑승률이 평균 70% 대에서 처음으로 60% 대로 뚝 떨어졌다. 두 항공회사의 9월 여객탑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각 7.9%포인트, 5.5%포인트 하락한 65.5%와 64.3%를 기록했다. 양사가 전체 매출의 20%를 미주노선에서 올리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이같은 탑승률 하락은 때론 양사에 치명상을 줄 수 있다. 실제 대한항공은 테러사건 이후부터 연말까지 4개월 동안 2천2백억원 정도의 수익이 감소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이래저래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올 한해 적자규모가 각 6천억원대와 3천억원대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를 지난해 적자폭과 합치면 대한항공은 약 1조원, 아시아나는 4천5백억원의 누적적자를 보는 셈이다. 바로 이같은 엄청난 적자가 조회장과 박부회장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물론 이들은 내년 경기에 희망을 걸고 있다. 월드컵과 7∼8월 성수기, 부산아시안게임, 주5일 근무제 등이 호재로 작용할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문제는 내년 5월까지 어떻게 버티느냐 하는 것이다.여객탑승률 60% 대 … 위기감 고조올해 초부터 비상경영을 해온 대한항공은 조회장의 지시로 특단의 조치를 마련했다.10월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조직개편과 20%에 달하는 임원을 퇴진시켰다. 특히 기존 본부 및 산하 BU(Business Unit) 조직을 전면 개편해 여객사업본부 화물사업본부 항공우주사업본부 기내식사업본부 호텔면세사업본부 등 5개의 사업본부로 개편했다. 대항항공 관계자는 “표면상 기존의 사업본부를 소사장제로 운영해 책임경영체제로 바꾸는 것이지만 이면엔 ‘대한항공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겠다’는 조회장의 굳은 의지가 담긴 것”이라고 귀띔했다. 엄청난 누적적자에 따른 유동성 개선도 조회장이 심혈을 기울이는 부분이다. 이에 조회장은 연말까지 5천억원 규모의 자산유동화증권(ABS)을 발행하고 부동산 및 항공기 등 자산매각(2천억원)으로 총 7천억원의 자금을 자체 조달토록 지시했다. 여기에다 국제선 축소 운영 등 감량경영을 통해 연말까지 2백50억원의 자금을 확보하는 한편 내년에도 구조조정을 계속해 1천7백억원의 원가를 절감한다는 초긴축 계획도 세웠다.이 때문일까. 조회장은 요즘 무척 바쁘다. 조회장은 대내적으로 굵직한 현안 이외에는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대외활동에 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회장은 9월 말 미국 출장길에 올라 항공기제조사를 방문하고 대한항공 미주지역본부와 뉴욕지점을 방문해 직원들을 격려한 데 이어 11월9일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 항공사협회 연례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출국했다. 11월14일엔 미국 애틀랜타의 카르고 조인트벤처(대한항공 델타항공 에어프랑스가 미국내 화물 영업망을 통합해 공동 설립한 회사) 예약센터 오픈행사에 참석하는 일정도 있다. 조회장이 이처럼 자주 해외출장을 다니는 것은 국제 영업망을 넓히기 위해서다.아시아나의 박삼구 부회장도 바쁘긴 마찬가지다. 사실 아시아나항공은 대한항공에 비해 더욱 심각한 자금난을 겪고 있는 것으로 증권업계는 보고 있다. 대신경제연구소는 아시아나항공이 올 3분기까지 1천3백10억원의 경상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여기에다 연말까지 돌아오는 3천억원의 CP를 감안하면 자금사정이 상당히 어려울 것이란 게 증권가의 분석이다. 이 때문에 박 부회장은 최근 주 1∼2회 대책회의를 주재하는 등 위기 타개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박부회장은 올해 초부터 벌여온 10% 예산 절감운동에 5∼10%의 비용을 추가로 줄이는 운동을 펼치도록 지시했다.조회장·박부회장 비상경영 진두지휘뿐만 아니라 계열사 지분을 팔아 2천억원의 외자를 유치하겠다는 구상도 세워놓고 있다. 아시아나 공항서비스(주) 아시아나 공항개발(주) 인천공항 외항사 터미널(주) 등의 지분을 매각하고 케이터링 사업부에서 아예 손을 떼겠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 영국 독일 등의 공항관련 전문기업이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게 회사측 설명. 아시아나 관계자는 “최근 박부회장이 직접 나서 실무작업을 벌이고 있어 12월 초순께에는 협상이 타결될 것”이라고 밝혔다.이와 함께 2천5백억원의 정부지원금 중 일부를 받고 2천5백억원의 ABS를 발행하면 내년 초까지 충분히 버틸 수 있다는 게 회사측의 설명이다.눈길을 끄는 것은 박부회장은 어려운 상황임에도 인원감축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대목이다. 이는 지난 10월29일 노사가 발표한 ‘노사화합 공동선언문’에 ‘인위적이고 강제적인 추가 인력감축은 없을 것’이라고 못박은 대목에서 나타난다. 실제 박부회장은 인원감축을 통한 경비절감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시아나는 지난 98년 초 IMF 극복차원에서 정리해고 대신 입사 1년이 안된 젊은 직원 6백40명을 대상으로 1년 동안 장기무급 안식휴가를 보낸 적이 있다. 이들이 1년 뒤 단계적으로 복귀할 때 박부회장은 조회석상에서 “오늘은 내 생애 가장 기쁜 날 중 하나”라며 목이 메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