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초 어느날, 서울 평창동에 사는 의사 K씨 부부는 롯데건설이 집 앞까지 보낸 리무진을 타고 여의도 캐슬 엠파이어 모델하우스에 도착했다. 로비에 들어서자 호텔 커피숍을 능가하는 카페로 안내돼 최고급 자바커피와 케이크를 대접받았다. 라운지에 전시된 유럽 고성들의 사진을 감상한 후 롯데호텔과 똑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 모델하우스로 올라갔다. 85평형이 마음에 든 K씨는 대기 중이던 세무사로부터 자산 운용에 대한 컨설팅을 받고 자금조달 계획을 세웠다. 며칠 후 계약을 위해 다시 모델하우스를 방문한 K씨는 내년 초 싱가포르에서 출발하는 스타크루즈 여행권을 선물로 받았다.주택건설업계의 VIP 모시기 경쟁이 갈수록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 리무진 픽업, 해외 여행권 증정 등은 올들어 고급 아파트 분양시장에 등장한 옵션들. 한강 조망권을 실제로 확인하기 위해 헬리콥터로 현장을 견학하거나 경품을 제공하는 이벤트 등은 차라리 ‘고전’에 가깝다.평당 3천만원이 넘는 아파트가 등장한 주택시장에서 타깃마케팅은 ‘기본’이 됐다. 꼭 살 만한 사람, 10억원이 넘기 예사인 고가 주택을 선뜻 계약할 수 있는 재력가에게만 ‘고객 자격’이 주어진다. ‘그렇게 비싼 아파트는 어떻게 생겼나’ 하며 호기심에 모델하우스에 들어서는 보통사람은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한다. 사전예약을 하지 않으면 관람 자체를 거부당하기 때문.‘살 만한 사람’에게만 고객 자격 부여건설업계에서는 최고급 아파트 구매 가능 범위를 서울시 인구의 0.1%인 1만명 선으로 잡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어디에 숨어있는가 파악하는 것. 때문에 구매 가능 고객의 데이터베이스는 분양 성패를 좌우할 정도로 중요하게 취급된다.고객 데이터베이스는 흔히 세금 납부액 상위 랭커, 특급호텔 헬스클럽 및 유명 골프장 회원권 소지자, 전문직 관련 협회 회원 등의 기준에 의해 만들어진다. 여기에 배기량 3천cc 이상 자동차를 보유하고 50평 이상 아파트나 빌라에 거주한다면 십중팔구 ‘집중 공략 VIP’ 명단에 오른다. 백화점 명품관, 외제 자동차 판매점 등의 고객도 관리 대상이다.고객 데이터베이스는 분양대행사의 운명을 판가름하는 잣대로 이용되기도 한다. 대부분의 건설사는 분양 프로젝트를 시행하기 앞서 분양대행사를 선정, 공동으로 마케팅을 펼친다. 양질의 고객 데이터베이스를 확보한 분양대행사는 아웃소싱 대상 0순위. 롯데건설 캐슬 엠파이어 사업소 심철영 소장은 “얼마나 정확한 데이터베이스를 갖고 있는가에 따라 분양률이 차이날 정도로 중요하다”고 밝혔다.주5일 근무제 도입을 맞아 전원주택업계에서도 타깃마케팅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전원주택업체 그린홈넷은 지난 10월 15명의 고객과 함께 제주도 답사여행을 다녀왔다. 평당 8백만원의 건축비가 드는 핀란드산 홍송 통나무주택에서 숙박 체험을 하는 등 관광과 투자를 겸한 이벤트였다. 이 행사를 통해 참가자 4명이 실 투자고객으로 흡수됐다.이 회사가 주요 타깃으로 삼는 고객층은 연봉 8천만원 이상 전문직 종사자. 최근 들어선 억대 연봉의 보험사 영업맨도 고객 범위에 포함시켰다. 정훈록 이사는 “주5일 근무제 우선실시가 예상되는 공공부문 고위 공직자나 보험·금융사 고소득자를 대상으로 지속적인 마케팅을 펼 것”이라고 밝혔다.